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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경 Nov 01. 2017

내 목소리 명확하게 전달하기.

진심을 말하는 게 힘들더라도 내 권리는 정중하고 명확하게 어필해야 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예스맨(YESMAN)...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잘 알겠지만 '상대를 배려하다가 이런저런 피해를 보는 유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성향'을 가리킨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피해가 간다거나, 관계에서의 불편함을 겪지 않기 위해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되어, '에이, 내가 그냥 양보하자.' 혹은 '뭐 이 정도 손해를 본다고 큰 걸 잃는 건 아니잖아.' 하며 내 입장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너무 맞춰주다 보면 상대로부터는 그저 쟤는 원래부터 그런 애야 하면서 그 고마움을 모른 채 조금씩 함부로 대하게 되고, 결국엔 그가 크게 상처를 받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앞서 한 예시에서 누구의 잘못으로 관계가 틀어지고 깨진 걸까? 전반적인 내용으로 보자면 그 배려에 대해서 고마움도 모른 채 당연히 생각하고 함부로 대한 이가 잘못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상대의 입맛에만 신경 쓴 주인공의 잘못도 만만찮게 크다. 본인의 의사나 권리, 생각 등이 전혀 없이 그저 관계가 틀어질 것 같은 두려움과 겁에 질려 방어적으로 상대를 대했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배려의 아이콘이 아닌가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솔직히 그건 배려라기보다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이며, 다만 다른 이를 위한다는 가면을 그럴듯하게 쓴 모습일 뿐이다. 필자가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 부분이 잘못도 있지만, 그만큼 본인에게 파급효과가 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 더 부각을 한 것이니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부터 기가 좀 약해서 학창 시절 반 아이들 몇몇에게 괴롭힘도 당해보고 왕따도 당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랬었기에 이런 부분의 주제에 대해선 뼈저리게 아픈 기억으로 인하여 더욱더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서 지인들과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나눔을 해봤을 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도 해주고 자기도 비슷했다면서 힘들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했을 때, 비단 소수만이 겪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도 회자되고 대두되는 이야기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부분이란 것에도 새삼 놀라기도 했었다. 그래서 미약하나마 이번에 필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나눔을 한 후에 들었던 피드백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1. 예스맨은 왜 생길까?

애초부터 성격이 온순하고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가 관계에 대해선 굉장한 민감함을 갖고 있다. 게다가 가정에서 거절감, 혹은 냉대를 좀 겪은 사람일수록 내가 그들로부터 거절당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싫기 때문에 나를 철저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발동하게 된다. 내가 좀만 양보해서 이들에게 맞춰주자, 혹은 희생하자로 말이다. 그러면서 그의 지인들은 그가 그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뭘 해도 알았어하는 반응이 당연지사 나오는 걸로 착각한 채 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줄도 모르고 대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차츰차츰 쌓여가는 부담감과 괴로움이 한거번에 폭발해 지인들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도 더 큰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 마저 닫고자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애초에 겁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면 방어적이 되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혹은 과거의 안 좋은 트라우마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걸 막기 위하여 가장 1차적인 방어로써 그렇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중에 본인에게도 치명적인 덫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2. 그러면 어떻게 해결하는 게 가능할까?

우선은 겁을 먹지 말고 나의 의견이 상대에게 기분이 나쁠 만큼이 아니고 조리 있게 설명으로 이야기가 통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오간다고 해서 일촉즉발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상대가 이해를 하고 당신의 요구에도 수긍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이 든다. 상대가 기분이 나빠져서 자신을 거절할 거라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상대는 생각보다 우리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성격이 고압적이고 꽉 막혀 있는 이가 아닌 이상,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거나 걱정을 하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당신의 불편함을 알지 못할 뿐이다. 당신이 그 사항에 대해서 이러한 점이 나에겐 조금 부담이다 혹은 지금은 내가 하는 건 조금 무리라고 천천히 설명만 잘하면 그들은 다른 적임자를 찾아갈 것이다. 솔직히 급박한 상황이면 게다가 당신이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면 상대의 시간도 배려해서 아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애초부터 겁을 지레 먹지 말자. 우리의 의견, 나의 의견, 당신의 의견은 소중하다.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의견을 저버릴 필요까진 없다.


3.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스맨들에게

필자도 예스맨으로 꽤 오랫동안 지내왔었다. 그동안 내 안에 응어리가 참 안 풀려서 스트레스가 만만찮았지만, 겉으로는 그냥 괜찮은 척 살아왔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참 멍청한 짓이 아니었나 싶다. 굳이 그렇게 내 마음에 상처를 내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우선, 내가 나 스스로를 많이 아껴줘야 한다. 내가 자존감이 낮거나, 아님 남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피해의식이 지나쳐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다. 그 과정이 참으로 아프고 돌아보기 싫고 자존감이 더 낮아질 것만 같지만 그 맨얼굴의 스스로와 마주쳐야  내 안에서 웅크리고 슬피 울고 있는 아이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해줄 수가 있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도 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예스맨들이여, 그대들은 절대로 못난 사람들이 아니다. 다만 마음의 어딘가가 조금 아플 뿐이다. 그 아픈 마음을 스스로가 어루만져 줘야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조금만 용기를 내고 내 자아와 마주하자. 그리고 아픈 그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보자. 그대들의 건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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