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농장을 보러 갈 거야" 같이 아침식사를 하던 중, A 가 얘기했습니다.
"농장이요?"
생각해보니 제가 들어올 때 탄 차량행렬에 묘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A는 자기 농장에 아보카도와 사과, 그리고 잭푸룻을 수백 그루를 더 심을 계획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들도 다른 과일과 곡식을 더 심을 거라 합니다.
RCSS의 각 부서와 여단 예산의 굉장히 큰 부분이 농업활동에서 나옵니다. 중앙지도부에서 내려오는 예산이 필요분보다 적을 때가 많아 농사를 잘 짓는 게 굉장히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합니다. 무기와 탄약 또한 필요분보다 적게 분배될 때가 많기 때문에 각 여단이 스스로 부족분을 충당해야 한다니 더더욱 농업을 통한 수익활동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친해진 한 장교에게 농사에서 나오는 수익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그는 마치 비밀도 아니라는 듯 각 여단과 부서 예산의 절반 남짓이 잭프룻이니, 커피니, 아보카도니 하는 농작물 경작을 통해 충당된다고 귀띰해줬습니다.
그래서 샨주 남부군은 녹색혁명이 한창입니다. 장성급 장교들의 미팅에 따라가면 정치, 군사 등 왠지 장성급 장교들이 긴요하게 얘기를 나눌법한 주제보단 농사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습니다.
믕따이군 시절 욧석과 함께 최고의 전사라는 평을 받았었던 최고위 장교 한분은 다른 장교들과 여러 나라에서 구해온 양파 씨앗을 비교하고, 양파 농사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언젠가 방문한 다른 한 장성급 장교는 휘하 장병들과 자기 잭프룻 농사를 책임질 거름을 만드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농사판(...)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합니다.
"군인들이 찻잎 따고 있다니까 이상하지?"
인터뷰 중 한 고위급 장교가 말하며 배시시 웃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전쟁을 할 수가 없어."
A 또한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자기 부서의 새로운 경작지를 살펴보고, 어디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 병사들과 논의하며 농사에 굉장히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농장일을 맡은 병사들을 이끌고 어디에 어떤 묘목을 심을지 논의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새로운 작물을 심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군복을 벗기면 영락없는 농사꾼입니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한 달에 800밧, 1400밧 받아서 어떻게 살겠어?"
아보카도를 심을 땅을 둘러보던 A가 제게 조용히 얘기합니다. 샨주 남부군에서 사병은 800밧, 장교는 1400밧을 받습니다. 다른 한 장교의 말을 빌리자면 사실 월급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간식비 수준입니다. 그는 혁명에 온 몸을 던졌기 때문에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투자한 암호화폐 종목 시세 추이에 오감을 집중했습니다. 로이따이렝 물가가 아무리 낮다지만, 그래도 담배가 20밧, 술이 50밧. 식사를 해도 국수 한 그릇에 30밧이 넘어갑니다. 그 장교가 말없이 보여주듯, 그런 곳에서 800밧은 삶을 영위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월급입니다.
그래서 많은 병사들이 알아서 채소 텃밭을 가꾸고, 전방으로 나서는 전투병들은 기회가 되면 정글에 사는 곰이며 사슴을 쏴 잡아다 시장에 판다고 합니다. 병사가 가정을 이룬 경우, 가족 구성원 (보통 아주머니)이 식당이나 구멍가게를 열어서 전쟁터에 나가는 아저씨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집니다. 특히나 곰이나 호랑이의 경우 최전방에 나간 병사들을 해치는 맹수라 지휘관들 입장으론 나름 일석이조. 언젠가 제게 곰발바닥(!)으로 술을 담갔다며 곰으로 추정되는 물질과 술로 가득 찬 생수병을 내보인 병사 L이 샨주 내 곰고기 시장의 존재를 증명해 보입니다.
"나는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부서에만 쓰는 게 아니라, 내 병사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해 줘. 우리 애들이 이게 끝이 아니라, 돈을 모아 나중에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해서."
A는 제게 또 다른 나무를 얼마나 새로 심을 것이고, 그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굉장히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사실 제가 들으라 얘기해준다기보단,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투자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이따이렝에 심을 과일나무를 너무 과하게 사서 부인에게 아주 크게 혼났다고(...) 합니다. 이제 갓 학교 들어간 딸내미한테도 한 소리 들었다고 하네요.
그런 만큼 그의 투자가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