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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10. 2016

성탄

휴고 판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약 1440~1482

  




생각해보니 이중섭만 담뱃갑에 그림을 그린 게 아니다.

나도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성탄절 무렵이면 아버지 담뱃갑의 은박지를 모으던 기억이 있다.

두꺼운 골판지를 오려 그 위에  은박지를 붙이면 아주 멋진 별이 되곤 했다.

색종이를 잘라 이어 붙이면 색색의 체인이 되고 오빠들과 함께 그것들을 줄로 이어 방 문 앞에 매달곤 했다.

예배당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초라한 성탄 트리인데

예배당은 순식간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꿈 꾸는 궁전으로 변하곤 했다.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이 거대한 성탄트리가 교회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즐비하지만

탄일종이 땡땡땡 ~ 울리던 교회 종소리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내 어릴 때 그 작은 교회의 성탄트리가 베풀었던 기적은 이제 쉬 일어나지 않는다. 

 

15세기에 플랑드르에서 활약했던 휴고 판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약 1440~1482)의 <성탄>이다. 이탈리아인 토마소 포티 나리가 주문한 제단화로

세밀한 관찰과 사실주의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스토리로 변주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우선, 이 슬픔 많은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은 성탄의 시작부터 질고를 체득하시노라

맨바닥에 빈 몸으로 존재하신다.

마리아의 표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겸손하게 아기 예수를 지켜보면서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감정을 엿보이고 있다.

요셉도  두 손을  모은 채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있지만

경배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와서 예배하는 천사들과 지금도 날아오는 천사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세상 가운데서 세상일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멀리 보인다.

성탄의 그림에는 드문 마귀가  왼편 상단에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날개가 있다 해서 전부 천사는 아니라는 작가의 곡진한 귀띔일 수도 있다.

황금색 의상을 입은 마귀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이스라엘의 왕 ‘헤롯’이고

그 옆에 하얀 옷을 걸친 마귀는 지옥의 파수꾼으로 전락한 ‘루시퍼’다.  

신앙심 깊은 이 작가는 지상의 왕인 ‘헤롯’과 신의 권력에 도전한 ‘루시퍼’를 마귀로 표현, 등장시키며

오히려 성탄 = 아기 예수의 신성을  확연히 나타내 준다.

벗겨진 신발은 구별되고 거룩한 장소를 의미한다.

정면의 정물화는 마치 사람이라도 되듯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기 예수께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적이면서도 화려한 이 정물화의 붉은 백합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으며

세 송이의 카네이션은 성삼위일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밀 다발은 베들레헴을,  그리고 보라색의 매발톱꽃  콜롬바인은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겸허한 자태로 인해 이 슬픔 많은 세상을  은유하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목자들보다 더 가까이  아기 예수 곁에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듯 보이며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듯 두 손을 들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시선은 예수를 향하고 있지 않다.

몸은 예수 곁에 있지만 저기 세상 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성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배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은 초라한 옷차림의 양치는 목자들이다.

그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려고 아주 먼 길을 급한 걸음으로 힘차게 달려왔을 것이다.

목동들의 표정은 놀랍고 경외심에 가득 차 있으며

자신들에게 다가온 성탄의 첫 소식을 접하는 그 행운에 대해 감격한 표정이다.

휴고 판 데르 후스는 천사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보다 목동 세 사람을  사실적으로 실감 나게 그려

이 작품에 놀라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저들의 시선은 오직 아기 예수께만 집중하고 있다.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 초라한 옷차림의 목동들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예수님께 집중하는가? 예수님께만 마음을 두는가, 예수님만 향하고 있는가? 

 

날씨가 추워지면 기억나는 이야기 하나,

시베리아 어디는 얼마나 차가운지 숨을 내쉴 때에 귓전이 얼어붙는다고 한다.

숨에 있는 옅은 습기가 영하 50도의 차가운 공기에 접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수증기가 어는데 그때 '씨욱-'하는 예리한 소리가 귀에 들리고,

그곳 사람들은 그 '씨욱-'하는 수증기 어는 소리를 <별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는.....

하늘빛은 신비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별이 뜨는 시간. 12월 - 聖誕時!    (교계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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