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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생각, 집착

by 늘봄유정

정치, 사회, 제도에 관한 의문을 품으면 품을수록 관심이 가는 것은 '사람'이었다. 공감, 사랑, 배려, 협력이든 혐오, 갈등, 차별, 폭력이든 결국 모든 것이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동기들과 나는 사람에 관한 책을 탐닉했다. 인간 심리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관해 융과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인간의 선택에는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행동경제학 책을 찾아보았고 그러다 보니 뇌과학으로까지 관심이 흘러갔다.


최근 몇 년에 걸쳐 철학책의 인기가 거세다. 해마다 한 명씩의 철학자를 누가 선정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BTS 멤버 RM이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는 것이 알려진 후부터였을까. 이후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거쳐 최근에는 부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삶'에 관한 질문과 답에 큰 관심을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가며 그들이 펼치는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문장을 곱씹어보아도 이해가 안 되면 쉽게 설명해 주는 영상을 찾아보아야 가까스로 따라갈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타인의 관점에 따라 나의 존재 가치를 폄하하고 거기에 맞추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각자의 현실과 개인의 상태에 따라 자신만의 세상에서 산다는 통찰을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칼 융의 철학은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여 진정한 자기(self) 찾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했다.

"자신의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전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의식적이고 외적인 삶의 원리인 행동 및 합리성과는 정반대되는 또 다른 삶의 원리를 의식화해야만 한다." < 알기 쉬운 융 심리학 읽기>, p122

관찰 가능한 논리, 행동 등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배하는 감성, 꿈, 영성 같은 무의식의 원리를 인식할 때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추상적인 철학의 질문과 답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례로 알려주는 것이 행동경제학과 뇌과학이었다. 내가 설계하고 마음먹은 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나'가 얼마나 허상인지와, 절대적 믿음·확신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심리학·행동경제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의 사고를 두 가지, 즉 감정, 본능에 기반해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시스템 1’과 집중과 노력을 통해 느리지만 논리적이며 신중한 사고를 하는 ‘시스템 2’로 설명한다. 시스템1에 의한 사고 작용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자주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판단을 내리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시스템2를 의식적으로 작동시켜야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스템2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무지와 나태'이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왜곡된 상태에서도 잘못됐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확신을 갖는다. 복잡한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보다 직관적이고 익숙한 방식으로 편하게 판단하려 한다. 일상의 작은 선택 뿐 아니라 소비, 정책 결정과 같은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합리적이고 올바르다고 생각했던 결정에는 비합리적이고 편향적인 생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우리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올리비에 시보니의 <선택 설계자들>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인지 편향의 함정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선택 설계 전략을 소개한다. 합리적 결정을 가로막는 아홉 가지 함정으로 '스토리텔링, 모방, 직관, 자기과신, 관성, 위험 인지, 단기 성과주의, 집단사고, 이해충돌'을 제시하는데, 이것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건전한 의사결정의 토대를 이루는 도구는 '협업과 프로세스'이며 협업의 핵심은 '대화와 논쟁'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은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면 더 나은 성과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상대의 의견을 깊이 듣는 과정을 통해 판단력과 전문적인 능력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리더가 모든 미덕을 갖추고 모든 결정에서 모든 편향을 극복하길 기대할 수 없다.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지혜는 개인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통해 나와야 한다. 협업과 프로세스는 건전한 의사결정의 토대가 된다. <선택 설계자들>, p241
협업의 핵심은 논쟁이며 다양하고 상반된 관점들의 표출과 경청을 보장하는 것이다. <선택 설계자들>, p271
대화는 대부분의 편향과 싸우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대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패턴인식 편향을 방지한다. 대화는 회의적인 사람에게도 발언권을 주기 때문에 행동중심 편향을 막는다. 또한 대립적인 관점을 비교할 때 현재 상태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화는 관성 편향도 극복하게 해준다. 끝으로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집단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대화는 탄탄한 의사결정 구조의 첫 번째 기둥이다. <선택 설계자들>, p309


정치든 경제든 목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근본적인 목표는 사람의 행복이어야 하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 표를 받고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던지는 표와 우리가 쓰는 돈이 진짜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내린 판단과 선택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우리의 생각에 의한 것인지, 우리의 표와 돈을 노린 사람들이 설계해 놓은 덫에 걸려 우리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내린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겠지만, 우리의 선택이 편향과 그릇된 확신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아는 순간, 개인과 집단은 더 나은 존재가 된다.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과신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그 얘기를 거꾸로 해석한다면, 과거를 오해했다는 깨달음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철학과 심리학, 행동경제학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았을 때보다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권자인 우리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 조직의 리더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리더십과 또 다른 행동들을 연관시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협업과 프로세스를 정말 소중히 여기고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핵심적인 역할로 여기게 된다. 이런 리더들은 그들에게만 모든 해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최종 결정을 책임지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팀이 함께 최선의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들은 최선의 전략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결과를 달성하려는 열정을 줄이지는 않는다. 이런 태도는 개인으로서 극도의 겸손과 전문경영인으로서 강한 결의가 통합된 모습을 연상시킨다.
더 나은 리더가 되려면 무한대의 자신감을 가진 고독하고 영웅적인 카우보이는 버려야한다. 우리는 비전, 용기, 열정적인 추종자 집단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즉 힘든 의사결정을 내리고 성과를 올리지만 팀원의 판단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겸손한 리더가 필요하다. 때로 자신의 직감이 다른 방향을 암시할 때도 자신이 이용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신뢰할 정도로 용기와 일관성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선택 설계자들> p377


훌륭한 리더는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합리적이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사람,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 결정권자이지만 독단적이지 않고

협업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책임을 다하는 사람.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훌륭한 리더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 역시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리더의 자질을 평가할 때 단순한 이미지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가치와 원칙을 지향하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다른 의견에도 귀 기울이며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어떤 선택이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의 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선택의 책임까지 포함한다.


어느날 토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시위대를 만났다. 도로 한편으로 시위대가 행진 중이었고 내 앞에는 커다란 스피커로 구호를 외치는 승합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원색적인 비난과 불편한 말들이 닫힌 창문을 뚫고 전해졌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집에서 편히 쉬어야 할 휴일 저녁 시간에 거리로 나왔을까. 모두가 돈이나 권력을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을 추동한 것은 어떤 믿음과 신념일까. 그들이 내린 선택과 결정에는 어떤 생각의 흐름이 있었을까. 충분한 대화와 논쟁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을까.



말콤 글래드웰이 쓴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1945년 도쿄 대공습을 중심으로 미국 공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전쟁은 도덕적이어야 하며, 정밀 기술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상을 가진 집단과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므로 효율적인 무기로 적을 빠르게 제압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집단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일본의 항복을 앞당겼다는 성공과 민간인 대학살이라는 비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공존하는 것은 신중히 내린 선택일지라도 무엇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이 이렇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린 경우가 수두룩하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나고 내가 판단 내렸던 생각의 실체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당혹스럽다. 그래서 싸운다. 지친다. 서서히 생각을 멈춘다.


하지만 우리는 집착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보는 것이 옳고 바른 것인지에 대한 집착, 무엇이 옳고 바른 것인지에 대한 집착, 내 생각은 진짜 생각인지에 대한 집착. "집착 없이는 진보도, 혁신도,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책의 문장처럼, 나를 들여다보고 의심하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 대한 집착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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