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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23. 2024

드디어 러닝메이트가 생겼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달리기는 혼자와의 싸움이었다.

5분 달리기도, 5km 대회 연습도 혼자 묵묵히 달렸다. 대회 때는 고맙게도 남편이 같이 달려 주었지만 다음은 없다고 선언했다. 재차 말하지만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같이 하자거나 잘했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추운 날씨, 더운 날씨를 뚫고 나가서 달린다는 것, 독서도 카페도 집콕도 좋아하는 내가 시간을 아껴 달리기에 투자한다는 자체가 나와의 싸움이었다. 혼자를 무척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 싸움에는 동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늘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내가 달리기 시작한 지 1년 즈음 지나, 그녀가 나타났다. 남편 회사에 역시 나처럼 주재원의 아내로 오게 된 분이었다. 처음 오셨으니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고, 이후에는 단 둘이 만나 새로운 맛집도 탐방하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집을 소개하기도 하며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오래 은행에서 일했지만 앞으로 상담사가 되고 싶어 공부 중이라는 그녀와 이미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나는 공통 관심사가 많았다. 서로 좋아하는 책도 빌려주고 공통분모를 늘려가던 그녀와 필라테스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녀는 허리가 아파서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그 후 많이 좋아지고 수업 후면 늘 마사지를 받은 듯 개운하다고 했다. 나도 마침 체력과 근력을 늘리고 싶었던 터라 그녀와 함께 필라테스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목요일 아침 10시면 항상 필라테스로 만나는 루틴이 생겼다. 나의 달리기 이야기를 듣고 그녀도 집 앞에서 종종 달리기를 한다고 했고, 우리는 필라테스 수업 후 자주 가던 쇼팽 공원에서 함께 달려보기로 했다. 호수를 품고 있는 이 공원은 사이사이 예쁜 길이 많은데, 가장 바깥에 있는 을 따라 한 바퀴 돌면 1.5km였다. 우리는 두 바퀴를 돌고 3km를 채워 함께 헉헉거렸다. 그래도 함께 뛰니 훨씬 덜 힘든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함께 헉헉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벤치에 앉아 8월이지만 제법 선선했던 바람에 땀을 식히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아이스크림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함께 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런 거구나!


우리는 그날의 기쁨을 잊지 못해 목요일이면 매주 달렸다. 그리고 달리다 보니 필라테스 마친 후에 달리는 것보다 아침 일찍 달리고 필라테스를 하면 훨씬 더 개운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9시에 만나 달리기를 하고 필라테스를 하러 갔다. 땀을 빼고 충분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까지 하고 나면 하루의 할 일을 다 해낸 듯 뿌듯했다.


매주 함께 달리는 쇼팽 공원


10월 첫째 주에 브로츠와프에 있는 LG에서 후원하는 한국-폴란드 5km, 10km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여러 한국 기업들과 폴란드 현지 직원들의 화합을 위한 대회인 듯했다. 제법 크게, 그것도 무료로 열리는 대회여서 10km 대회 전 연습할 겸 5km 참가신청을 했고, 그녀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함께 달리자며 나와 함께 신청을 해주었다.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며 우리는 공원을 세 바퀴 돌아 5km를 채우고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필라테스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저 달리기도 벅차서 2-3분만 지나도 침묵하며 조용히 달리던 우리였다. 그런데 3km 정도는 그렇게 벅차지 않게 뛸 수 있게 되었고, 요즈음에는 5km를 달리면서도 자주 수다를 떨면서 달린다. 얼마 전 달리기에 대해 찾아보았을 때, 5km 정도를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달릴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고 한 영상을 본 기억이 났다. 그때만 해도 '대화를 하면서 달릴 수 있다고?'라고 생각했다. 혼자 조용히 달려도 힘든데, 달리면서 말까지 하려면 시작부터 숨이 가빠와서 그다음 달리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직도 수월한 수준은 아니지만 달리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니 달리기가 훨씬 더 재미있다. 그러니까, 우리 여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가만히 카페에서도 세 시간은 족히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수다를 심지어 달리면서 나눌 수 있다면 더 신나지 않겠는가.


달려도 달려도 늘 벅찬 이 달리기의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땀을 흘리고 같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달리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참 즐겁다. 그저 맛집과 카페를 탐방할 때와는 또 다른, 피 땀 눈물을 나눈 사이만이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전우애가 생긴다. 아직도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내가 새로운 달리기의 재미를 알아간다. 고마운 달리기 친구 덕분에.


함께 달리는 공원에 눈부신 가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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