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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Oct 24. 2022

우기의 끝

최근 a 복도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과호흡이  정도로 강한 감정이었다. a 진정시키고 이유를 묻자 소외감이 들었다고 했다.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다른 친구들이 다른 친구의 자리라고 했다는 말에 마음이 와르르 내려앉았다고 했다. a  자리에서 불만을 토로하거나 화를 내거나 따지지 않고  시간 수업을 참고   쉬는 시간에 울었다.   시간동안, 열네살 소년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친구들의 의도를 짚고 상처를 곱씹었을까. 별안간 쏟아지는 감정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우리는 감정을 1~10으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기로 했다. a의 눈을 보며 거듭 말했다. "너는 소외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너는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 아니야. 너는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 말을 a에게 따라하도록 시켰다. "나는 소외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존중받고 있다."


a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친구다. 그 자리에서 "아 그럼 난 어디에 앉으라고~" 한마디를 했다면 친구들은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자연스레 그의 편의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a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이 학교로 전학을 오기 전 국제학교에서 3년 간 체구가 작다고, 동양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따돌림의 이유가 되는 시간동안 그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수류탄처럼 그의 마음속에 남아서, 친구들의 자리 이야기에 '나는 소외되는 사람이야' 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a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다. 당시의 기분을 묻고 퉁치듯 말하면 다시 풀어서 말해달라고한다. 어떤게 힘들었고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은 어떤지 묻는다. 그 감정을 요즘 느낀 적은 언제인지도 물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 힘들 때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질릴 정도로 반복하여 말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나에게도 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작년은 자살 충동이 여러번 일 정도로 힘든 해였다. 전화 사주에서 사주가는 말했다. "와, 작년은 정말 힘들었겠는데요? 목숨도 몇 번 왔다갔다 했고. 액운이 말도 못하게 끼었는데 주위 사람들까지 잡아끌었네요." 무슨 액과 기운이 앞길을 막아서 그렇다는 말을 멍하니 들었다. 거대한 기운이 막고 있었다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상실과 분노, 우울이 쓰나미처럼 덮친 해였다. 하지만 더한 기세로 당장 처리할 일들이 밀어닥쳤고 그 일들을 해치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다.


그 모든 일들이 지나간 지금, a와 마주하며 내 안에도 똑같은 감정들이 넘실대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말에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 어찌할 줄 몰라 대충 덮어놓은 감정들이 있다.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질 준비가 된 상태로. 큰 일이 닥치면 마음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놓으면 끝이야' 라는 목소리가 올라온다. 어느정도 일이 처리되고 나면 '모두 끝났으니 상처는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지나간 상처는 몸피를 키워 다시 나타난다. 평범한 일에도 불쑥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날 때, 몸이 자꾸만 가라앉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돼서야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구나 안다.


힘들었던 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한 달 지났다, 세 달 째다, 벌써 계절이 바뀌었네. 그만큼 지났으니 곧 괜찮아질거라고 믿고 싶어서다. 하지만 상처는 절로 낫지 않았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아문다. 남이 말해서야 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생각나는 일도 있다. 기억의 사관은 나이므로, 멋대로 번역하여 기록한 것들도 많을 것이다. 가해한 일은 축소하고 피해를 입은 일은 확장하여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반드시 볕에 꺼내야 한다. 축축한 곳에 숨겨둘수록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펼쳐놓고 그때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해야한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네 탓이 아니라고 자책감을 지우고 위로하는 일, 그 시기를 지난 너는 강하며 이제는 무너져도 괜찮다고 안아주는 일, 피해를 입힌 상황과 사람에 뒤늦게나마 분노하며 거리를 두는 일. '내가 그런 사람이라'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일.


왜 하필 그때 나를 떠났어? 자기 불안을 어쩌지 못하고 나를 휘둘러놓았어. 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했어. 자기 입맛에 맞는 나만 사랑해줬어. 일처리를 그따위로 모두 떠넘기고 도망칠수가 있어. 당신들 싸움은 알아서 할 일이지 이제 막 새로 들어온 나한테 세력을 뻗치고, 마음대로 안 되니까 비꼬고 상처주려고 했어. 왜 아무도 없었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 온 사람같지 않다는 말로 자기들 죄책감을 줄이려고 했어. 내 선택을 우습게 여기고 조롱했어. 내 인생인데 너희들이 휘두르려고 했어. 나를 고쳐쓰려고, 입맛에 맞게 고치려고 했어. 인정에 목매게 만들었어. 나는, 나는, 살아보려고, 나답게 살려고, 얼마나 절박했는데, 얼마나 간절했는데. 시발. 시발. 시발!!!!!


1년이 걸렸다. 어떤 말은 1년 반 전에, 어떤 말은 9개월, 10년 전에 했어야 했지만 그때는 너무 약하고 두려웠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할 만큼 지쳤고 늘 나를 상처입히는 것이 가장 쉬웠다.



오늘 방콕은 맑다. 올해 우기는 정말 지독했다. 그 우기가 끝나가고 있다. 마음을 바짝 말리기 좋은 볕 아래서 이 글을 쓴다. 모든 일은 지나간다는 격언이 어울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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