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어디선가 집으로 돌아올 때
해가 저물어가네,,,,,차안에서 혼잣말을 할 때 어느 순간 가로등에 불이 탁 켜질 때가 있다.
가스등 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녁의 으슴프레함 속에서 켜지는 불빛 .....은 아득한서정이다.
내 안 저 깊은곳 아주 어둡고 작은 방....에 켜지는 등.
내속에 숨겨져 있는 디 아더스 ....내안의 他者 가 가장 선명히 발현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이럴 때 가로등의 디자인은 아주 중요하다.
가로등이 가로등이 아니고뭔가다른 멋을 혹은 맛을 주려고요란하다면 서정은 사라지고 가로등만 남는다.
위그림은 '밤은 선생이다'...황현산의 글 표지화다.누구의 그림일까 ....
심히 궁금해서 출판사에 전화를 해볼까 .... 하다가 아 이구 참 수선은 ...싶어서 그만뒀는데
우리시대의 유명한 선생들의 강연을 모은 책 <어떻게 살것인가 > 중황현산의 글에서
‘팀 아이텔 ’이란 철학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 ..
독일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요즈음 자주그의 그림을들여다 본다. 번다하고 소소한 내 삶이
마치 잘 닦아논 구리거울같은그러나 어두운 그의 그림처럼 간결해지기를 바라며.
노년의 남자 옆모습인가? 뒷모습? 깊은 생각에 잠겨누군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는것도 의식을 못하고 있다.
그림을...그리는것도 글을 쓰는것도 아닌그래도 무언가를 쓰고싶어 종이를 앞에하고 연필을 들었다.
고독했던 생에 대해서 적어볼까..../고통스러웠던 환희에 대해서.../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절망에 대해서/
아니 그런 무거운 이야기 보다는/ 이봄 피어날 꽃에 대해서 /그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지도...
그대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는지..../내 생의 거의 모든 시간은 /그대를 향한 염원의 시간이었소.
미망이었던가.../한줄도 쓰지 못한 채/그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시간 속에서 서성이는 그...
처음 그는 백지와 필을 들 때만도 뭔가 확신에 찼엇을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적으려고 하자 그 무엇인가들이 너무나 삽시간에 뿜어져 나왔을것이다.
그리고 이내그 모든것들이하잘것 없어졌을 것이다.
가로등 .....의 생김새를 보며 도시를 점쳐보는 것이작은 취미중의 하나이다.
시골쪽으로 갈수록 가로등은 멋을 잔뜩 부리고 서있다.
가로등인데 가로등만으로는 서운해서 의미부여를 하기위해 고심한다.
무언가를 자꾸만 덧입혀서 오히려 조악해보인다.
실수한 사람의 자기변명 비슷하다. 내 삶도 그런 수준 비슷하다. 변명같은 글도,
자유로의가로등은단순하다.
가로등은 그냥 가로등이라는 주제에 걸맞다.
가로등이 끝도 한도 없이 이어질 때
단순함이 지닌 간결미를 알게 된다.
'베지츠 (Besitz·소유 )'.
어둠이 짙다.사방 데가 너무 어두워 사람의 형체조차 어둠이 먹어버린다.
어둠이 지닌 탐욕스러움.내 사진으로 옮겨놓고 그림을 조금 밝게 해놓고 보았더니 ㅎ
카트의 바퀴는 아주 튼튼해 보여 어디든 구르겠다는데
자그마한 사람의 왜소한 등은 힘없이 구부러져 있다.
바퀴가 말을 안 듣는지 ....카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옆을 밀고 있다.가긴 가야하는데 가고는 있는데 갈바를모르는걷고는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네.이제는 앞이라는 단어조차모르겠네.
팀 아이텔은 저 사람의 뒷모습에서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 더 깊은 어둠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그저 망막한 어둠가운데서 걸어 간다.
오래오래 바라보니 쩌면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짙은 고독이너무 크고 강해서 풍경이 그에게 먹히는게 아닌가.
오히려 그의 우울과 고독으로 어둠을 더 깊게 하는것 아닌가.허망의 한 정점...
그는 소유에 대한 행위를 보았다고 하는데 유가 생에 대한 주체의식이라고 한다면
저 그림속 인물이 밀고 있는 카트와 물건은소유가 아니라마치 얼굴같은몸같은...존재가 아닌가....
아이텔은 뉴욕의 거리에서 마주친 노숙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 그를 변형해 화면에 옮겼다 . 원래 사진의 배경은 낮이었지만 , 그림 속에서는 밤으로 바꿨고 , 배경을 삭제해 그림 속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 "그림 속 모델과 마주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행위가 '시지프스의 노동 '처럼 무한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 '인생 '이라는 것이 곧 인간의 '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배경을 삭제하고 , 인물도 특정하지 않았다 . 그래야만 관객들이 그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으니까 ."(펌 )
보트라는 그림은 문학 평론가의 책 <느낌의 공동체> 라는 표지화로 사용되었다.
문그러니 팀은 문학평론가들이 좋아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생각나는데
호펴의 지나친 선명함과 빛의 대비에 비하면 팀 아이텔의 그림은 더 어둡고 물속 같다.
그래선지 더 깊은 우울 더 깊은 슬픔한없는 적막이다.
어두운 동굴속을 헤매다 겨우 환한 빛이 보이는 곳으로 나왔는데거기 환한 곳은 백척난간,
사람도 배도 나갈수도 뒤돌아설수도 없는데그저 빛만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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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이년 전에 쓴 글이다.
그리고 어제 학고재에서 팀아이텔의 실제 그림을 봤다.
좋구나.
뭐가?
그냥,
이 두그림만 조금 큰 사이즈고 다른 그림들은 아주 작았다.
그는 그림을 동시에 여러 점을 펼쳐놓고 그린다고 한다.
그림들 사이에 모종이 이야기가 형성되고 작품이 함께 끝나면
그 그림들은 서로 가족이 되어 함께 걸린다고 한다
그림 속 그림이다
학고재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