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놀랬죠?

by frarang

“아, 씨”

자동차 장난감이 손에 잡히지 않자 아이가 낸 소리다. 소리 보단 말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내가 일이 잘 안될 때 자주 하던 말이다. 아이는 왜 나쁜 말은 기가 막히게 빨리 배울까 생각하던 차 또다시 ‘아, 씨’를 뱉는다.


아이에게 다가가

“주아야, 아 씨 말하지 마! 나쁜 말이야.”

주아는 몸을 비틀어 안 들으려 한다.

“ 아빠도 앞으로 안 할게.”

그제야 “네” 대답한다.

이 녀석도 아빠는 하면서 저한텐 하지 말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보다.

아이 앞에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니 뭐든 조심해야 한다.

하루는 어린이집 통학 차에서 주아를 내려주며 선생님이 아내에게 말했다.

“어머니, 주아가 오늘 엄마는 맥주랑 땅콩을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선생님 모두 빵 터졌어요. 아빠는 초록색을 좋아한데요. 너무 웃겼어요.”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주아에게

“너~어! 엄마 맥주 먹는다고 다 이르고! 아빠가 좋아하는 초록색은 뭐야? 막걸리야?

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흉볼 일은 아니지만 주아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맥주와 땅콩을 떠올린 게 왠지 창피하고 주정뱅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쁜 말만 따라 하는 건 아니다. 요즘 주아가 자주 하는 말은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 다. 내가 아이와 놀면서 자주 쓰는 말이다. 아이가 침대 위에서 뛰다가 넘어지면 몸을 흔들며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 하며 장난을 했다. 물론 말투도 로봇 연기 톤으로 감정을 빼고 했다. 이후 툭하면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를 했더니 이젠 요 녀석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같이 놀다 아빠를 발로 밟거나 몸 위로 넘어지면 진짜로 아파서 얼굴을 찌푸리고 통증을 참고 있으면 다가와서


”갠차나요? 마이 노랬죠? "

아파서 얼굴이 노래지긴 했지만 그런 말을 따라 한 것에 놀랐고 너무 귀여워서 괜찮아졌다. 그 이후 아파서 쓰러지면 툭하면 로봇 연기 대사를 외친다.

또 있다. 다급한 목소리로

"주아야! 이게 뭐지? "

주아는 의자 밑에서 뭔가를 줍는 아빠를 심각하게 바라본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어 ‘사랑해요’ 하면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주머니에 선물을 꺼내는 척하면서 ‘사랑해요’

이불속에 장난감을 찾는 척하면서 ‘사랑해요’

아픈척하다 가까이 오면 ‘사랑해요’

책장을 넘기면서 ‘사랑해요’

창문에 누가 지나간다고 다가오면 ‘사랑해요’

그러니 이제는 ‘주아야 이게 뭐지?’만 해도 바로 반응한다.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지 못해 엄지만 세우고 얼굴을 옆으로 살짝 숙이며

‘사라해요.’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들은 커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자연스레 배우고 따라 한다. 그게 좋은 거든 아닌 거든 가네. 그렇다면 이왕이면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가

더 좋은 단어,

더 좋은 몸짓,

더 좋은 이야기,

더 좋은 행동,

더 좋은 관계를 보이면

아이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행복해하고

더 많이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몇 번을 다짐해도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아이를 상상하며 미소 짓는 엄마, 아빠에게 대뜸 다가와 영혼 대신 장난기 가득 담아 한마디 한다.


‘괜찮아요? 마이 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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