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에게 점심을 묻지 마세요.
살면서 삼성역에 올 일이 없었어요. 대충 강남이거나 강남 언저리거나 하여간 그 동네일 거라고 생각한 게 전부예요. 뭐 삼성역 근처 회사에 몇 번 출퇴근 하면서 서울엔 정말 여러 개의 강남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긴 했지만서도, 아무튼 저는 삼성역을 몰라요.
첫 출근한 신입을 배려하는 마음은 이해해요. 아니 사실 배려가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나온 말일 수도 있겠네요. 1층으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타는 길에 던지는 점심 뭐 먹지, 는 사실 매일 뱉는 질문이면서도 참 알맹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뭐 드시고 싶으세요? 라고 묻는 질문은 배려일 수도 있고 뭐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
배려든 아니든 간에 좀 그래요. 오늘 첫 출근한 사람이 이 동네에 뭐가 맛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회사 탕비실이 어딘지도 아직 파악 못한 사람이 무슨 장르의 식당이 회사 근처에 있는지 아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무난한 메뉴가 뭐가 있나 짧은 시간에 갖은 힘을 짜서 짱구를 굴린 후에 음 된장찌개는...어떠세요? 라고 간신히 대답했다가 아 이 근처에 된장찌개 맛있게 하는 집 없는데~라고 대답하기라도 했다간 뭐라고 반응해야 하느냔 말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제가 그걸 몰랐네요, 어머나 세상에 된장찌개를 맛없게 하는 집이 있을 수도 있군요, 뭐 이럴 수도 없잖아요.
삼성역에서 태어나고 삼성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삼성역에서 연애를 해서 이 근처 맛집이란 맛집은 내 손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첫 출근한 날 점심 메뉴를 내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고르기는 힘들어요. 아 사실은 말입니다 제가 이 동네를 좀 잘 아는데 말이죠, 5 번 출구 근처에 있는 쌀국수 집이 국물이 정말이지 이 세상 국물이 아닌데 말입니다, 오늘 점심 쌀국수는 어떠세요? 라고 흥분해서 대답했는데 아~그런데 팀장님 동남아 음식 싫어하시는데~라고 하면 진짜, 아니 진짜, 그거는 진짜 어떡하냐고요.
뭐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길게 얘기를 하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어쨌든 여러분도 저를 모르고 저도 여러분을 모르잖아요. 그런데 나는 여러분만 모르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동네도 몰라요. 여러분의 식당도 여러분의 텐션도 여러분의 태도도 모르고요. 저를 배려해주거나 배려해주는 척 해주는 건 고맙지만요, 첫 출근하는 날에는 그냥 여러분이 인도해주는 게 진짜 저를 배려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입에게 점심을 묻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