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분배와 성장, 평등과 자유, 사회와 개인, 변화와 전통.
다양한 가치가 대립을 하는 게 정치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 양측이 설전을 벌인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근거를 들거나 합리적 추론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논쟁을 펼치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반대를 위한 반대, 다른 진영의 논리는 무조건 틀리다는 언쟁만 오간다. 그러니 정치는 시끄러운 것이 되고 국민의 피로감은 쌓인다.
토론을 가르칠 때, 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국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없으니 우리를 대신해 법을 만들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는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어떤 법안이 국민에게 꼭 필요한 지를 두고 토의를 한다. 발의된 법안의 10% 정도는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토의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경우 하게 되는 것이 토론인데, 합의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핵심쟁점만을 남겨 찬반으로 나누어 설득하는 과정이다.
토론을 할 때 흔히 하는 생각은 상대를 설득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득의 대상은 상대팀만이 아니다. 청중과 심판 혹은 의사결정권자다. 국회의원에게 있어 청중이자 의사결정권자는 국민이다. 유권자가 개별 법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하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법안을 결정하는 데 국민의 여론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국민을 설득한다는 생각으로 토론에 임해야 한다. 나아가 정당을 향한 지지와 선거에서의 표심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보여지는 발언의 자세와 내용은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하다.
발의한 법안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이며 현실성 있고 효과적인 해결책인지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국회의원에게 있다. 혹은 이 법안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장면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상대방 인성의 흠결을 문제 삼아 발언의 신뢰도를 낮추거나 말꼬리를 잡아 시비를 걸어 논점을 흐리게 만든다. 대놓고 인신공격과 비방을 해서 상대를 흥분시켜 발언을 무력화시키고 법안과 무관한 정쟁에만 열을 올린다.
'보수'란 자유, 안정, 질서 유지, 경제적 자유'라는 가치를 지향하며 기존의 관습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진보'란 '평등, 약자 보호,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며 기존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회는 변화,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나 평등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적 정책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자유를 중시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평등을 중시하면 자유가 제한되기때문에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복잡 다양해진 사회에서는 점점 더 녹록치 않은 작업이 된다. 게다가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가치는 '능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의 정서와 한참 괴리된 개념이기도 하다. '능력'이 진정한 개인의 능력인지에 대해 의심하고, 공정이 진짜 공정인지에 대해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자본에 의해 계급이 나눠지는 사회에서 제도만으로 자유와 평등을 지켜내기는 힘들다. '합리적 보수', '성찰적 진보' 등의 말로 자기가 진짜라는 이들이 있지만, 잘 모르는 내 눈에는 그저 정치·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사기꾼들로밖에는 안 보인다. 깊이 있는 사유, 진정한 고민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가 사라진 오늘의 정치를 보면서 원래 보수와 진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 유벌 레빈의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페인의 위대한 논쟁 - 보수와 진보의 탄생 >이다.
'프랑스 혁명을 향한 두 정치사상가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수,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그 저변에 깔린 철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멋지게 정리하고 싶지만,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완독이란,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내는 대단한 일"이라던 김영하 작가의 말을 되새기며 이겨내듯 끈적하게 읽었던 책이다.
버크와 페인이 보수와 진보를 피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지, 사회는 무엇인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제도는 무엇이며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야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찬찬히 쌓아올린 밀도 높은 논리를 들어보면, 보수도 맞고 진보도 맞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의 결론을 둘다 맞다는 양시론으로 치부하기엔, 두 입장이 꽤 설득적이었다.
버크는 인간을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보았다. 모두 천부적으로는 평등하지만 능력은 다르게 태어난다. 그리고 교육과 경험으로 그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사회가 잘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좀 더 제대로 통치할 수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찬성한다고 주장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사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며, 사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지혜와 전통을 바탕으로 발전해야 하고, 급격한 변화는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대부분 자만, 야망, 탐욕, 복수, 욕망, 선동, 위선, 제어되지 않은 열의와 끝도 없는 무질서한 욕구가 세상에 초래한 불행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역사는 또한 이런 악덕을 다루려는 노력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최선과 최악의 발현 속에서 역사는 어떤 정치가도 지나칠 수 없는 교훈을 준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에서 버크는 인간의 악덕을 역사의 교훈을 통해 다루는 것, 이것이 정치인의 책무라고 밝혔다.
페인은, 인간은 이성적이고 선한 존재이며 기존 제도에 대한 비판과 혁신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페인은 역사를 그저 "오류, 범죄, 오해로 이뤄진 유감스러운 이야기"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역사적 교훈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의 이성적 판단으로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정치에 응용할 수 있다고 했다.
"토머스 페인은 보편적 원칙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그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기반을 역사가 아닌 자연에 둔다. 아울러 그것이 어디에나 똑같이 해당되고 적용될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떤 특정 국가의 상황이나 이상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고 이해한다."
잘못된 원칙 위에 세워졌던 제도와 국가를 해체하고 원점에서부터 재건하는 것, 이것이 공평한 사회를 건설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각자가 주장하는 바와 그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는 달랐지만 둘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같았다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정치는 언제나 유동적이며, 정치가의 도전 과제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라는 생각은 일치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회의 이익을 위해 변화를 다스리는 정치가'가 있을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탄탄한 논리를 보여주는 정치인이 있었던가.
토론에는 '프리마 파시' (Prima Facie)라는 말이 있다. 첫눈에 보더라도 그럴듯한, 누가 들어도 적절하며 그럴듯한 논리를 뜻한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주장과 근거의 관계를 적절하게 설명할 때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는 딱 봐도 믿을만한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던가.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 근원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것이 국민의 삶에 어떤 이익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진지한 사유와 냉철한 논리로 무장해 차분한 목소리로 토론하는 정치인들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을까. 이 이상적인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게 되는 책이었다. 책의 10%나 이해했는지 의문이지만, 이해하지 못했는데 감동했다는 표현이 괜찮은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버크와 페인같은 어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