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진달래꽃
워털루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아들을 가끔 아내와 데려다주곤했다. 2시간 정도 걸리니 지루 할 때쯤 되면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차 안에 ‘진달래꽃’이라는 음악이 흘렀다.
아들 녀석이 “이 노래 누가 부른 거야?” 아내는 "마야. 요즘 뜨는 여성 로커야." 이어서 “엄마, 고이 보내 드린다는 게 뭐야?” 아내가 “섭섭해도 보내드린다는 거야” “섭섭이 뭐야?” 아내가 “섭섭…으~음. 서운하고 아쉽다는 거지.” 아내가 이어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읊는다.
나는 시를 좋아 하지만, 외우는 재주는 없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는 좀 예외다. 김소월의 많은 시가 음을 붙여 노래화 되었기 때문에 처음만 가르쳐 주면 대충 웅얼거림이 나온다. 정미조의 ‘개여울’,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양희은의 ‘부모’, 민지의 ‘초혼’, 사월과 오월의 ‘님의 노래’, 마야의 ’ 진달래꽃’등이 그의 작품이다.
소월은 어린 시절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았는데, 숙모가 하는 이야기는 큰 즐거움이었다. 숙모 계희영은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으로 지방 부호의 딸이었다. 신학문에 눈을 뜬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글을 배웠고 고대소설, 설화들을 탐독한 그녀는 소월이 세 살 되던 해인 1905년에 공주 김 씨 문중으로 시집온다. 소월의 어머니는 아래 동서인 계희영에게 “자네가 우리 갓 놈에게 이야기 좀 실컷 들려주게.”하며 소월을 떠맡겼다.
혼인한 직후부터 외지로 떠도는 남편 때문에 소박맞은 것처럼 혼자된 숙모는 틈날 때마다 소월에게 <심청전> <장화홍련전> <춘향전> <옥루몽> <삼국지>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월의 어린 시절 문학적 밑바탕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진달래꽃’은 어릴 적 스승이던 숙모의 슬픈 사연과 깊은 관계가 있다. 소월의 숙부는 9살에 7년 연상인 숙모와 결혼을 한다. 숙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 유학을 가고, 숙모는 묵묵히 시집살이를 하며 베를 짜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어린 남편이 잘 되기만을 바라며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부인은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볼품없이 겉늙어 버렸다. 일본에서 돌아온 외숙부는 신의주의 모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그곳에서 젊은 여인을 얻어 딴살림을 차린다. 소문을 듣고 집안 어른들이 찾아가 꾸짖었지만, 이미 마음을 돌려세울 수 없었다. 그러나 숙모는 아무 내색도 없이 묵묵히 시집살이를 하면서 남편의 마음이 돌아 서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숙부는 1년도 못되어 죽고 만다.
그 소식을 들은 숙모는 슬피 슬피 울었다고 한다. ‘진달래꽃’은 그 비정한 남편에 대해 아무 원망도 미움도 없이, 한마음으로 사랑한 숙모의 마음을 달래 주는 심정으로 소월이 지은 시다.
1925년에 탄생한 이 '진달래꽃'은 2003년에 마야의 목소리로 재탄생한다. 먀야는 한여름 장대비처럼 시원하게 내지르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때아닌 열풍을 몰고 온 ‘진달래꽃’은 김소월의 시를 록으로 재해석한 곡인데, 대학가에서는 구전 가요처럼 술자리 뒤풀이 곡으로 자주 불리던 노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B4FBqTsRdto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이다. 본래 마야는 학창 시절부터 줄곧 연극반에서 활동한 배우 지망생이었다. 그런 마야가 배우가 아닌 가수로 데뷔하게 된 것은 우연히 드라마 주제곡을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 하는 짓이 하도 유별나서 별명이 ‘작은 악마’였는데, 나중에 대학교 선배가 ‘마야’라는 말에 ‘작은 악마’라는 뜻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그때부터 마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는 가수로서 “혀끝에서만 불리는 노래가 아닌 가슴속에서 울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하듯, 개성이 무척 강한 가수이다. 그가 '진달래 꽃'을 부르면 신남과 애절함이 동시에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