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과 일찍 이별을 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기억, 함께한 추억들이 많지 않다. 5살 때 이별을 했으니 많은 걸 기억한다는 것도 이상할 일이지만 말이다. 많지 않은 기억들은 모두 소중하고 오래 간직하고 싶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기억에 남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안 좋은 기억이다.
우리 아기는 어느덧 두 돌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2년, 내 아들이 된 지 2년, 내가 아빠가 된 지 2년이 된 것이다. 신생아 때는 어찌할지 몰라 힘들고, 뒤집기를 시작하면 숨 막힐까 신경 쓰이고, 걸으면 걷는 대로, 뛰면 뛰는 대로... 성장할수록 조금 더 편해지려나 싶었지만 육아의 강도는 더 세진다. 요즘 두 돌이 된 우리 아이도 신체적인 발달은 물론 말도 많이 늘었다. 구사하는 단어도 많아졌고, 잘 알아듣고, 잘 따라 하며 뭐예요 라며 질문도 시작했다. 이제 대화가 조금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덩달아 고집도 생겼다. 고집도 그냥 고집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울고, 때를 쓰고, 심지어 바닥에 눕기까지 한다. 자립과 독립심이 커지는 자연스러운 발달 단계라 쓰고 부모의 인내심 테스트, 숨겨진 분노를 찾아내는 테스트라 읽는 시기다. 몇 년 전 방영했다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며 뭐 저런 아이가 다 있냐며 혀를 차며 보던 모습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그 아이가 내 아이다. 처음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고 차분히 대화를 시도한다. 떼쓰는 것도 귀여워서 웃으면 말한다.
“이것을 사고 싶구나? 이건 집에 있으니 집에 가서 아빠랑 같이 놀자! 일어나서 엄마한테 가자”.
더 크게 울며 눕는다. 한번 더 달래듯 이야기해보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몇 차례 말투와 관심사를 바꿔가며 시도해보지만 100 데시벨은 될듯한 울음소리로 답을 한다. 아직 화내지 말고 더 공감해보자며 마음을 다스림과 동시에 데시벨을 높이며 튀어나오는 말!
“뭘 어쩌라는 거야?!”
아이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그리고는 두 팔을 겨드랑에 넣고 ‘이게 오냐오냐 했더니 끝도 없네 라며 행동을 정당화하며 번쩍 들어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그 이후는 아이가 어찌 울음을 멈췄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사탕을 줬는지 아니면 화를 내지 않은 엄마는 자기편이라는 동질감과 위안이 생겨 울음을 멈췄는지 모르겠다. 잠을 잘 때도 아무리 꼬셔도 침대로 올 생각을 안 한다. 시간은 11시가 다되어가는데도 더 놀겠단다. 또 번쩍 들어 침대에 내려놓으면 자지러지게 운다. 이때는 엄마도 이미 지쳐셔 달래주지 않는다. 한참을 울다가 엄마한테 가서 안기고 이리저리 뒹굴다 잠이 들거나 울다 지쳐 잠이 들기도 한다. 잠든 아이의 자세를 고쳐주며 아이의 얼굴을 본다. 순간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울면서 잠이 들면 얼마나 불안할까?’
‘나한테 섭섭하진 않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한 일을 기억할까?’
‘내가 조금 더 기다려 주거나 놀아줘 써야 했나?’
‘혹시 오늘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아이가 걱정된다. 답답한 마음에 24개월 아이 발달을 검색한다. 이 또래들은 어떤지, 자연스러운 발달단계인지, 어떻게 이겨내는지 찾아본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가정도 있고, 잠 잘 잔다고 사랑스러운 가정사를 늘어놓은 내용의 글도 많다. 결국은 안 되는 건 안 되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는 원론적인 해답을 얻고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울었던 기억을 기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잠을 청한다. 요즘 이런 일이 많다.
따지기 좋아하는 나, 그냥 넘어가기 좋아하는 아내. 이건 이렇게 해서 이런 거고 저건 이래서 저래 된 거야. 무슨 일이든 그 일이 벌어진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잘잘못을 구분하는 나를 아내는 숨 막혀한다. 2년 동안 풀리지 않고 쌓여만가는 육아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지친 와중에 옆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내가 몹시 미운가 보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처음엔 그냥 듣더니 한숨을 쉬고 울먹이며 그냥 넘어가면 안 돼? 라며 바라보는 눈빛은 사랑의 감정도 미움의 감정도 없는 멍한 눈빛이다. 이런 일들이 다툼의 원인이 된다.
결혼 전에는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만나면 늘 대화의 중심이 되고 많은 사람을 웃기던 그녀가 2년 동안 제대로 누굴 만나지도 못하고 어딜 가보지도 못했다. 오로지 잘 걷지도 못하고 대화도 안 되는 아이와 함께 지냈다. 며칠 지나면 끝날 고통?이라면 아름다운 고통일 수 있으련만 육아는 언제 끝날지 모를 암흑과도 같은 시간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과 신경을 건드리며 예민하게 만드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야만 한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라며 읊조리는 노래 가사는 거짓말이다. 내 속엔 내가 없다. 나인데 내가 아니다. 아무도 없다. 누구로 채울 수 도 없다. 누가 채워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내가 누군지도 뭘 하는지도 왜 사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텅 빈 삶에서 그나마 존재를 인식하게 해주는 대상이 남편이데 시 시건 건 따지고 있으니 그나마 나를 찾을 수 있는 희망마저도 와르르 무너진다.
가시 돋친 말들이 오간다.
“넌 도대체 집에 오면 뭐 하는 거야? 알아서 청소 좀 하고 빨래도 좀 개면 안돼?” 퇴근 후 아이랑 놀아주는 나를 보며 아내가 이야기한다.
“뭐하긴? 아이랑 놀아주잖아?” 의아해하며 내가 대답한다.
“놀아만 주면 다야?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꼭 말을 해야 알아? 난 하루 종일 놀아주고 밥하고. 네가 와서 좀 쉬나 했는데 청소도 내가 해야 해? 지긋지긋해.”
“나도 힘들어! 하루 종일 일하고 왔어. 내가 놀다 왔어? 언젠 놀아주라더니 또 청소하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야? 힘든 거 아는데 적당히 짜증 내!”
큰소리가 오가고 서로 비꼬기도 비아냥 거리며 서로의 약점까지 들춘다. 결국 같이 사네 마네 하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말의 가시들은 어느새 칼날로 변해 서로의 마음을 찢어 놓는다.
어느 누가 울거나, 다른 방으로 문을 꽝 닫고 자리를 피해야만 상황이 종료된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아이. 아이 앞에선 절대 부부가 싸우는 모습 보이지 말자며 서로 약속하고 스스로 그렇게 다짐했건만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차마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없다. 아주 어릴 때야 모를겠거니 했지만 이젠 다 알아듣는 듯 엄마,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표정이 굳어지기도 한다. 아이를 안아주며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 놀랬지? ’ 하며 안아준다. 안길 때도 있지만 손을 뿌리치고 엄마에게 달려갈 때도 있다. 또다시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다섯 살 때 이별한 부모님에 대한 나의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부모님이 싸우던 기억이다. 일방적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둘렀지만. 술을 드셨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고, 어머니는 울면서 그만하라고 아버지의 발을 잡았다. 누나는 무서워 무릎 꿇고 잘못했다며 울면서 두 손을 싹싹 빌고 나도 누나를 따라 울면서 빌던 기억. 5살 때 아니 5살 때 이별했으니 아마도 3살, 4살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부모와의 기억이 많지 않아 남은 기억이 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3,4살 때 일을 기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그 일은 충격적이었고 무서웠고 괴로운 기억이다. 얼마나 자주 그랬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이러한 일이 어디 한 번뿐이었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너머의 기억들은 흐릿해진 문신처럼 기억창고 어딘가에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오래된 기억이라 문득문득 떠오를 때 말고는 딱히 기억할 일이 없지만 아빠가 되면서부터는 더 자주 떠오른다. 특히 아이에게 화를 낼 때, 아내와 다툴 때는 어제, 오늘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이유는,
‘내가 아이에게 화내고, 아이 앞에서 아내와 싸우는 모습을 보일 때면 나는 어느새 과거로 돌아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섯 살이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속상하고 무서움을 느끼는 다섯 살의 나는, 두 살 된 아이도 나와 같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온다. 미안함에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 난 화내는 아빠가 되기 싫고, 싸우는 부모가 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