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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Jan 16. 2020

나의 우울증 이야기 1

우울증 치료의 시작


반 고흐 시리즈를 쓴다고 한 지 벌써 세 달이나 지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었지만 반 고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야 했기에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길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언가를 정리하고 계획한 후에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다. 내가 쓰는 많은 글을 영화를 주제로 하지만 대체로 나의 과거와 감정에 관한 글이다. 실제로 내 연애사가 많이 들어가 있고 그 당시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웬만해선 예전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반 고흐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시리즈를 계획하는 과정이 꽤나 어려웠다. 그저 책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생각나는 글들을 쓰면 되었는데, 욕심을 부리다 보니 결국 정리를 하다 포기해버렸다.


둘째, 반 고흐에 대해 조사하다가 내 우울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매 년 겨울이 되면 유독 우울증이 심해졌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빨리 찾아왔다. 물론 반 고흐가 계기는 아니었다. 계기는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이었고 반 고흐는 그저 기폭제였다. 전 남자친구는 나와 이별하고, 아니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내 탓만 했다. 내가 무엇이 그렇게 못났고 끔찍한 인간인지 마치 리스트를 적어놓은 것처럼 친절하게 나열해주던 사람이었다. 나를 이해하기보다는 '도대체 너는 왜 그러냐'며 의문을 품던 사람이었고, 나의 미운 점을 감싸 안아주기보다는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이었다. 마지막 그 순간에 무려 세 시간이 넘는 통화에서 그는 본인이 느낀 나의 단점을 하나하나 열거해주었고 헤어지고 한 달이 지난 통화에서도 여전히 그는 내가 싫었던 점을 똑같이 이야기해주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이 인간이 부족해서 헤어진 거야'라고 생각했었지만, 정신승리일 뿐이었다. 그 사람과의 기억이 나를 파먹었고 나 스스로 자책하고 내 잘못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반 고흐 시리즈를 일종의 트라우마 치료제로서 시작하려고 마음먹었고 반 고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책을 다섯 권 정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 우울해졌다. 특히 반 고흐의 편지는 더욱더 그렇다. 테오와 처음으로 나눈 편지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수록 그는 절망에 가득 찬다. 자신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 밖에 할 수 없다고 테오에게 이야기한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점점 우울해지는 고흐를 보며 나도 함께 우울해져 갔다. 그 우울감이 점점 더 심해지자, 나는 그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안 그래도 겨울이 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운데, 이러다가는 내 우울증이 더 심해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반 고흐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처음에 계획했듯이 그의 삶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작품을 들여다보는 내용은 아니다. 이미 그런 책들은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다. 다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반 고흐의 삶을 지켜보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꼈던 나의 감정들과, 무엇보다도 그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제목 역시 '나의 우울증 이야기'이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는 오늘부터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나에게 우울증이 있다고 판단된 것은 오래전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치료가 필요하다,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정신과에 우울증을 상담하러 갔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가게 된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심하게 우울증이 있었는데 왜 이제 오게 되었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요즘에 나는 내가 두렵다. 나에게 죽음이 너무나도 쉽게 느껴지고 가깝게 다가오는 이 상황에서 오로지 나를 구하기 위해, 이대로 두었다가는 정말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아서 가게 되었다.


수 장의 검사지를 작성하는 데에도 눈물이 났다. '무기력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걱정이 많다' 등의 짧은 문장들이 최근에 내가 느낀 감정들과 너무 맞닿아있어서 그저 슬프기만 했다. 상담을 하는 데도 눈물이 나려고 해 꾹 참았다. 마치 내 눈물을 기다리는 것처럼 바로 앞에 휴지가 있었지만 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맘 편히 울 걸 그랬나 싶다. 결국 이렇게 집에 와서 한 바탕 눈물을 쏟을 거면서.


검사와 면담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경도도 아닌 고도의 우울증이라고 나왔고, 고도 중에서도 가장 높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과 내가 알아차렸지만 우울증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증상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이야, 역시 전문가는 다르네'라는 생각과 '내가 이 정도로 심각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면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로 하고 약을 받아 돌아왔다.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로지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두 사람뿐이다.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와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이다. 내가 가장 사랑이 듬뿍 담긴 글을 썼던 대상이자, 가장 증오하는 마음을 담긴 글을 썼던 대상이다. 나에게 우울증을 안겨준 사람이자, 동시에 이겨낼 힘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끊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나의 우울증 고백이었다. 몇 달의 고민 끝에 이 사람과 만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우울증이 있다고 고백했고 나는 그대로 버림받았다. 이 이야기는 다시 쓰고 싶지 않다. 생각만 해도 너무 괴롭고 그런 사람이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는 것이 끔찍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의 나는 수업도 제대로 못 갈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해져 있던 상태였다. 아침 수업은 빠지기 일쑤였고, 매 번 거짓으로 만든 진료확인서를 내곤 했다. 수업이 끝나면 참던 울음을 혼자 화장실로 달려가 터뜨리고 그렇게 한두 시간씩 울며 하루를 보냈다. 정말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상태가 전혀 좋아지질 않았고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도 않았다. 결국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학교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가며 울면서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다. 예상하고 있듯이 그는 죽으려는 나를, 정말 말 그래도 죽으려고 하는 나를 외면하고 통화를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 이제 수업 들어가야 돼, 끊어" 이 말을 듣고 옥상으로 올라가다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것 같다.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죽고 싶어도, 날 죽게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을 해도 결국 이 사람은 나의 죽음보다 자신의 현실이 더 중요하구나. 나는 그저 이런 사람일 뿐이구나. 눈을 떠보니 저녁이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잠에 들며 생각했다. 결국 죽지 않았구나, 나는 또 하루를 벌었구나.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 역시 모를 것이다. 당신이 내 탓을 할 때,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을 때 얼마나 내가 이 세상을 살기가 싫은지 말이다. 그저 내가 듣고 싶은 몇 마디만 해주면 되는데, 내가 이상한 사람인처럼 나를 비난하고 의문을 품을 때 나 자신에게 회의감이 든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지? 다만 당신은 그 사람과 달라서 다행이다. 이런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당신 덕분에 하루하루를 벌고 있다. 오늘 하루를 벌어 내일을 살고, 내일 하루를 벌어 모레를 살고 있다.


다만 방금 전까지의 우리의 다툼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역시 나는 상처 받았을 때 가장 글을 잘 쓴다고, 죽으러 베란다로 나가는 대신 노트북에 앉았다. 나에게 그만 좀 하라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지. 그리고 이제 회사를 가야 한다며 먼저 잔다고 하였다. 나는 그저 이런 나의 질투 어린 행동에 답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혼자 울며 아주 작은 위로라도 필요했는데, 오늘 하루종일 행복한 척하며 웃었던 나에게 한 마디라도 해주길 바랐는데, 당신은 그저 나에게 등을 돌려버리고 잘 뿐이었다. 나의 하루를 벌어주는 사람이 나의 가장 끔찍한 기억 속 그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결국 결론은 이거였다. 말을 꺼낸  .


언젠가는 나의 악순환이 끝났으면 좋겠다. 나도 내 탓이 아니라 남 탓 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이번 겨울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길 바라며, 아니 적어도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은 죽지 않길 바라며, 하지만 동시에 이 글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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