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강원택 >
동기들과의 책모임에서 책을 정할 때의 기준은 가능하면 300페이지를 넘지 않을 것, 어렵지 않을 것, 재미있을 것이었습니다. 움츠렸던 사고에 기지개를 켜는 첫걸음이니 어려운 책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정치를 일상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시작한 일이니 지적 허세를 부리기에 적합한 책을 찾을 이유도 없었지요.
그래서 찾은 첫 번째 책은 '서울대학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줄여서 서가명강 시리즈 중 강원택 교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입니다.
1부 대통령, 한국 정치의 드라마틱한 주인공
2부 선거, 격변을 예고하는 중요한 시그널
3부 정당, 정치의 역사를 쓰다
4부 민주화, 일상에서 '촛불'을 만나다
총 4부로 구성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네 가지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p99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인물 중심적인 특성을 강하게 지니게 된 것은, 원래 고안했던 견제받는 대통령제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등에 의해 독재 정치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특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1987년의 민주화에 대해 저자는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일부 조항의 수정이나 폐기는 이끌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에 그쳤다는 것이죠. 강화됐던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데는 미온적이었기에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는 것이 현실이라고(p96) 말합니다. 그러면서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여 내각을 구성하게 하고 의회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각제적 속성을 갖지만, 대통령이 총리 지명이나 법률안 거부로 혹은 의회 해산권 등 총리와 내각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하다 보니 책임감을 갖고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다만, 정권 획득을 향한 열망이 심한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정당을 생각했을 때 과연 이상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입법부에 있어 행정부까지 한 당에서 장악했을 때 독재보다 더하지 말란 법은 없어 보이거든요.
p182 선거 정치는 우리 정치사에서 커다란 정치적 격변이 있기 전에 의미 있는 시그널을 보내왔다. 또한 4.19 혁명이나 6월 항쟁 모두 선거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절차적 민주주의가 복원되었고 이제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나라의 선거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정치적 경쟁의 장이 되었다.··········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소극적 목표를 넘어 개방적이고 공정한 대표성의 확립,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의 자유, 비례성의 확보 등 민주적 가치가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 정치를 개혁해 나가야 할 때다.
선거는 민심을 반영하고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는 시그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장치, 선거제도의 개혁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죠. 저자는 두 가지 안을 제시합니다.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는 것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것입니다.
지금도 짜증 나는데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고?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과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국회의원들의 행동 때문에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p184). 이에 저자는, 국회의원 수가 늘어난다면 즉, 많은 이에게 기회가 열린다면 권위적인 모습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다양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되므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줄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지요. 국회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인구 규모가 작을수록 국민 모두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법이 연동현 비례대표제였는데, 이 책이 출간된 2019년에 저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지를 말입니다. 2020년 총선에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꼼수가 등장해 대의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것은, 기존의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 얼마나 이상적인지를 보여줬던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권력을 가진 조직이 스스로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이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p85) 하지만 저는 여전히 믿고 싶습니다. 최선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국민이 더 많다는 것, 정치인들이 그런 민심을 읽고 행동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요. 그러려면 국민들이 정치적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열심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정치를 보면서 생긴 불편함과 불쾌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1부 대통령과 2부 선거'는 2022년 2월을 살고 있던 저에게 '바로 지금'의 문제를 고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어 여전히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우리나라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돼야 그 권력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사용할까.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는 게 뭘까. 다수 국민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한다면, 대체 다수 국민의 이익은 무엇일까. 선거란 민심을 반영하는 시그널이라는데, 이번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어야 국민들의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는 걸까. 이번 선거가 끝나면 우리나라는 어떤 격변을 맞게 될까.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 힘당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247,077표, 0.73% p 차이로 누르고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윤전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3년은,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국가의 안정과 번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감케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의 의미와 가치, 무게를 인지하지 못한 리더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실감할 수 있던 시기였지요.
직선제 변경 이후 최단기 재임대통령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국민주권정부'라는 별칭으로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 이재명 대통령은 갈등과 반목, 혐오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다양한 국민의 뜻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까요.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막강한 그 권한을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할까요.
책을 읽었어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책 속 정치와 현실 정치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기도 하지만 그 틈을 채울 수 있는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이런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요. 나의 입장에서 출발한 나만의 관점, 거기서 나온 결론을 들고 서로를 향해 핏대 세우지 말고 일단 질문부터 쏟아내 보는 겁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정치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요. 상대를 부정한다고 내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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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정치할 생각이 있으신 거예요?"
학부모회장과 학교운영위원을 했었다고 말하면 받는 질문입니다.
"시의원 나가보세요~"
교육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듣는 말입니다.
"그렇게 봉사하다가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면 좋겠네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정당일을 좀 하셔야 하는데."
기, 승, 전, 정치입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사래를 칩니다. 정치는 그렇게 제 삶에서도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요. 어쨌든, 상대가 흘리는 농담을 주머니에 주워 담아 집에 와서는 몰래 펴보곤 했습니다. 내가 정치를? 내가 시의원을? 상상을 하다 보면 절로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깜냥이 안 되는 건 둘째치고 정치라는 더러운 투전판에 몸을 던진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죠. 정치는 그렇게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제게 박혀있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게 정치라고 정의 내린다면, 더럽거나 두렵더라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게 정치라는 생각과 함께, <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3부>를 펼쳐봅니다.
3부 정당, 정치의 역사를 쓰다
정당이란,
선거에서 공직을 얻음으로써 통치기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의 모임(p193)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의 원칙에 입각해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합된 사람들의 단체이며, 집권 후 어떠한 형태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전제되어 있다. (p194,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당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란 원래 불일치나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합의는 만들어지는 것(p198)인데, 정당이 바로 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대화, 토론, 타협, 양보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고요.
공동의 이익이 아니라 제한된 소수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파벌과 동일시했던 집단(p197)이 정당에 대한 인식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과거형으로 말하죠. 민주화와 함께 정당은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 주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합니다. 최소한 영국에서는요.
우리나라의 정당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 토론, 타협, 양보, 합의, 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이념과 철학이 없는 껍데기뿐이다 보니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해야 할 몫을 찾지 못합니다. 곳곳에서 사회 갈등이 드러나고 있지만 어느 정당도 제대로 된 대변을 못하고 합의는 더더욱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선거에서 이기기는 해야겠고 민심을 사로잡을 방법은 모르겠나 봅니다. 점점 자극적인 언론에 기대고 상대를 밟아 반사이익을 얻으려 하지요. 정치인들이 광장 민주주의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치적 이슈가 생겼을 때 정당은 직접 거리로 나갈 것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서 차분하고 합리적인 토론과 논리로 해결하고자 해야 한다(p248)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국가의 영역과 시민사회의 영역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역량 있는 사람들이 공공 책무를 담당하도록 훈련'시키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p201~204)고 조언하지요.
저자는, 의원 중심보다는 당원이나 지지자 중심의 정당이 되어야 하고 조직으로서의 정당을 이끌어나갈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245) 정당의 약화, 리더십의 약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정치적 경험이 일천하거나 아예 없는 사람이 대중매체의 출현이나 다른 비정치적 활동을 통해 인기를 높이고 그러한 인기가 여론조사에 반영되면서 일약 유력한 정치 지도자군으로 떠오르는 일'을 언급합니다. 음... 2019년에 2022년 대선판을 예언하셨네요.
전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서 경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함으로 평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혐오나 불신에 기반하여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모두 나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은 선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는 오히려 무책임하고 나쁜 정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p248)
이 부분은 고민해 볼 일입니다. 왜 정치신인에게 나라를 맡기고자 하는 여론이 들끓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그 신인에게 절대 맡기면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는지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일단 시켜봐야 잘할지 못할지 알 수 있는 일에 지레 겁먹지 말자는 주장과,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는 주장 사이에서 '그놈이 그놈'이라며 좌절하던 2022년 대선 때가 생각납니다.
저자는 이러한 정당정치의 폐단을 없앨 수 있는 방법으로 2장에서 말한 선거법 개정을 이야기합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다당적 구도로의 전환말이지요.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정당체제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쟁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p251)
상대 당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동력 삼아 지지층을 결집하는 '팬덤 정치'가 바로 한국의 양당제입니다. 현행 선거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인 양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한, 다당제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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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자명한 사실을 체감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과연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잘 반영이 되고 있는 것인지, 위임된 권력이 잘 행사되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죠.
권위주의 시대를 시민의 힘으로 청산한 1987년 6월. 이후로 30년 넘게 흘렀지만 그때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더 발전했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4부에서 제시합니다.
<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4부. 민주화, 일상에서 '촛불'을 만나다.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타협'이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본질적으로 체제의 전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화 세력은 권위주의 세력에게 전면 항복을 요구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고, 권위주의 세력 또한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전면 거부할 정도의 힘은 없었다. 양측의 힘이 일정한 균형점에 도달했을 때 두 세력은 정치적 경쟁 방식의 민주화, 즉 직선제 개헌으로 상징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p290)
우리 국민은 중요한 순간마다 광장으로 뛰어나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변화를 이끌어냈지요. 2016년의 촛불집회가 어느 날 갑자기 진영논리에 휩싸여 시작된 것이 아닌 것도 우리 국민의 뛰어난 의식 덕분입니다. 국민 주권이 실현되는 절차, 즉 선거를 직선제로 개헌한 것과 그것이 시민의 힘으로 얻은 성과였다는 것은 분명 위대한 역사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제도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해서 '거리의 정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시민이든 정치인이든 거리로 뛰어나갈 게 아니라 정당과 의회 같은 정치 제도가 사회적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죠.(p306)
어쨌든, 87년 국민의 힘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 놓았는데 정치인들은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으니 국민들은 답답했던 것입니다. 80년대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제도 정치 안에서 보여준 모습에 크게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를 내재화하고 심화시킬 생각보다는 "내가 마! 87년에 마! 광화문도 나가고 마! 최루탄도 맞고 마! 깜빵에도 가보고! 다 했어!"라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다는 결과에 도취한 채로 30년이 흐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당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이 이 부분 아닐까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정치인이 된 순간 자신들의 87년 경험이 그들의 모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게다가 누구든 정치를 하면 권력 쟁취를 위한 다툼에만 혈안이 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니 누가 정권을 잡아도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의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죠.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공공의 영역에 속하 사람들, 국가 지도자들,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부터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와 관련해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p315)
국민들이 늘 소망하던 바죠. 제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책임과 의무를 개인이 아닌 공공을 위해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시민의 역할입니다.
선거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인들이 공약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 속에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이제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국가에 모든 것을 의존해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 개인이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기여하고 봉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p317)
더 이상 정치를 국가와 정치인의 영역으로 떠넘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라 합니다.
자라는 동안 아버지가 늘 강조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일단 인간이 돼라!"
'정직'과 함께 개념과 상식이 있는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셨지요. 저자의 의견도 비슷한 결이 아닐까요. 정치인이든 시민이든 이제 싸움 좀 그만하고 인간이 되라고 말입니다. 제도 탓 그만하고 민주화 정도에 걸맞은 의식을 확립할 차례라고 말이죠.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는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갈등과 분열을 최소화하고 제대로 된 정치체제가 되도록 이끄는 것은 대통령, 국회의원만의 몫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정치를 드러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할 정도로 극도로 양극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만약 당신이 뭔가 달라지기를 원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도전해 보기를 제안한다. (중략) 매일 5분 동안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 보라. 당신의 머릿속에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만큼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당신과 정반대 신념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상대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나의 뇌와 상대의 뇌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니, 해볼 만한 방법 같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정작 개인의 삶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행위를 삼가야겠습니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말은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만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개개인에게 똑같은 권리가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러니 나와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하고 선을 긋기보다는 그 이유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