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터에서 놀았던 놀이 중에 다방구라는 것이 있다. 다방구는 술래잡이의 한 가지로 조선시대에 병사들을 훈련시키려 만든 놀이인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다 열렸다’라는 일본어 `다방구'(た-パンク)를 해방 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다가 굳혀진 것이다.
놀이 방법은 첫째, 경기장을 정한다. 놀이하는 장소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을 경우, 아예 엉뚱한 곳으로 가 버리기 때문에 일단 술래의 눈에 띄는 곳까지로 한다. 단 적당한 지형지물은 재미를 더 하게 함으로 서로 실랑이가 없도록 서로 사전에 양해한다. 주로 담이 있는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공터나 놀이터 등을 이용했다. 경기장이 결정되면 적당한 위치에 술래의 진(기둥)을 정한다. 주로 철봉대나 미끄럼틀, 전봇대, 큰 나무 등을 이용했다.
둘째, 인원 구성과 술래를 뽑는다. 다방구의 놀이 인원수는 특별한 제한이 없지만, 보통 10~20명 정도가 적당하다. 먼저 술래 편을 뽑는데, 1/3에서 1/5 정도 선에서 인원 구성을 한다. 술래가 너무 많으면 쉽게 잡혀서 재미가 없고, 너무 적으면 끝이 잘 안 나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는 보통 가위 바위 보 또는 데덴찌(손등/바닥)로 정한다.
셋째, 경기의 진행은 편이 결정되면 술래들은 공격 편이 흩어져 도망갈 시간을 준다. 대개 눈을 감고 뒤로 돌아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번 외우거나 1부터 50까지 숫자를 센 후에 시작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술래들은 공격 편을 잡기 시작하고, 술래에게 몸의 어느 한 곳이라도 닿으면 포로가 되어 진에 붙어 있어야 한다. 단, 포로들끼리 손을 잡아서 길게 늘어 뜨려 붙은 상태에서 움직여 수비를 방해할 수도 있다. 포로들은 같은 편이 '다방구'를 외치며 잡은 손을 손으로 끊어 주면 포로에서 해방되어 자유가 된다. 이때 잡고 있던 손이 끊긴 사람부터 풀려나게 되고, '다방구!' 하며 기둥을 치면 잡힌 사람들이 모두 풀려 난다. 공격 편이 모두 포로로 잡히면 한 판이 끝나게 된다.
이 놀이는 주로 남자애들끼리 했는데, 흙 만지고 땀에 범벅인 된 손을 꽉 잡고 조금이라도 길이를 늘려 보려고 애들을 많이 썼고 간혹, 손잡는 옆 아이가 마음에 안 들면 손가락과 손가락만 걸치기도 했다.
비석 치기는 서로 편을 갈라하기도 했고, 개인별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그 외에 땅따먹기, 비석 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땅뺏기 등이 있었는데 서로 편을 갈라했고, 정해진 규칙을 어기거나 심하게 우기는 아이는 소위 ‘왕따’를 시키기도 했다. 주로 제일 나이 많은 아이가 심판(?)을 맡았으니 어려서부터 ‘찬물도 아래위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익혔다.
여자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고무줄놀이였다. 고무줄을 다리 사리에 두고 노래에 맞춰 이쪽저쪽으로 뛰어넘는 이 놀이는 술래 격인 두 사람이 고무줄을 평행으로 잡고 1단 발목, 2단 정강이, 허리, 턱, 눈높이, 머리 위까지 차츰 고무줄을 높여 간다. 학교 운동장에서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으면 심술궂은 남자애들이 달려가 고무줄을 끊어 버리거나 휘감고 도망치기도 했다.
이 놀이는 노래를 부르며 했는데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살 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등의 동요를 많이 불렀다. 난이도에 따라 부르는 곡이 바뀌고, 템포도 빨라지거나, 느려 지곤 했다.
고무줄놀이는 동요를 부르며 했는데, 난이도에 따라 부르는 곡이 바뀐다.
다방구와 고무줄놀이는 인원수가 많아지면, 술래도 많아지고 놀이 방식도 과학적으로 변형이 된다. 특히 고무줄놀이는 4~5명이 노래에 맞춰하면 참 볼만 했다. 여자애들의 묘기도 좋았지만, 치마가 고무줄에 걸리면 살짝 보이는 속 옷 보는 재미도 남자애들의 흥밋거리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 보면 해거름이 지고, 넘어져 깨진 무르팍 상처의 아픔이 느껴질 때쯤 되면 엄마들의 성난 목소리도 들린다. 순종의 시절이었기에 바로 헤어져 집으로 달려들 갔다. 엄마의 목소리는 심판(?)을 능가하는 권위를 가졌었다.
이제 고국에서 조차 서서히 빛을 잃어 가는 놀이들이지만, 지금의 컴퓨터 게임이 이만큼 재미있을까 싶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고무신이 닳까 봐 맨발로 놀았던 엄마, “배 꺼지니 너무 뛰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빠는 그 옛날 엄마의 잔소리가 정말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