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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7. 2020

Day 2. Bye~ LA

새로움, 아쉬움, 포근함.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호텔 조식이라고 생각하는 나. 평소라면 거르기 일쑤인 아침식사를 조식 뷔페 앞에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꾸역꾸역 먹었다. 그래 봤자 빵, 스크램블드 에그, 베이컨, 과일, 커피가 전부인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일정에서 조식이 포함된 날은 오늘 하루뿐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먹었다.

가족 모두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어제 미처 들르지 못했던 할리우드 거리와 오늘 예정된 여러 일정 중 꼭 가볼 곳만을 정해 움직였다. 여행 하루 만에 깨달았다. 너무 빡빡한 일정은 무리임을.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챙겨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할리우드 거리였다. 별거 없어 보이는 거리지만 바닥에 장식된 별에서 아는 영화배우 이름을 발견하는 재미에 걷게 되는 길이다. 차이니스 시어터 앞, 유명인사들의 손도장이 모여있는 곳에 이르러 이병헌의 손도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배우가 할리우드에 입성해 굴지의 배우들 사이에 이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 묘한 뭉클함을 선사했다. 아이들에게는 <G.I.Joe>의 스톰 쉐도우로 기억되는 한국 배우였지만 내게 이병헌은 <번지 점프를 하다>의 순수 청년이다. 


다음 행선지는 <게티 센터>.

주차장에서 트램을 타고 올라가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게티센터는 미국의 석유재벌인 폴 게티가 건립한 박물관이다. 사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을 사람과 장소였는데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됐다. 전시품들뿐 아니라 건축물, 정원만으로도 눈요기할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LA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풍광이 압권이었다. 방대한 규모는 하루 종일 있어도 다 둘러보지 못할 정도였지만, 우린 이미 들어설 때부터 알고 있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얼마나 주리를 틀 것인지... 게티 센터라는 곳의 존재만을 확인하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기념품 샵을 끝으로 드러누워 버린 둘째. 알았다. 간다 가!


계획에 있던 곳들 중 상당 부분을 포기했다. 파머스 마켓과 그로브몰, 코리아타운, 그리피스 천문대. 쇼핑이 목적인 곳은 과감하게 빼버렸지만 그리피스 천문대는 아쉽게 포기해야 했다. 한국에서 야간 관람을 예매하려고 했지만 이미 마감됐었고 외관이라도 보기 위해 가려던 오늘은 하필 공사로 인해 휴관 중이라고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었다. 우리의 이번 여행에서는 연이 닿지 않았던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대로 LA를 떠나기는 아쉬웠다. 팜스프링스로 이동하기 전 간단히 가볼만한 곳을 검색해 <캘리포니아 과학센터>로 향했다. 즉흥적인 선택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우주왕복선 엔데버(Endeavour)가 전시되어있고 아이들을 위한 과학 체험도 곳곳에 준비된 곳이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는 젊은 시절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을 미국의 우주 개발, NASA의 우주 왕복선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동생에게도 의미 있었을 듯싶다. 하긴, 흥분한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며 챙기느라 뭘 제대로 봤겠는가 싶지만... 

전체적으로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으나 우주왕복선을 보러 가는 길은 줄이 제법 길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만나게 된 우주 왕복선은 장관이었다. 사진 한 장에 담지도 못할 규모와 위용에 왠지 모르게 겸허해졌달까... 미국인들에게 큰 자부심이 될 만했다.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다음 도시인 팜스프링스로 출발했다. 

LA라면 당연히 가봐야 할 곳을 놓친 게 아니냐고? 예를 들어 디즈니 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사실, 이번 미 서부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세 번째였다. 디즈니 랜드는 홍콩과 일본에서도 다녀왔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마찬가지... 그래서 돈도 많이 들고 볼 것도 빤한 그곳들은 생략했다. 조카들을 위해서는 가볼 만도 했지만 그러기엔 10명이란 인원은, 너무 대가족이다. 입장권만 해도 백만 원... 과감한 포기의 이유다. 

대신, 놀이기구나 몇몇 캐릭터의 퍼레이드만으로 기억될뻔했던 여행은 박물관과 과학센터 덕분에 색다른 기억을 남겼다. 천문대를 못 가본 것은 내내 아쉽다.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팜스프링스>였다. 

가는 길에 대형 마트에 들러 제대로 쇼핑을 했다. 각종 음료와 과자, 과일, 야채를 비롯해 저녁 만찬을 위한 프라임 등급의 소고기까지. 빵순이 엄마는 종류별로 빵을 골랐고 술 귀신이 붙은 아버지는 양주를 여러 병 골랐다. 골프장 근처에 위치한 호텔은 대가족이 함께 먹고 자기에 충분히 크고 쾌적했다. 특히 잘 갖춰진 주방 덕분에 '여행 가서는 절대 요리 안 한다'는 신조를 가진 나조차도 '뭘 안 해 먹기는 아까운 주방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

누린내 전혀 안 나고 부드러운 소고기 스테이크, 한국에서 준비해 간 햇반, 쌈장, 김치, 밑반찬으로 풍성한 저녁을 즐겼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남편은 미국 슈퍼에서 저렴히 산 양주를 충분히, 실컷 마시는 호사도 누렸다. 


날씨도 좋았고 아무런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맛있는 저녁식사로 배까지 부른 지금... 오늘... 

밤공기는 시원하고 잠자리는 포근하다. 

바지런한 엄마는 객실에 설치된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해 간단한 빨래를 하며 졸고 계시고 아이들은 각자 맡아놓은 침대에서 곤히 잠들었다. 거나하게 취한 남자 어른들은 따로 잡은 객실로 돌아가 단잠에 빠지셨을 테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여행 둘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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