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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산별곡 Oct 25. 2024

그날의 수채화

어느 가을밤의 에피소드

지금도 M여고 앞을 지날 때면 옛 생각에  미소를 짓곤 한다. 이미 십수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딸이 M여고 1학이던 어느 늦가을 .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딸을 데리러 M여고에 갈 일이 있다. 밤 8시쯤 되었으리라. 시야를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둑어둑다. 정적에 감싸여 있는 교정에 바람이 살랑이며 나뭇잎을 흔들고, 나무들은 가을의 끝자락을 느끼며, 잎사귀를 하나둘 떨어뜨린다. 가로등의 빛은 나무의 가지를 부드럽게 비추고, 그림자들은 땅 위에 길게 드리워져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순간, 교정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낙엽이 지고, 가로등이 비추는 이 풍경은 가을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교사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주차하고 실내등을 끈 채로 딸이 교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옛날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본다.


10여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정적을 깨뜨리며 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교문으로 들어와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1교시 자율학습이 끝나고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간식을 사먹고 오는 것이리라. 차안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재잘대며 지나가던 일단의 학생들이 이상한 기분을 느꼈는지 내 차를 향해서 돌아섰다.

“차안에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호기심 많은 여고생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 왔다. 있다느니 없다느니 옥신각신하다가 학생들이 마침내 차 앞으로 다가와서 손으로 차앞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노크소리에 대답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 나도 무심히 차앞 유리를 톡톡 쳤는데...

  “어마야~" 비명을 지르며 학생이 도망을 쳤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은 모양이다. 여고생들은 특히... 놀란 학생들이 도망친 후 뒤이어 오던 여고생들이 또 내 차로 다가왔다. 앞서 간 학생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역시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차앞 본네트에 몸을 댄 체로 얼굴을 유리창에 바짝 붙이고 유심히 내부를 살핀다. 나도 얼굴을 창쪽에 바짝 갖다 붙이고 학생들을 마주보며 싱긋 웃어 주었는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치는 학생들.


그런데 이걸로 상황이 끝난 것이 아. 또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나의 차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무슨 호기심이 그리 많은지...

이번에 온 아이들은 좀 더 똑똑한 학생들 모양이다. 한 학생이 휴대폰을 펼치더니 휴대폰 불빛을 차창 안으로 비춘다. 나도 휴대폰을 꺼내어 빛을 마주 쏘아 보냈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급히 달아나다가 쓰러지는 아이까지 생겼으니 내가 심했던 것일까? 나는 그저 따라했을 뿐인데... 

차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인데...


잠시 후 교실에서 나와 차에 타던 딸이

“아빠! 무슨 일인지 교실에 들어가는 아이들마다 웃고 떠들고 야단이에요.”

나의 얘기를 듣고 딸도 깔깔~

웃음소리에 답하듯 교정의 나뭇잎이 춤추며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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