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컸다고 낮잠을 안 자려한다. 오후 2시 반을 넘겨 겨우 재웠다. 엄마들이 낮잠을 재우는 이유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라지만 더 큰 이유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며 아이의 오지랖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서인 줄은 부모가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아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커피를 마시며 밀린 카톡의 답장을 보내고 마감 시간이 다 돼가는 딜에서 주말 먹거리를 사기 위해 열심히 리뷰를 확인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코로나 19로 종일 집에 있는 아이 때문이다.
빨래를 돌리고 난 후에는 건조대에 널린 수건을 개서 욕실 수납장에 정리한다. 택배로 주문한 냉동식품을 정리하고 장난감이 널브러진 아이 방과 거실을 정리하고 소파 밑으로 들어간 장난감을 바닥에 엎드려 빼고 나면 대충 할 일이 끝난다. 마지막으로 저녁 먹을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면 그제야 소파에 앉는다. 물에 잠긴 쌀처럼 푹 퍼져버린다. 이제야 커피 한잔 마시며 제대로 쉬어보려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슬슬 잠이 오려는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깼다. 시계를 보니 세 시 반이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간다. 그 어떤 성악가 베이스보다도 낮고 깊은 소리.
옆에 없는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잘 잤냐 묻고는 품에 안고 거실로 나온다.
아이는 깨끗해진 거실을 자기 전으로 되돌려놓고 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마시다 만 커피를 한 모금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는 언제 엄마를 봤는지 엄마 뭐 먹어하며 쏜살같이 달려온다. 엄마는 뜨거워 뜨거워를 10회 연속 속사포처럼 외치며 컵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다행히 커피는 엄마 손에만 흘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보다 속에서 나는 천불이 더 뜨겁게 느껴진다.
“주아야 엄마 커피 마시는데 그렇게 뛰어오면 어떡해?”
그리고는 또다시
“하아….”
더 깊어진 한숨.
아이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는 엄마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기어오르고 있다. 다리를 밟고 어깨를 밝고 얼굴을 짓이기며 오르고 내리 고를 수차례. 엄마는 정글짐이 되었다. 제 몸 제정신이 아닌 엄마는 아이가 장난감에 한눈판 사이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려 커피 컵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커피 컵을 닦다가 미끄러져 컵이 깨졌다. 그 순간 아내의 멘탈도 깨졌다.
“하아, 진짜.”
아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뭐하나 싶고, 되는 일도 하나 없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난다. 정말 짜증 난다. 정말 미칠 것 같다.
그 순간 주아는 울음소리를 듣고 바닥에 주저앉은 엄마에게 달려와 뒤에서 안아주며 속삭인다.
“엄마 아까 미아해쪄요”.
엄마는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든다. ‘뭐?” 미안했다고?’ 30개월짜리가 이런 말도 하나 놀라며 아이를 꼭 안아준다.
“주아야~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엄마는 눈에는 눈물, 입가엔 미소를 보이며 아이의 볼에 뽀뽀한다. 한마디 말로 한 사람을 지옥과 천국을 오가게 만들고 짜증에서 놀람으로, 피곤함에 활력을 불어넣고 저녁 메뉴를 바꿔 놓았다. 모든 짜증과 피로가 날아갔다. 단 한마디 말로.
엄마들은 불쑥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느낄 때 육아의 고통과 인내에 보상을 받는 듯하다.
그 이후 주아는 뚝 하면 아까 미아해쪄요를 외친다. 하지만 더 이상 감동은 없다. 꾀가 늘었다. 이젠 아내도 놀라움 대신 인상을 찌푸리며 되받아친다.
“너어, 이젠 안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