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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09. 2018

도비니 정원

고흐


봄은 어디메 쯤 왔을까요. 겨울 정원들은 차갑고 고요하며 멀리 보이는 숲과 산은 적막하기 조차 합니다. 깊은 밤 넉넉한 찻잔에 몇 이파리 차를 넣고 물을 붓습니다. 투명하고 말간 색을 마십니다. 찻잔을 감싸 쥐니 손이 서로를 안습니다. 거의 언제나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데 참 데면데면한 사이기도 합니다. 안고 부비며 서로 힘을 실어주기지만 일상의 행위일 뿐입니다. 찻잔을 가운데 두고서야  냉랭하던 두 손이 서로를 의식합니다. 아, 우리 ....친한 사인데.....잊고 있었네.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정원 일의 즐거움‘이란 책에서 헤르만 헷세는 자연이 주는 기쁨과 깨달음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평생 어디서 살던지 정원을 가꾸었는데ㅡ 한때는 포도를 가꿔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ㅡ 문학사조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지닌 작품을 발표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평화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정원의 힘이었다고 했습니다. 깊은 밤 그가 정원을 가꾸던 손을 생각해봅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겨울입니다. 엄격한 스승 같은 유별난 추위가 더욱 봄을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초록에 대한 갈증도 생겨납니다. 눈길을 걸어 친구와 함께 설중매라도 찾아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 밤 고흐의 <도비니의 정원>을 바라봅니다. 눈부신 초록세상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차고 넘치는 그림입니다. 생기 넘치는 환한 그림을 보며 고흐가 죽기 전 테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슬픔은 끝이 없는 거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남자. 그러나 그는 외롭고 아프고 그리하여 삶은 고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고흐가 존경하며 사랑하던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라는 화가는 이미 떠나고 없는데 정원은 마치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여전합니다. 공평한 죽음과 여전히 계속되는 세상의 간극 속에서 그는 혹시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흐는 테오에게 도비니의 정원이란 그림은 자신의 의도를 철저히 표현한 작품이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고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평생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저 정적인 식물들을 움직이는, 용트림하는, 살아 숨쉬는, 활활 타오르게 재창조한 그의 의도말입니다. 도도한 생명의 기운이 바로 고흐가 표현하고픈 혹은 그리 살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해 낸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고흐는 그림속 나무들처럼 싱싱하게 꽃처럼 피어나고  풀처럼 강인하고 싶었을 겁니다.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리던 해는 1890년입니다. 세상을 하직한 날이 그해 7월 29일이니까 이 그림은 그전 어느 날입니다. 연두색이 왕성하지만 초록과 진초록도 강렬합니다. 봄은 이미 지나가고 왕성한 기운의 찔레꽃머리가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무들은 한곳에 정지되어 있는 식물이 아닙니다. 마치 자신의 모든 존재를 가득 싸안고 어디론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한 모습입니다. 끝없이 팽창하는 나무들에 걸맞게 정원의 꽃들은 마치 구름이라도 타듯이 금방 두둥실 떠오를 것 같습니다. 풀을 품고 잇는 정원의 땅은 마치 파도라도 되듯 움직이는 듯 보입니다. 정원을 의젓하게 걸어가는 고양이가 오히려 정적으로 보입니다. 건물들은 정원의 생명을 지닌 식물들에 비하면 단촐하고 평범합니다. 도비니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정원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흐는 도비니의 정원을 세 장 그렸는데 두 번 째 그림에는 고양이가 없어서 호사가들은 고흐의 죽음을 암시하지 않았을까....설왕설래합니다만 굳이 고흐ㅡ의 죽음에 대한 예표를 찾는다면 도비니의 아내가 입은 상복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프랑스와 도비니가 세상을 떠난 해가 1878년인데 무려 12년이나 세월이 흘렀는데 그 때 까지 그녀는 상복을 입고 있었을까요? 

고흐는 산책을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에게도 말했습니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하라고, 그래야 예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문득 이 환한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손을 생각해봅니다. 붓을 든 손...물감을 짜는 손, 색을 만드는 손 그리고  나무와 꽃을 만들어가는 손을....,  

헷세는 사소한 기쁨들을 간과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 그 능력은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고흐는 사라졌지만 그의 작품은 남아서 이렇게 깊은 한겨울 오베르의 초록세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범사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계 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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