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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갈등을 먹고 산다

by 늘봄유정

정치의 가장 큰 목적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익을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가 그 이익의 충돌을 조장하고 사회질서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다. 국민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고 토의, 토론해야 할 정치인들은 광장에 나가 선전 선동을 한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우리가 아니면 모두 '적'으로 상정하고 정치가 가야 할 먼 길,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당장의 선거 승리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회 갈등의 조절과 조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정치,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과 1인 미디어. 정권 쟁취와 수익 창출의 무서운 콜라보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어쩌면 안정된 나라, 평화로운 일상은 일부 국민들만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이 궁금해서 봤던 책들이 있다. 김누리 교수의 <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 신진욱 교수의 <그런 세대는 없다>가 그들이다.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가 잠식하고 사회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한국이 답답해서였다. 정치와 제도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인지 궁금했다.


<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이하 우절권)는 저자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 4년 차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겨레> '세상 읽기'에 연재한 칼럼들을 정리한 책이다.


'30-50 클럽'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를 '30-50'클럽이라고 부른다. 이 그룹에 들어가 있는 나라는 오직 일곱 국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이다. 그중 유일하게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두었던 역사가 없는 나라이며 7개국 중에서 민주주의 1등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수준을 비교한 연구에서 대한민국은 전체 12위, 7개국 중 1위를 차지한 것.(우불당 p24)


하지만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지수, 연평균 근로시간 OECD 회원국 최상위, 각종 사회갈등 지표 1위의 기록으로 더 익숙하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바꾼 위대한 민주주의를 보여준 나라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 말이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적 지옥'으로 변한 미국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우절권 p258)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이 강요되는 경쟁사회

- 세계 최장 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사회

- 인간의 가치가 시장의 논리에 종속되는 시장 중심사회

- 경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불평등사회

- 합리적 사유보다는 종교적 신비적 해결에 의지하는 신앙 사회

- 진지한 성찰이나 독서 대신 대중문화에 사로잡힌 무성찰 사회

-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정글자본주의 사회


'제도의 민주화'와 '일상의 민주화'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 (우불당 p34)
정치의 경우 시민들의 '방관'은 극단적이다.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만, 아무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평론가는 넘쳐나지만, 정치 활동가는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한국 정당의 본색은 '당원 없는 정당'이다. 이는 매력 없는 정당 탓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관하는 시민 탓이기도 하다. 모두 곁에서 훈수만 둘 뿐 참여하지 않는 사회, 정치 혐오를 좀 더 세련된 정치적 취향인 양 조장하는 방관 사회에서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실현될 수는 없다. (우절권 p33)


제도의 민주화, 광장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한국의 민주화는 '국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가 없는 민주화라고 말한다.(우절권 p52)

일상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이것이 우리가 불행하다 여기고 절망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특히 정치에 실망하는 이유를 진정한 진보가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찾는다. 보수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여야로 불리는 두 기득권 세력이 결탁하여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우절권 p215) 제도적으로는 민주화됐으나 정치인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아직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가 불행과 절망의 이유인 것이다.


한국인의 특징

< 어쩌다 한국인 >에서는 한국의 문제를 일부 소수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고 한다. 이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의 특징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가 지옥이 된 이유를 일부 소수의 사람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우리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시시한 존재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미치는 대로 끌려 달리는 소신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p27)

그러면서 한국인의 특징을 크게 여섯 가지 "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로 정리한다.

한국인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자기 결정권보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족 개념이 혈연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어, 집단 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하고 개인보다 관계를 중시하며, 인간관계에서의 조화와 체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과 정서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관성보다는 융통성을, 불확실함보다 명확한 규칙과 안정된 질서를 선호한다.


한국인의 고유한 성격, 성정, 특징을 비교적 잘 풀어놓은 책이었다. 비판, 비난의 의도가 아니라 이해, 수용, 응용하자는 의도로 해석하고 싶었다. 수직적 관계주의, 관계적 집단주의, 맥락적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중용의 사고, 변증법적 사고 때문에 때로는 냉철하지 못한 이들이 우리다. 우리의 이러한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 때 정치, 경제, 사회가 안정적이고, 조금은 더 평화로워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갈등'은 조장된 것일지도

세대 간 갈등이 선거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젊은 세대의 성별 간 표심 차이를 부각하면서 남녀 간,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부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고 하니까 나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세대는 없다>의 저자는 세대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X세대", "밀레니얼", "Z세대" 등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방식은 실제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이러한 세대 구분은 오히려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사회적 분열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 내에서도 계층, 성별, 지역 등에 따라 삶의 조건이 크게 다르듯이 세대 간 갈등보다 세대 내 갈등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경험과 서사, 맥락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갈등 해소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작은 차이를 크게 부풀려 다름을 틀림으로 확정해 버린다. 어떤 제도도 사회 모든 구성원의 욕구를 품을 수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내가 잃은 것, 잃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 때문에 쉽게 분노한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가난한 사람은 없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만 있다."는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상대적 박탈감이 갈등으로 흑화 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제도만으로는 갈등의 극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론은 교육

이런 책들을 읽을 때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누구나 떠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장 현실에서 도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 의미 있는 고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의 저자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교육'과 'Lifism'

독일 유학의 경험 때문에 저자는 대부분의 해법을 독일에서 찾는다. 그중 하나가 '교육'. 독일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에 비중을 둔다고 한다. 강한 자아를 갖고 불의한 권위에 쉬이 굴종하지 않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하는 성교육, 갈등조정 능력과 정의를 혜량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정치교육,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와 책임감을 길러주는 생태교육. (우절권 p115)

그러면서, 능력주의가 잠식해 피폐해진 한국 사회를 '존엄주의' 교육을 통해 개혁해 보자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인 'lifism'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이다. 인간의 삶과 생존, 더 나아가 생명을 파괴하며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 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한다.(p317)

다소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해법일 수 있으나 결국은 국민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실천을 이끌어내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거듭나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학교에서는 정치교육을 해서는 안된다는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인식이 국민의 우민화를 꾀하는 기득권층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반정치의 정서, 정치 혐오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 (우절권 126)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입시제도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입시 정책은 바꾸면 바꿔서 난리, 안 바꾸면 안 바꿔서 난리다. 입시 제도 자체를 어떻게 개편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에는 별로 큰 비중은 없다. 근본적으로 경쟁 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떻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거냐, 결국 어떻게 더 많이 성장할 거냐, 어떻게 더 많이 기회를 골고루 나눌 것이냐, 결국 그 문제에 귀착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 문제는 의도적으로 전면에 얘기를 안 한 측면이 있다. 논쟁만 촉발하고 자칫 잘못 건드리면 이념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교육정책의 방향에 대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들었지만, 이보다 솔직한 대답은 없다고 본다. 경쟁과잉으로 촉발된 사회 갈등과 다양한 문제들은 정책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애초에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태생이 정의롭지 못한 '능력주의', 능력주의에 기댄 공정 담론, 거기에 편승해 세대 갈등을 부추기고 기득권을 지키는 못된 정치. 이것들과 결별할 때다.


인간은 모두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이 정의다.

내가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듯 상대도 당연하게 나의 존엄성을 인정할 것이라는 믿음,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이 가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는 사회. 이것이 공정한 세상이 아닐까. 바로 지금, 정의와 공정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 그것만이 남았다.


국민들의 처절함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싸움에 정신이 팔린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낀다거나,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과 고통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다거나,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남겨줬으면 하는 모든 이들이 책을 읽고 공부를 했으면 한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책이라도 읽고 생각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론을 가르치고 교육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 토론이라는 합리적인 의사소통방식을 알려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독서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뿐 아니라 내 생각의 크기를 제한하는 모든 장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점의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의 결뿐 아니라 방향까지 변화한다. 그 경험이 참 즐겁다.


내가 읽는 것과 생각한 것이 행동과도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다. 여기서 행동이란 구체적인 실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르치는 것이 나'라는 생각으로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돌아보려는 노력 같은 것이다. 타인을 평가하고 비판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잘못된 것은 인정하며 이전과 달라지기 위한 분투, 치열함은 다른 이들을 이기기 위한 그것들보다 더 고결하지 않을까.


미셀 오바마가 했던 말,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은 저급하고 비열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는 말처럼, 정권 쟁취와 수익 창출을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무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품 있는 국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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