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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 환대. 이런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by 늘봄유정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피엔스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 덕분에 번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집단일 때 얘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람이라도 나와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 가장 가혹할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p32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격과 인정을 받아야 하며 그 과정은 험난하다. '우리는 같은 사피엔스 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뭉치기에는 복잡한 존재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사람, 장소, 환대>, p31


'우리'만이 옳고 따라서 우리만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정보를 이용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 조작해 마녀사냥을 하거나 오류가 없는 초인적 권위자를 앞세운 종교를 통해 상대를 탄압했다.

근대 초 유럽을 휩쓴 마녀 광풍의 역사는 정보 흐름의 장벽을 없앤다고 해서 진실된 정보가 확산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짓과 환상이 확산되어 유해한 정보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도 그만큼이나 쉽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이디어의 완전한 자유 시장은 진실을 희생시키고 분노와 선정주의의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 <넥서스>, p167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자유로워진 오늘날 정보의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흐름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되었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은 충분히 넘치게 듣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노출은 최소화해서 '우리끼리만의' 연대가 더 강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 인간은 더 폭넓게 사고하고 다양성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사회는 진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회 갈등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갈등은 변화와 진보를 위한 동력이 된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건전한 토론의 장으로 끌고 와 담대하게 이야기할 것인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며 물어뜯는 투견장으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어떤 문제에 대한 진실은, 양쪽의 의견을 똑같이 공정하게 경청하고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양쪽이 제시하는 근거들을 가장 강력한 빛 안에서 심혈을 기울여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
<자유론>, p98


밀은 <자유론>에서 "어떤 의견이든 제약 없이 가질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그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의 다른 모든 복리의 토대인 정신적인 복리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국가와 사회가 시민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켜줘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비판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토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는 정체되지 않고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 그것이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정치에서 오는 피로와 환멸을 줄일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러려면 공부해야 하고,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대화를 하려면 말할 자유와 듣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가지 실질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서로의 가청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둘째, 대화 당사자들이 대화의 주제에 대해 적어도 기초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넥서스>, p219


다윈을 비롯한 많은 생물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라고.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진화에서 승리하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사람, 장소, 환대>, p207


다정함, 환대. 이런 것은 단순히 이상적인 논리가 아니다. 모든 철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가 공통으로 주장하며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신,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다가가서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함께 공부해야 한다. 우리를 갈라놓아야 득이 되는 세력에게 휘둘리지 말고 서로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때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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