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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경 Nov 04. 2017

관계에 대해서 '완벽함'을 버려라.

미움받을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2년 전에 일본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 교수와 작가 코우가 후미타케 씨가 쓴 책인 [미움받을 용기]가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었다. 우리나라도 그 책의 열기로 정말 후끈했었는데, 본국인 일본에서는 정말 어땠을까. 정말 다양한 버전과 채널로 날이 거듭될수록 쏟아지듯이 출판되었지만 대부분의 서적들이 절판될 정도로 엄청났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뜬금없이 서두부터 웬 책 이야기부터 시작하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다. 바로 오늘 이야기할 주제와 같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싫어하거나 혹은 관심을 안 갖거나 무신경하게 대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문장 그대로만 본다면 그 사람이 이해가 되고 측은지심이 들어 상처를 받을만한 것도 같고 공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게 가보면 그 사람이 조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것인즉,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주변인으로부터 좋은 사람 이고픈 욕심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노력하면 왜 안될까요? 내가 좀 더 신경 쓰고 잘해주면 가능한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결론 먼저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천천히 풀어가도록 하겠다. 


자, 여기서 조금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나의 주변인들을 놓고 봤을 때, 나에게 진심으로 신경 써주는 사람들부터 그냥 가벼운 인연인 사람들까지를 분류를 좀 해본다면 대략적인 관계의 깊이가 나올 것이다. 그런 주변인들이 대략 10명이라고 쳤을 때 나에게 무관심한 부류가 7명, 날 싫어하는 부류가 2명, 그리고 날 은은하게 바라봐주고 진심으로 신경 써주는 이가 1명이라고 쳤을 때 그 인생이 과연 실패한 인생일까?


결론은 아니다. 그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운인가. 솔직히 같은 핏줄에서 태어난 가족들하고도 서로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안 맞아서 싸우게 되는 경우도 허다한데, 게다가 그렇게 가까운 일촌관계인 부부끼리도 성격차이로 멀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나를 이해해주고 바라봐주고 감싸 줄 수 있는 이가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내 지인 10명 중 대다수가 나에게 관심이 없을지언정 그 단 한 사람이 나에게 주는 힘은 그 10명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다. 


오히려 내가 관계 안에서 갖고 있는 욕심 혹은 착각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겐 이중적인 욕구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누구나 관심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예시의 유형은 그런 욕구가 남들보다 조금 더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감정을 포함,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인정 혹은 인기를 누리고 싶은 욕구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나의 테두리 안에 누군가가 개입하거나 참여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욕구이다. 누군가가 내 일에 깊이 관여하거나 너무 참견이 심하면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는 것처럼,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독립과 자유를 누리고픈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그 상극인 두 욕구가 부딪히기에 힘든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행복하고픈 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픈 욕구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생각으로부터 온 강박의 결과가 아닐지 생각한다. 그러니 내 주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관심하게 대우를 받는다고 상처를 입을 것이 아니라, 그래도 그 와중에 나를 바라봐주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 그 한 명을 얻기도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알면 말이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싫어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제시한 그 방법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맷집을 키우며 살아가자는 취지이다. 다른 이에게도 미움을 받는다고 할지언정, 나의 주관을 잃지 말고 세상의 휘둘림에서도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맷집 말이다. 


관계에서의 완벽함은 없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즐거움과 행복함은 분명히 있다. 그 행복과 즐거움이 내 삶 가운데서 충분한 이유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뭐가 있을까? 이제는 눈을 씻고 이상적인 것에서 나와서 좀 더 나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행복과 기쁨에 더 집중해서 지내도록 하자. 그것만 누리기에도 우리네 인생은 시간이 길지만은 않으니까 말이다.  




덧글: 본 글의 중요 내용은 유튜브 성장문답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당신이 들어아 하는 답변-윤대원교수" 편의 답변 내용을 일부 인용 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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