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 한강
2022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동기들과 함께 읽은 책은 마흔 권이 넘습니다. 그중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던 세 권을 제외하고는 완독을 해냈습니다. 책 선정의 기준이었던 '300페이지를 넘지 않을 것'은 쉽게 무너졌습니다. 대부분의 책이 300페이지를 넘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다 보니 그런 기준은 쉽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책의 분야도 다양해졌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 거냐, 희망은 있는 것이냐는 물음에서 시작한 초반에는 한국 정치의 현대사를 다루거나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 세대 갈등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국가란 무엇인가>, <후불제 민주주의>, <코로나 이후의 세계>, < 그런 세대는 없다>, <어쩌다 한국인>,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가 그들입니다.
<군주론>이나 <자유론>,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 - 보수와 진보의 탄생>을 읽으면서 대학생 때 이런 책을 읽지 않은 것을 후회했고, <공정하다는 착각>, <기울어진 평등>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읽다 보니 정치란 인간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과연 마음이란,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싶어 졌고 <융 심리학 입문>과 <알기 쉬운 융 심리학 읽기>, <쇼펜하우어 소품집>을 읽었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선택 설계자들>, <인간 욕망의 법칙>, <히든 포텐셜> 같은 책들을 읽으며 마음이 어떻게 행동을 지배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심리와 문명의 발전에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총, 균, 쇠>를, 왜 인간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고민에서 <사람, 장소, 환대>를, 그럼에도 배타적인 감정보다는 다정함과 환대가 생존에 유리한 자세라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었습니다.
역사와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과 정치를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는 생각에 <어떤 선택의 재검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사피엔스>, <코스모스>,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종의 기원>, <랩걸>, <열두 발자국>, <송민령의 뇌과학>, <김상욱의 양자 공부>, <넥서스>, <도둑맞은 잠재력>, <기억한다는 착각>을 읽었습니다. 무엇 하나 정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책은 없었습니다.
가끔씩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스토너> 같은 소설도 읽곤 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후에는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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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갖게 된 불편한 정서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렇게 그악스럽게 다투었는지, 그 다툼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그 다툼에서 벗어났는지, 이내 편안해졌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서정적인 문체로 휘몰아치는 서사를 전달하는 작가의 소설에는 기어이 열어봐야 하는 진실이 있었습니다. 펼치고 싶지 않지만 펼쳐봐야 하는 과거를 읽고 나면 진실을 외면하거나 침묵하고 싶지 않은 마음, 서로에게 촛불이 되어주며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역사를 마주하며 한강이 뒤집어버린 질문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어떻게. 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과거와 현재, 산 자와 죽은 자, 가해자와 피해자, 이승과 저승, 뼈와 살, 군인과 시민군, 따뜻한 곳과 추운 곳, 특별히 잔인한 군인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군중으로서의 인간.
책을 읽으면서 자꾸 나누게 됐습니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역사의 장면마다 나누어졌던 양극단과 그들의 선택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나라면? 그 가정을 현재로 가져와 삶의 순간마다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이 나의 역사를, 이웃의 역사를, 국가의 역사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양극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런 이들이 집단을 이루어 갈등과 혐오를 만듭니다. 그걸 중재해줘야 하는 정치마저 갈등과 혐오에 올라탑니다. 광장에서, 국회에서 상대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험한 말을 쏟아냅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내내 광주인 이유입니다.
그깟 이념이 뭐라고 다 죽여야 했을까요. 죽이면 없앨 수 있는 게 생각이라고 믿었을까요. 나와 다른 것을 왜 그렇게 못 참았던 걸까요.
그깟 권력이 뭐라고 이념의 핑계를 대며 다 죽여야 했을까요. 다 죽이면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남보다 높이 서고 싶은 마음을 왜 못 참는 걸까요.
95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소년이 온다 >
어쩌면 우리가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은 우리 주변을 돌고 있는 과거의 영령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황과 맥락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혼이 내게 붙어서라고 말입니다. 혼들이 그들과 같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 곁에 머물며 쉼 없이 귀에 대고 속삭여 공명을 일으킨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라는 것은 태초의 생명에 더해지고 더해지는 이야기의 연장선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 건 아닐는지.
우리가 소설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혼들의 연장선인지를 알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과거는 현재고 현재는 과거입니다. 산자는 죽은 자고 죽은 자는 산자입니다. 누가 누구를 돕고 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입니다.
< 소년이 온다 >를 읽으며 제 꿈엔 동호가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주위를 맴돌며 날 흔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내 귀에 대고 계속 종알종알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난 동호의 역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짓이기고 쓸어버리는 현장을 외면하거나 돌아서는 대신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던 시민군처럼, 훗날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고 심장이 요동치고 목이 뜨거워지고 눈이 자꾸 침침해져 책을 읽을 수 없던 사람, 동호의 얼굴이 궁금해지고 그에게 미안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빨갱이 책이라며 핏대를 올리고 삿대질을 하고 눈에 불을 켜면서 읽지도 않고 불태우는 사람, 도대체 역사 속 누구의 혼이 붙었는지 궁금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이들이 또 만들어가는 것일 것입니다. 짓밟고 저항하고, 총을 들면 촛불을 들면서. 하지만 언젠가 먼 훗날에는 이쪽의 혼과 저쪽의 혼, 산 자와 죽은 자, 이승과 저승, 군인과 시민군이 공명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꿈을 < 작별하지 않는다 >를 읽으며 꾸었습니다.
< 소년이 온다 >가 '고통'을 이야기했다면 < 작별하지 않는다 >는 '순환과 연결'을 이야기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했지만, 한강 작가는 말합니다. 강물도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고 우리도 그러하다고. 과거·현재·미래, 나·너·우리, 여기·거기·저기, 무엇 하나 순환과 연결 없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대를 저와 다른 것이라 여길 수 없고, 지금은 그때를 지금과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눈과 비, 눈물이 그때의 그것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의 함성과 울분이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너는 나로 나는 너로 언젠가는 순환할 테니 모든 선긋기도 무의미합니다.
< 작별하지 않는다 > 속 '경하'의 하루는 꽤 험난합니다. 그만두고 싶고 피하고 싶은 길이지만, 곧 죽어버릴지 모를 새(사라질지 모를 진실)를 향해 기어이 가야만 하는 길이기에, 진실을 알아내고자 인서의 어머니가 갔던 것과 같은 험난한 여정을 경하는 감수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식상한 명제를 '눈'과 '물'에서 건져 올리는 작가의 섬세한 고통이 경하에게서 보였고 고스란히 제게 전해졌습니다. 죽은 자의 길을 산 자가, 과거의 길과 똑같은 현재의 길을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쓰고, 또 누군가는 읽었습니다.
이분법으로 나누었던 것들 대신 함께 누려야 할 것들을 한강 작가의 소설 속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애국가, 태극기, 광장, 허기, 입맛, 밥, 양심, 눈, 비, 눈물, 사랑.
역사는 그런 것들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과정이자 결과가 아닐까요. 정치는 국민이 사이좋게 나눌 수 있는 것을 많이 발굴하는 작업 아닐까요. 발굴 작업 중에 사소한 다툼이 없을 수 없겠지만, 정치인들이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갈등 자체를 목적으로 두지 않고,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정치 본연의 목적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많아질 때, 국민들의 불편한 정서가 조금은 사라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