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이 2003년 한국에 소개된 이후,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또는 종달새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식을 줄 모릅니다.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을 찬양하는 책이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이와 같은 흐름에 반발하여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2004)와 같은 책도 나왔습니다. 아침형 인간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뒤를 이었습니다. 애플의 팀 쿡은 3시 45분에 기상하다가 최근에는 4시 30분 기상으로 다소 게으름(?)을 피우는 모양입니다. 그는 일어난 뒤 1시간가량 이메일을 확인하고서,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선다고 합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5시에서 6시에 일어나서 저녁 10시쯤 잔다고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그는 아내인 매켄지 베이조스와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380억 달러를 지불했는데요. 매켄지 베이조스는 위자료를 받자마자 단숨에 당시 세계 부호 25위에 올랐습니다. 그 뒤로 베이조스가 불면증을 겪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프 베이조스는 몇 년 동안 내놓지 않았던 세계 1위 부호 자리를 다시 빌 게이츠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아마 이혼하지 않았다면, 부동의 1위였겠지요.
앞서 다루었던 다니엘 핑크의 <언제 할 것인가>는 인간이 유전적으로 종달새, 올빼미, 제3의 새 등 3 분류로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세계 여러 지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60-80%는 아침형도 저녁형도 아닌 제3의 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25% 정도는 확고한 올빼미형 인간에 해당합니다.(47쪽)
한편 수면에 관한 한 훨씬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2019)에 따르면 아침형 인간은 인구의 약 40%, 저녁형 인간은 30%가량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매슈 워커는 어째서 유전적으로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 나뉘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습니다.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집단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시간에 자고 깨면 외부의 침입에 취약해집니다. 이 때문에 자고 깨는 시간이 꽤나 차이가 나는 두 집단이 번갈아 잠으로써 생존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말이지요.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대자연은 생존 안전장치를 강화함으로써 그만큼 종의 적합도를 높일 수 있는 생물학적 형질-여기서는 부족 구성원들이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서로 달라지는 유용한 변이-를 결코 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보고 있다."(38쪽)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유전적으로 나뉜 것이라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결론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사회의 하루 일정이 아침형 인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두고 다니엘 핑크는 "올빼미는 오른손잡이 세상에 던져진 왼손잡이여서, 어쩔 수 없이 오른손잡이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가위나 책상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재치 있게 표현했습니다.(48쪽) 매슈 워커 또한 "사회의 업무 일정표는 처음부터 불공정하게 짜여 있다. 올빼미형을 혼쭐내고 종다리형을 편드는 쪽으로, 일찍부터 시작하도록 강하게 편향되어 있다."라고 지적합니다.(36쪽) 유전적으로 올빼미형인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본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밤 11시쯤에 잠들었습니다. 몇 시에 기상해야만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프 베이조스나 팀 쿡이 보기에 저는 아침형 인간의 축에 끼지도 못하겠지요. 하지만 일단 제 자신을 아침형 인간이라고 불러보겠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저런 생활패턴에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저는 2014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늦게 자기 시작했습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SNS나 유튜브를 보면서 커피도 곁들였습니다. 취침 시간이 늦어지고 수면의 질이 하락하면서, 점점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 초에서야 비로소 슬로 라이프를 접헀고, 생체리듬을 따르는 삶과 관련된 공부를 천천히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제 본래의 생체리듬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현대인은 자신이 저녁형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유전적으로 볼 때 종달새와 제3의 새가 80% 정도를 차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본래의 생체리듬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체리듬이 어떠한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1주일 동안은 커피를 끊고(끊지 못한다면 오후 2시 이후에는 마시지 말고), 취침 3시간 전에 음식 섭취를 마치고, 저녁에 술을 마시지 말고, 취침 전에 과격한 운동을 해서 아드레날린을 분출하지 말고, 잠들기 1시간 전에는 일체 디지털 기기를 접하지 말고 지극히 '정상 상태'에서 자신이 수면 욕구를 느끼기 시작하는 시간이 언제인지를 분명히 파악해보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자신의 생체 리듬대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해 놓은 뒤 늦게 잠들고서는, 나는 저녁형 인간임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아침형 인간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전적으로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저녁형 삶을 산다면, 사회적 패턴에도 자신의 자연적 패턴에도 모두 맞지 않게 됩니다. 결과는 물론 만성피로이지요.
저는 아침형 인간 패턴이 옳다거나, 그에 따라 억지로 자신의 생체리듬을 교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저녁형 인간에게 전적으로 부당한 처사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유전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수만 년 동안 인류의 대부분은 해가 떨어지면 잠들고 닭이 울면 일어났습니다. 제의 유일한 관심사는 '만성피로'입니다. 저녁에 일찍 잠드는 것이 아까워서 계속 생체리듬을 어기는 생활패턴을 반복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만성피로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잔인하지만 저도 겪은 진실입니다. 저는 특히나 불금 불토에는 아예 밤을 꼬박 새우곤 했었거든요. 자신이 어떤 생체리듬을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한 뒤에 어떻게 즐겁게 살지 방법을 강구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가령 일찍 자는 것이 좋기는 한데 넷플릭스가 너무 보고 싶으면, 밤에 일찍 자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시청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영어공부 삼아 보는 미드는 꿀맛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구체적인 방안은 모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세울 일입니다. 핵심은 자신의 정확한 생체리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법 긴 기간 동안 밤잠을 방해하는 모든 원인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자신의 유전적 생체리듬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 노는 시간이 줄어들어 다소 애석하기는 합니다만, 이것이 만성피로를 떨쳐내는 중요한 첫 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