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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pr 03. 2024

의자 부자

<라라크루 화요 갑분글감 - 가구>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

사전에 나오는 '부자'의 정의다.


부자를 구체적인 금액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모 금융회사에서 발표한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서는 부자를 '금융자산 10억 + 부동산자산 10억 이상을 보유한 개인'으로 정의했으며,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도 순자산 10억 이상이면 상위 10%라고 했으니 부자를 숫자로 정의하면 '10억'이 되겠다. 재물을 기준으로 정의 내린다면 내가 부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기 초가 되면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것을 써서 내야 했다. 부모님의 나이, 직업, 직장뿐 아니라 가정 내에 어떤 가전제품이 몇 개 있는지까지 써야 했던 기억이 난다. 가전제품 구비 상황을 들여다보면 학생의 가정 경제 상황을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니 도를 넘는 사생활 침해, 인권 침해였다.


가구의 개수를 쓰는 칸은 없었던 것 같지만, 만일 오늘날 같은 조사를 하고 가구 개수까지 쓰는 칸이 있다면 나는 '의자'난에 '16개'라고 쓸 수 있다. 나는 16개의 의자를 가진, 의자 부자다.


새 소파를 들이면서 원래 있던 소파의 반쪽은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소파가 2개.

남편 지인이 얼마 안 쓰고 넘긴 리클라이너 의자 1개.

교습소를 정리하며 집으로 갖고 온 의자가 3개.

식탁 의자로 쓰고 있는 벤치 1개와 기타 의자 4개.

현관 의자로 쓰고 있는 벤치 1개.

책상 의자 2개.

협탁으로 쓰고 있는 의자 2개.


집안 곳곳에 흩어져 나름의 역할을 해내던 의자들은 유사시 거실에 한데 모인다.

가족 식사 모임이 있을 때면 거실에 큰 테이블을 두 개 이어 붙여놓은 뒤 의자를 빙 둘러놓는다. 벤치까지 합치면 최대 20명까지 앉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친구들을 데려오면 식탁 주변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덩치 큰 장정이 될 때까지 식탁은 그들의 간식과 식사를 책임졌고 의자는 그들의 엉덩이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한 달에 두어 번 갖는 지인들과의 정기 모임 장소는 늘 우리 집이다. 모두 모이면 여섯 명인데 넓은 식탁과 여유 있는 의자가 한몫을 한다.


나에게 있어 의자의 다른 이름은 '사람'이다. 우리 집에 오는 누구든 편안히 앉아있다 갈 수 있도록 해주고, 덕분에 누구든 우리 집에 오는 걸 어려워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의자가 많은 의자 부자이면서 동시에 사람 부자이기도 한 셈이다. 금융자산 10억에 부동산자산 10억 이상을 가진 부자라 하더라도 썰렁한 집안에 값비싼 가구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 산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매일 글 쓴다고 앉아있는 바람에 반질반질해지고 삐그덕대는 식탁 의자에 앉아 흐뭇한 상상을 해본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화요갑분글감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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