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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9. 2020

Day 4. Las Vegas

짧고, 얕고, 다양하게...

팜 스프링스를 떠나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바로 가기엔 길고 지루한 여정인 탓에 중간에 쉬어갈 겸 <칼리코 은광촌>에 들렀다. 서부개척시대에 은광으로 부자가 된 도시라는데 1896년 이후 버려져 현재는 민속마을 관광지가 되었단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산 꼭대기의 'CALICO'라는 간판과 인기 관광지라는 가이드(남편이 운전과 관광지 해설을 도맡았다.)의 설명이 무색하게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폐광촌 같았다. 물론 덕분에 부담 없이 구경할 수 있었지만...

작은 폐광촌을 한 바퀴 도는 코끼리열차만한 관광열차를 타면 기관사면서 해설사가 이곳저곳을 보라고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말한다. "영어 공부 좀 할걸~~~"

밥이나 주문하고 화장실이 어딘지 묻는 정도의 영어 수준으로는, 장황한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역사 소화해낼 수 없었다. 그저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분위기 봐가며 웃을 수밖에...


뜨거운 볕을 피해 SUBWAY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두 시간을 달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호텔 체크인 전에 서둘러 들러야 할 곳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남편이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Gold & Silver Pawn Shop>

남편이 즐겨보는 케이블 프로그램이었던 '전당포 사나이들'의 무대가 된 바로 그곳이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의 주인공 형제들은 없었지만 이미 관광명소가 되어 있어 주차장에서부터 번호표를 받아 들어가야 했다. 곳곳에 만들어진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지만 긴 여행 동안 혼자 운전하느라 수고하는 남편의 소원을 풀어준 장소가 됐다.

저녁 7시에는 MGM 호텔에서 하는 KA쇼 관람이 예약되어있었다. 태양의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쇼 중 하나이고 라스베이거스 3대 쇼 중 하나인 KA쇼를 한국에서부터 예약해두었다.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와 화려한 공연, 특히 360도로 회하는 무대장치로 유명한 쇼를 앞에 두고 어찌나 졸았는지... 비싼 쇼라는 죄책감에 푹 자지도 못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재밌게 관람했다니 그나마 다행...


라스베이거스는 호텔마다 꾸며놓은 외관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야간이 볼만해서 조금은 피곤하지만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를 보기 위해 한참을 걸어갔다가 오는 길에는 각종 캐릭터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심 쓰듯 사진을 찍어주고는 돈을 요구하는 이들이었다. 한창 인기몰이였던 엘사와 울라프도 있었는데, 거리 한구석에서 스파이더맨과 맞담배를 피고 있는 엘사를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완벽한 동심 파괴의 현장을 동생들에게는 보여주지 말자던 아들들 때문에 또 한 번 웃었다.

마음먹고 구경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 라스베이거스는 이렇게 번갯불에 콩궈 먹듯, 점 한번 찍고 끝냈다. 내일 아침엔 그랜드캐년을 향해 달리고 달려야 하기 때문...


여행을 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한 곳을 오래, 깊이 보는 것과 여러 곳을 짧게, 얕게 보는 것. 우리의 여행은 철저히 후자였다. 제한된 일주일 동안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달리며 중간중간 주요 장소를 찍고 가는 것.

상당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다양한 기억과 추억도 함께 남는다.

어찌 됐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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