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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정치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by 늘봄유정

2025년은 대학 입학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30주년을 기념하며 동기회장은 MT를 기획했습니다만 서른다섯 명이던 동기 중 MT에 동행하는 인원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습니다. 30년의 시간 동안 청춘에서 멀어진 우리, 처한 상황과 현실의 간극도 벌어진 우리를 생각하니 쓸쓸해집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서른다섯 명의 동기 중에는 외교관을 꿈꿨던 이도 있고 사회부 기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이도 있습니다. 시위대에 합류해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을 외치기도 했으며 대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는 무엇이 그리 괴로웠던지 쓴 소주를 강냉이 하나로 감당했습니다.

당시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50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은 가혹합니다.

KDI가 2024년 발행한 <직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중장년 노동시장의 현황과 개선 방안> 자료에 따르면, 중장년은 한국의 경제활동 인구 중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문적 업무에서 벗어나 육체적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존의 일자리와 비슷한 직무에서 일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이기 시작하는 나이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경제적인 안정과 불안의 경계에서 50세는 자녀의 교육·취업 지원과 동시에 은퇴한 부모의 돌봄을 책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기라고는 하지만 은퇴, 건강, 가족 문제 등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과 경제적 불안이 증가하며, 심리적 안정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생애 연령의 가운데에 서 있는 50대는 정치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선거인 수 4천439만 1천871명 중 50대 유권자가 868만 3천369명(19.6%)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이상은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특히 50대 유권자의 투표율은 2017년 대선 78.6%, 2022년 대선 81.4%, 2016년 총선 60.8%, 2020년 71.2%, 2024년 71.6%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글을 쓰는 현재 2025년 대선 현황은 집계,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적 성향 변화와 인구 지형 변동으로 그 영향력이 이전과는 달라졌다지만, 50대 유권자는 전통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가장 많은 인구 규모를 바탕으로 선거의 '스윙보터'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지원 등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경제활동 인구로서 복지 재정의 주요 부담층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책의 방향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중요한 연령대인 것입니다.



서른다섯 명의 동기중 여학생은 다섯 명이이었는데 그중 세명과는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가정 주부로 살던 시절, 가사와 육아밖에는 관심 있는 게 없던 저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습니다. 헹여나 누군가 "오늘날 정치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하기라도 하면 땀을 삐질 흘리며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있나요? 전공했다고 다 잘 아나요?" 하며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프리랜서 토론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9년 전부터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꽤 괜찮은 스펙이 되어주고 있습니다만, 늘 지식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거북함과 불편함을 저 역시 느낍니다. 그런데 저의 그것은 조금 다릅니다. 정치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부채의식, 그것에 기인한 불편함이기 때문입니다.

4년 동안 정치를 배웠지만 정치를 모릅니다.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해도 저는 잘 끼지 않습니다. 제대로 모르는데 함부로 말하는 것은 전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는 그런대로 만족하며 잘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알고 싶다는 욕구도 없었고 경황도 없었지요. 그런데 4년 전인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졸업 후 처음으로 답답함과 갈증을 느꼈습니다. 당장 누구를 뽑아야 할지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고 그 이유를 명확히 서술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들을 다시 들춰본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고 결국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서른다섯 명의 동기 중 연락이 닿는 이들은 스무 명이었습니다. 그중 저를 비롯한 다섯 명이 함께 공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전공을 살린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며 삶이 주는 피로감에 정치 따위는 잊고 산지 오래이나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치학도로서의 정체성을 조금은 끄집어내고 싶은 이들일 것이다.'라고 저 나름의 해석을 내렸습니다. 거기에 두 명의 후배까지 합류해 총 7명이 한 달에 한 권씩 정치와 관련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의견을 모았지요. 그렇다고 엄청 거창하고 무게감 있는 모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모임을 세력화해서 정치사에 큰 획을 그어보자는 움직임은 더더욱 아니었고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이지만 '시민'이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혹은, 도대체 세상이 왜 자꾸 마음에 안 드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기 위한 걸음이었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동기와의 의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함께해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면 친구들도 각자의 의미를 찾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모임이 4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지난 4년, 그 혼돈의 시기를 독서로 버텼습니다.


붉은 페인트를 적신 두꺼운 붓으로 현수막에 글귀를 휘갈기고 민중가요를 흥얼거리던 20대의 우리에게 시대 의식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었나 궁금합니다. 지금의 제게 정치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먹고사는 걸 해결해 주겠다는 정치인을 쫓는 것이 진짜 개돼지 같은 발상인지, 아니면 그것을 해결하는 게 결국 정치인지, 뭐가 이리도 복잡하고 시끄러운지,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텐데 명확한 원인이 있기는 한 건지...


제가 너무 무지해서 답을 모른다는 생각에 시작한 공부였습니다. 천천히 길게, 함께 읽어보자고 모인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한때는 정치학도였던 우리의 정치 공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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