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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Jun 16. 2022

반군이 만든 맥주는 무슨 맛일까?


"자, 이제 로이따이렝까지 왔으니 솔직히 말해봐. 우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하지?"


"아 뭐... 아무래도 그렇죠? 제 연구주제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어느 날 저를 로이따이렝에 데려온 A가 파이프에 불을 붙이다 말고 물었습니다. 제 대답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배려로 많은 사람들을 통해 RCSS가 어떻게 수익을 내고, 경제활동을 장려하는지 굉장히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창설이래 쿤사의 믕따이군과 단절을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마약거래에서 손을 뗀 RCSS는 이제 다양한 경제활동을 통해 군자금을 마련합니다. 민간인들로부터 세금을 걷어서는 군대 유지가 전혀 안되기 때문에 지역 기업인들에게 기업세를 걷고, 해외 투자자들과 석탄, 루비 등의 지하자원을 공동 개발하기도 한답니다. 최근에는 향토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샨주 남부군 장병들이 샨주를 주요 시장으로 삼아 운영하는 여러 가지 사업에 공동투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사업이 날아갔지만, 몇 년 전엔 마이숭 비어(Mai Sung Beer)라는 맥주 브랜드를 샨족 사업가와 함께 공동 투자해 샨주 시장에 론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응...? 잠깐만, 뭐라고요?



혁명적인 맥주, 마이숭 맥주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반군단체가 론칭한 맥주라니! 맛은 어땠을까요? 어떻게 맥주 브랜드를 시작했을까요? 결국 여기저기 묻고 물어 마이숭 맥주 책임자를 찾아냈습니다. 찾아놓고 보니 항상 지나갈 때마다 병사들이 "저 집 딸내미 정말 예뻐요" 하며 입을 모으던 제 내무실 근처 슈퍼마켓 사장님이 책임자였습니다.


오리지날 따이 맥주! 아직도 걸려있던 마이숭 비어 광고 포스터.


"코로나19 때문에 망한 거지 뭐. 얘기할게 더 있나"


야심 차게 벌인 사업을 접어야 해서 속상했을 텐데, 가게 주인이자 샨주 남부군 병사인 짜이 K는 나름 담담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전형적인 PB 브랜드 방식의 사업구조를 택했습니다.


"동남아 [A] 국에서 맥주를 떼다가 우리 브랜드를 입혀서 샨주에 팔았어. 맥주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알려준 사업모델인데, 안 그래도 맥주에 관심이 많았었어서 큰 고민 없이 벌려본 게 마이숭 맥주야."


마이숭 맥주는 K와 RCSS가 공동 투자해 만든, 이른바 공동투자 회사였다고 합니다. RCSS는 좋은 사업 아이템에 투자금을 투입하고, 그 사업이 순수익이 날 때까지 몇 년간 세금을 면제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순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기업세에 더해 투자 배당금 명목으로 추가되는 세금이 붙습니다. 마이숭 맥주 말고도 '로이따이렝' 브랜드의 양주, '산 로이' 생수 브랜드, 그리고 지금은 폐업한 통조림 사업이 조직의 공동투자를 받았었다고 합니다.


산 로이 생수입니다. 병 재질이 좋아서 빈병을 수거해서 거기에 쌀술을 담아 팝니다.

하지만 사업이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흔들렸습니다. 판데믹 때문에 국경을 넘나드는 게 힘들어졌고, 그렇게 상품 배송이 뚝 끊긴 게 마이숭 맥주의 폐업의 주원인이 되었습니다. 미얀마에 자체 생산 공장을 세우자니 인맥도 없고, 없는 인맥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막대한 뒷돈(...)도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인맥, 뒷돈 걱정이 없는 RCSS가 통치하는 로이따이렝에 양조장을 세우자니 로이따이렝도 산 꼭대기에 있어 화물운송이 영 곤란했다고 합니다. 


돈은 얼마나 벌었을까요? "손해는 안 봤는데, 조직이 세금을 걷을 정도로 수익이 나진 않았다"고 설명해줬습니다. 한창 사업이 잘 나갈 때도 명목상 수입품인지라 주류세가 국내 생산 제품보다 심하게 붙었고, 미얀마 군부 소유 브랜드인 미얀마 맥주가 꽉 잡고 있었던 샨주 맥주시장을 뚫기가 어려웠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맛은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이제 다 팔고 남은 재고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동네방네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때문에 한동안 K를 만나는 주민들이 K에게 '마이숭 카~' 아니라 '마이숭 비어~' 라 인사하며 놀릴 정도로 집요하게 물어본 바, 값이 좀 나가먹어봤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로이따이렝에서 창, 레오 태국산 맥주는 태국과 비슷하게 50밧 언저리로 판매합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직접 주조하는 소주(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35-40도 도수의 쌀술이 60밧. 병사 월급이 800밧인 동네에서 맥주는 결코 널리 팔릴 수가 없는 상품이었습니다.

 

결국 마셔본 사람들은 입대 전에 사회에서 마셔본 병사들, 그리고 샨주 남부군 조직 밖에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평은 '맛이 괜찮긴 한데, 그래도 비싸다'는 평. 샨주 북부에서 온 한 병사는 "라시오에서 미얀마 맥주가 한잔에 1500짯인데, 마이숭 맥주는 2000짯이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나마도 자기는 미얀마 맥주가 더 입에 맞았다고 합니다. 샨주에서 활동하는 한 기자는 "싱하맥주와 맛이 비슷하다" 평가했습니다.


미얀마 맥주가 보이콧당하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 절 봐서라도 언젠가 다시 생산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Beer Mai Sung Facebook

또, 훗날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마이숭 맥주는 투자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샨주 안에서 논란이 많은 제품이었어요." 마이숭 맥주의 맛을 싱하맥주에 비교한 기자가 설명했습니다.


"RCSS가 주류 산업에 진출했다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양주 '로이따이렝'의 경우 혁명의 본거지를 술 라벨에 갖다 붙인다는 거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한때 '남부군이 술에 취해 길을 잃었다'는 얘기도 돌았었으니까요." 


그걸 듣고 있던 다른 샨족 기자가 "아, 난 마이숭 맥주 맛은 그닥이었지만 그때 '로이따이렝,' '마이숭' 이렇게 상표가 붙어서 반갑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브랜드니까." 하며 덧붙입니다. 같은 매체 소속 기자끼리도 의견이 갈리니 확실히 논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샨족 사람들에게 로이따이렝은 어떤 의미를 가지길래 논란이 일었을까요?


샨주에서 사업을 하려면 생수사업, 농업이 잘 된다는 K의 충고를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쌀술 한 병을 사서 가게를 나섭니다. 병사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던 화제(?)의 따님이 아버지와 함께 바래다주며 인사를 합니다. 내무실에 들어오니 병사들 표정이 '올ㅋ'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따님 때문이었는지, 쌀술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여긴 동네 슈퍼에서 콘돔을 안 팔죠?"


점차 로이따이렝에 적응이 되자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동네 슈퍼마켓이니, 잡화점이니를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콘돔이 보이질 않습니다. 콘돔은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피임도구이자 성병 예방 도구이기 때문에 구매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답니다. 특히나 고기, 술, 그리고 "삼"(...)이 전투력 유지에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장성들이 있다면 더더욱이나.


근데 또 굳이 누구한테 대놓고 물어보기엔 좀 그런 질문이라 잠깐 고민을 해 봅니다. 꼭 알아야 하나?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기면 안 되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사회)과학의 진보를 위해 물어보기로 합니다. 그나마 격의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대놓고 하는 편인 장교 짜오 A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도 미팅을 끝내고 나무 아래 앉아 파이프에 불을 붙이려던 참입니다.


다가오는 저를 보더니 '얘 또 질문하러 오는구나' 생각한 듯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집니다.


참 중요한 거긴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물어봤어야 했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왜... 어째서 이 동네는 가게에서 콘돔을 팔지 않는 거죠?"


"짜이 쌈 여자 친구 있다며? 왜, 하나 필요해?" A가 웃으며 농을 던집니다. 그리곤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여기는 혼전 성관계가 불법이라 그래.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 그러다 들키면 큰일 나. 특히 남자는 체포돼서 처벌을 받고. 사실 가게에서 팔진 않아도 저기 보건 클리닉 가면 얇고 좋은 거 공짜로 나눠줘. 근데 어린애들이 그걸 얻어가면 동네방네 나 잡아가라고 광고하는 꼴인데, 그걸 누가 가져가겠어?" 


A가 말하곤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말을 이어나갑니다.


"왜 최근에 어느 학교에 선생님이 한 명 부족하다 그랬다 했지? 사실 그런 식으로 연애하다 들켜서 보직해임당했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더 이상 선생 노릇은 못할 거야. 내 생각엔 보수적인 불교 관습에 전시 군법이 합쳐져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군기 문제가 엮여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솔직히 동의하지 않지만 이해가 아예 안 가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RCSS 지도부 입장에서 (보수적인 관습보다는) 한창 게릴라전을 치르던 시절, 병사나 장교가 이성문제로 추문을 일으켜 주민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상상해봤습니다. A가 파이프로 한 모금 들이키곤 끄덕였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개인적으론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 이제 시대가 변했잖아."


A의 말대로 시대가 변하긴 했습니다. 스마트폰 메신저 앱을 통해 연애를 하고 페이스북으로 연애 상대를 찾는 오늘의 로이따이렝 젊은이들은 무척이나 개방적이고 이성교제에 거리낌이 없는 편입니다. 작전을 나갈 때도 세상과 연결돼 있고자 배낭 위에 태양열 충전기(!)를 짊어지고 나가는 병사들을 잡아두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일 겁니다.


시대가 변하며 샨주 남부군도 변화하는 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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