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쇼핑, 물놀이... 그거면 충분
하늘의 높이는 땅의 넓이와 비례하는 걸까.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도 높고 푸르기로 따지면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팜스프링스의 가을 하늘은 끝없이 펼쳐진 땅의 넓이만큼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미국 것은 뭐든 크고 좋아 보이는 사대주의 발상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 대한 여행자의 예의쯤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티 없이 깨끗한 아침을 맞이했다. 빵과 계란, 누룽지 등 각자 취향에 맞는 아침 식사를 챙기고 나서 길을 나셨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샌 하신토(San Jasinto) 산을 향했다. 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한 케이블카를 타러 <팜스프링스 에어리얼 트램웨이>로 갔다. 360도로 회전하는 케이블카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했지만 10분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 부딪힐 것 같은 산세는 아찔하면서도 황홀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산길을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산꼭대기에 이르게 되는데 사진기를 어디에 들이대도 그림이 됐다.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 팜스프링스가 아득하게 펼쳐진 곳. 유난히 흰 구름이 흩뿌려진 듯한 하늘과 맞닿은 곳이었다.
점심은, 대망의 <인 앤 아웃 버거>였다. 신선한 재료 공급을 위해 미국 서부지역에서만 운영한다는 명성이 자자한 곳.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먹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곳이었다. 생각보다 한산한 매장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종류가 많지 않아 주문하는 게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따끈한 번에 육즙이 살아있는 버거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한번 더 먹으리라 다짐하게 하는 맛이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도 마주했고 배도 부르니 이제 해야 할 건 쇼핑!
미서부 최대의 프리미엄 아웃렛 쇼핑몰이라는 <데저트 힐스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갔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한 보따리 사고, 돈이 아까워 들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는 남편 대신 결혼식 정장구두를 위한 과감한 결제도 해치웠다. 한국에도 이미 곳곳에 들어선 형태의 아웃렛이지만 할인율은 역대급이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가격이라서 시간과 돈의 여유만 있었다면 며칠이고 있고 싶었다. 쇼핑에 관심 없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시는 바람에 날 위한 쇼핑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했다.
어른들을 위한 산행과 쇼핑으로 소비한 하루였으니 마지막 일정은 아이들을 위해 양보할 차례였다. 밤이 늦었고 모두 피곤했지만 호텔 내에 위치한 야외 수영장에 한 번이라도 몸을 담가야 한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응답했다. 산해진미를 대령하고 아무리 멋진 풍광을 보여주더라도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은 물놀이가 필수다. 아니 전부다.
쌀쌀하고 깜깜한 밤, 은은한 조명이 감싸는 수영장에서 하루의 피로를 푼 아이들은 이내 곤히 잠들었다. 쌔근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