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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09. 2018

씨 뿌리는 사람

복제화는 세계명작 다이제스트와 비슷합니다. 

요약은 요약일 뿐 작품은 아니라는 거죠. 

초중고교 교실 빈자리마다 붙어있던  밀레의 그림은 오히려 밀레를 이해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게 했습니다. 

모든 익숙한 것들에는 매혹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만 요약된 스토리를 보고 명작을 이해할 수 없듯이 

밀레의 그림은 너무 익숙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림이었습니다. 

딸아이 결혼식 순서지에 쓸 그림을 찾아보다가 밀레의 ‘만종’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마치 은총처럼 부드럽고 온화합니다.

먼데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제야 일을 마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여 기도합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기도하는데 어떤 찬양보다 어떤 아름다운 설교보다 마음을 뒤흔듭니다. 

밀레의 신앙고백일까요? 

수많은 나날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끝없이 반복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을 

마치 자연처럼 

자연의 풍경 속에 살짝 놓습니다. 

‘만종’은 밀레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반 고흐가 최초로 모사한 그림도 밀레의 ‘만종’이었습니다. 

결혼식 순서지에 ‘첫걸음’을 넣으며 고흐가 밀레의 ‘첫걸음’을 모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흐는 특히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모작을 12편이나 했다고 합니다.

밀레는 생래적으로 아주 우울한 기질의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로망롤랑은 밀레에 대해 ‘

“만약 슬픔이 없다면 그는 슬픔을 만들어 냈을 사람”이라고도  했었지요.

모든 예술이 밝음이나 환함보다는 어두움 가운데서 생성되는 미묘한 부분이 실재합니다. 

밀레는 고통에 대해 예민했고 삶이 버거웠던 자신과 그 시절의 농부들....에 대해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1850년경에 그려진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그전까지 밀레는 농촌의 풍경을 아주 평화롭게 묘사했는데 

이 그림속의 ‘씨 뿌리는 사람’은 거칠고 담대합니다. 

씨 뿌리는 농부를 신이나 왕 영웅처럼 거대하게 표현한 것은 밀레가 처음이었고 

그 시절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밀레를 사회주의자나 혁명가로 손가락질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정치에는 매우 무관심했던 밀레는 

"설사 나를 사회주의자로 생각하더라도, 미술에 있어 

인간에 대한 측면이야말로 나를 가장 자극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농부의 신산한 삶을 나타내듯 작품은 어두운 색조입니다. 

노동의 즐거움은 그림 위쪽의 소를 몰고 가는 농부에게나 조금 흐를까, 

모자를 쓴 농부의 표정은 어둡고 

그가 씨를 뿌린 곳에서는 벌써 까마귀가 앉았다 일어납니다. 

녹녹치 않은 농사짓기 혹은 인생살이를 나타내 줍니다.

역동적인 농부의 모습과 노동의 고단함에서 오는 우울함이 함께 어우러져, 

오히려 농부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내 무엇이든 다 이겨내리...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막 4: 3-14)를 보면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씨 뿌리는 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속 말씀대로 혹시 밀레는 농부의 가슴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요? 

그래서 전도사가 되고 싶던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이란 작품을 그토록 많이 모사를 했고......... 

밀레의 영향력은 지대해서 평생 그를 오마쥬한 고흐 외에도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밀레가 속한  바르비종파는 배경에 불과하던 자연 풍광을 '풍경화'라는 독립 장르로 처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모네와 반 고흐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같은 소재를 두고 빛의 효과가 달라지는 시간대별로 여러 점씩 그렸는데 

밀레는 그 이전에 벌써 그런 빛의 차이를 느껴 시간대별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그림의 주체로,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박수근 화가 역시 밀레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쟝 프랑스와 밀레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농부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농촌의 고단하고 열악한 일상의 

삶을 그린 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림에 그려진 것이 아름다움을 빚어내지 않습니다. 그것을 그려야 할 욕구 그 자체에서 그것을 빚어낼 힘이 나옵니다. 제때, 제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 거슬리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폴론은 아폴론의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제 성격을 잃지 않습니다.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별것 아니게 됩니다. 쭉 뻗은 나무와 뒤틀린 나무 중에 어느 것이 더 아름답겠습니까? 제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움이란 주변과 어울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중에서)” 

 <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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