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가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

by 늘봄유정

"이게 나라냐!!!"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을 때, 주권자인 국민의 권력이 무시되고 권력이 사유화되었을 때,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국민은 도대체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가 맞느냐고 울분을 토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나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나라, 국가는 무엇일까.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와 정부는 다른가. 누군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정확히 대답하기는 힘들다. '국민의 안전', '사회 계약'과 같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어들만 머릿속을 부유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인지, 현재 대한민국의 운영을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는 정부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국가와 정부의 구별은 이론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현실에서 국가의 행위는 모두 정부의 행위이며, 정부가 있어야 국가의 의지가 효력을 얻을 수 있다. 행동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정책을 결정할 권능을 얻은 사람들이다."(p68)


그러니 우리의 함성이 향하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정부인 것이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를 떼창으로 부를 때,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K-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한식의 맛을 찾아 한국으로 여행 왔다는 외국인들을 볼 때, 스포츠 스타들이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광장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는 장면에서 성숙한 K-민주주의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외신들의 보도가 이어질 때, 가슴 뜨겁게 차오르는 자랑스러움을 단번에 빼앗아버리고 빈자리를 수치심으로 채워주는 그들을 향해 외쳐야 하는 것이다.

"이게 너희가 원하는 나라냐!!!"


그래서, 국가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국가의 본질과 역할을 설명하는 철학과 이론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주의 국가론

둘째,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겨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공공재를 공급하고 최소한의 역할만 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국가론

셋째, 국가권력은 인민이 사회계약을 통해 세운 공동의 권력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라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넷째, '선·정의·덕'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국가야말로 안정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목적주의 국가론


'위의 네 가지 중 국가에 대해 바르게 설명한 것을 모두 고르시오.'라는 문제가 있다면 네 가지 모두가 정답이 될 것이다. 국가는 합법적 폭력을 행사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안정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자유, 평등' 같은 추상적 가치를 목표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돈 좀 있는 사람, 기득권, 지배 계급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가의 이상을 정책으로 만들어 행위로 드러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이름 뒤에 숨어 자신의 모든 선택과 결정이 국가의 그것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2024년 12월, 국가 권력이 오남용 되면 총부리가 국민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경험하는 사건이 있었다. 위에 열거한 국가의 다양한 역할을 야경국가 하나로 흡수하여 낮은 수준의 국가로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유시민이 책에서 "대통령 개인의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을 '반정부'라 하고,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반국가'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더 큰 권위 뒤에 숨는 전략이다."라고 말했듯이,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게 되면, 혹은 '국민'의 정의를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한정하게 되면, '반국가 세력을 향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독일 정치철학자 얀베르너 뮐러의 말을 인용해 그것이 포퓰리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위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만이 권력의 정당한 원천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국민은 결코 단일한 실체가 아니며 따라서 단일한 의사를 지닐 수 없다는 이해에서 출발한다.(중략).... 따라서 포퓰리즘은 '국민의 힘'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독재 정권을 수립하려고 한다." (p205)


다행히 그날 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시민들이 있었다. 무거운 부채감과 함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은 이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훌륭한 국가는 훌륭한 시민이 만드는 것임을 보여준 사람들. 우리가 사랑하는 국가는 국가의 이름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만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온몸으로 말한 사람들이었다.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고 목표와 정체성을 공유하며 상호작용을 하는 모임을 공동체라고 한다. 가족, 지역사회를 넘어 생존과 안전에 절대적이고 핵심적인 공동체는 국가이다. 국가는 구체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이다. 물리적인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으며 법률, 정책, 조직, 제도를 통해 움직인다. 하지만 애국심, 국민의식, 민족 정체성 등과 같은 실체가 없는 것들에 기대 인간 존엄성, 정의, 자유, 평등, 복지, 평화 등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국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국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매일이 전쟁일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책에서 "국가의 목적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는데,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을 먹고 일정 수준의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국적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실제로, 국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이민을 떠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절대다수의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적어도 내가 태어난 나라가 나의 생존과 안정, 더 나아가 행복을 방해하는 존재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알고 싶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현실화하는 것이 정부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치다. 따라서 정치가 시끄럽게 싸우는 것으로 각인되는 것은 마땅하다.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그 가치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분분한 의견을 토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 합의해야 하니 말이다. 다만, 논리의 대결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이어야 할 정책 결정 과정이 고함, 고성, 무논리, 인신공격으로 시끄러워서 문제인 것이다. 국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결국 '사람' 때문에 퇴색되고 사그라드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오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독자에게 오독은 숙명이다. 작가가 자기 시대를 넘어 글을 쓰기 힘들 듯이 독자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자신의 사고 능력을 뛰어넘지 못한다. 작가와 독자, 독자와 독자가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의미까지 공유하기 힘들다. 그럴 때 독서 모임을 하면 나의 오독과 다른 이들의 오독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텍스트를 조금씩 해석해 가다 보면 작가가 제시한 텍스트에 조금은 가까워진다.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처한 상황과 서사가 다르니 시대를 보는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시대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싸우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다. 독서모임을 하듯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여서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내가 듣고 읽고 경험한 시대가 이 시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수많은 오독과 오판, 편견과 혐오, 조롱과 질타가 넘쳐날 수도 있고 때로는 호응과 공감, 응원과 격려가 오갈 수도 있다. 그런 온갖 감정들이 한데 버무려지면서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람과 세상을 넓고 깊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국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당연한 것, 마땅한 것,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모든 모습이 국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당연한 모습을 헤치려고 하는 모든 정치적 시도와 정부,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한국 정치는 왜 불편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