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누가 하는가

그곳에 살던, 그곳에 남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12 솔져스>

by 다흰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총성이 빗발치는 장면은 영화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가히 내 인생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영화를 보며 유일하게 느끼는 불편함은 언제나 미국이 영웅이 된다는 것이다. 어벤져스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이 미국 국적인 어벤져스 멤버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어떤 국가든 이동해 빌런들과 싸울 수 있다. 도시가 난장판이 되어도 어벤져스는 그저 빌런들과 싸우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뿐이다. 때론 현지인이 희생될 때도 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소코비아 협정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전쟁은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전쟁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의문점이 들었다. 원래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쟁이 끝나면 폐허가 된 자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까? 이런 생각이 들던 중 <12 솔져스>를 만났다.


b032efc4bd9ca1eb9a4b83db6eebe2f8ecdec594 ⓒ Daum 영화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MCU에서 망치의 신, 아니 천둥의 신 토르 역을 맡았던 크리스 헴스워스이다. 전투 능력이 전무한 캡틴 넬슨은 9.11 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의 군벌과 협력하여 탈레반의 점령지를 공격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영화 초반에서 도스툼 장군이 캡틴 넬슨을 할 말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었다. "우리가 싸울 테니 너네는 여기 있어라"라던가 "우리가 먼저 갈 테니 너네는 여기서 잘 살펴보다가 나중에 와라" 이런 대사를 아프가니스탄의 장군이 미군 부대의 캡틴에게 건넨다. 누가 봐도 전투의 주도권은 아프가니스탄의 장군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임무는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장군과 캡틴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이 빚어지는데, 이런 장면이 있었다.


나의 부하 50명 보다 너희 미군 1명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


도스툼 장군이 캡틴 넬슨에게 한 말이다. 전쟁 시 미군과 아프가니스탄군의 위치를 잘 표현한 말이다. 미군은 임무 완수와 함께 부대원이 모두 살아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 되지만,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좀 다르다. 임무 완수는 물론이고 자신의 터전을 되찾아 전쟁이 끝난 뒤에도 후손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까지 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덜' 소중하다고 표현하면서까지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단순한 생존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책임감과 사명의식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내가 그간 전쟁 영화를 보며 떠올렸던 의문점이 생각났다. (원래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침략한 누군가에 의해 어딘가로 쫓겨났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금 생존 경쟁을 해야 함을. 더불어 이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를 더 한다. 바로 미군과 도스툼 장군 과의 협력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탄자니아가 떠올랐다.


dd47a35587362b230df2ab70baf23d3d890b4e09 ⓒ Daum 영화

내가 탄자니아에 있는 동안 근무했던 지부에는 약 20여 명의 직원들이 있었다. 가장 높은 직급이었던 사무장과 자원봉사자인 나를 제외하고 모든 직원들이 현지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사무장의 비서 역할을 했는데, 어렵거나 힘든 요청이 있으면 모든 직원들이 나에게 와 같이 사무장에게 가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장 그녀는 매우 무서운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혼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모든 직원들을 닦달에 시간 안에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마치 그녀의 소명 의식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NGO인데, 마치 사기업의 속도처럼 모든 업무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래서인지 사무장을 제외한 직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연대 의식이 생겼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무서워해서 힘든 일이 있으면 그녀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해결했고 내가 사무장에게 혼나고 오는 날이면 직원들이 몰래 위로를 해주거나 맛있는 간식을 주기도 했다. 역시 적이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친해진다더니, 그런 식으로 나는 업무와 사무실의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무장이 나를 불렀다. "00 씨는 왜 그렇게 현지 직원들이랑 친하게 지내요?" 나에게 물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할 직원들이고 그들이 없다면 나는 사실 어떤 업무도 할 수 없는 처지인 데다가 일개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해 언제나 나는 나보다 직원들이 위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00 씨보다 윗사람들이 아니에요. 저렇게 착하게 말해도 속은 까만 사람들이야. 조심해야 해요. 그렇게 맨날 웃으면 무시당하니까 그만 살갑게 굴어요." 아마 이 말을 들은 날 다짐했던 것 같다, 저런 사람 밑에서는 일해야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때부터 현지 직원들 사이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044b94271e80c84a09915ea0c2d5110acb33962d ⓒ Daum 영화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아프리카와 관련된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힘든 사람들이 있으니 꼭 도와달라"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룬다. 하지만 정작 가보면 오히려 불행하게 사는 건 내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전년도 자원봉사자가 살던 집에 내가 들어가기로 했었는데, 2달 정도 비워져서 사무장이 수도에서 파견 근무를 온 현지 직원에게 잠시 빌려주었다. 약속했던 2달이 지나 내가 그 집에 들어갔는데, 수도도 전기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전년도 자원봉사자는 분명히 물과 전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집에서 지냈던 현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물 없이, 전기 없이 2달 동안 지냈다고 하는 것이었다. 탄자니아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내가 있던 도도마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전기가 없이 생활하고 있었고 물이 하루에 몇 번씩 끊겨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그에 비해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물이 끊겨도 난리를 치며 옆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곤 했다.


709031a73e7a6ab9d763fd622132d9b68c68b3a1 ⓒ Daum 영화

6개월 동안 탄자니아에서 지내면서 국제개발협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다. 이 단어를 세 구간으로 나누어서 보자면 국제, 개발, 협력이다. 국제라 함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국가로 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개발은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전을 도모하는 업무를 의미할 것이고 협력은 현지인과 더불어 함께 발전을 요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급한 마음을 가진 우리에 비해 현지인들은 언제나 여유롭다. 오늘까지 보내야 하는 수표가 있어서 빨리 은행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나에게 우리 운전기사는 "천천히"라고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이 미개하다고, 발전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를 가진 나라에서 온 나는 3G 혹은 2G가 터지는 이 땅이 답답해 터지겠는데, 현지인들은 G가 잡혀도 좋아한다. 이렇게 우리는 다르다. 현지 문화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발전은 우리의 속도를 요구한다. 이것은 절대 협력이 아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우리는 손님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원래 이 곳에 살던 사람들도, 모든 개발협력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살 사람들도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길게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정말 잠시 다녀가는 손님일 뿐이다. 그렇기에 국제개발협력은 우리의 손이 아닌, 그들의 손으로 일구어져야 한다. 결국 남는 건 그들이기에.


476198e988364b4ca38479635e0eafb715583f72 ⓒ Daum 영화

영화 속에서 캡틴 넬슨과 도스톰 장군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화해한다. 비록 살아온 곳도, 앞으로 살아갈 곳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기반으로 서로의 무기를 잘 활용한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지리와 탈레반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도스툼 장군의 장점과 각종 비행기와 폭탄으로 하늘을 점령하고 있는 미군의 장점이 합쳐져 결국 탈레반 점령지를 탈환하고 그 이야기는 이렇게 영화로 다시 쓰인다.


국제개발협력을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나눌 수 없겠지만, 내가 있던 도시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 도시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조금만 더 나은, 조금만 더 풍요로운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적인 것을 의미한다. 현지 직원들을 무시하는 사무장이 없어야 하고 우리의 속도를 강요해선 안될 것이다. 그들의 속도로, 그들의 손으로 조금씩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승리'에 나의 흔적이 일부라도 있다면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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