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핑크의 <언제 할 것인가>(2018)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래학자입니다. 1964년 생인 그는 4개의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2020년 현재 <새로운 미래가 온다><파는 것이 인간이다><드라이브> 등 6권의 저서들이 한국에 번역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나만의 생체 리듬을 따르는 슬로 라이프"와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책은 그의 최신작인 <언제 할 것인가 When: The Scientific Secrets of Perfect Timing>(2018)입니다. 그 책의 PART 1은 <하루 속 숨어있는 시간 패턴>이고, Chapter 1은 <생체시계의 비밀: 최적의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이 책은 놀랍게도 모든 인간에게 거의 공통적인 하루의 기분 패턴이 있다고 합니다.
내 안의 생체시계가 명령하는 기분 패턴을 내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기분 패턴에 따라 내 할 일을 정렬할 수 있다면 어떤 유용함이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나의 생체시계와 어긋나게 일하고 사는데 따른 피로도가 확연히 감소합니다. 우리는 만성피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생체시계에 맞춰 일할 경우, 생산성이 증가합니다. 피로하지 않으니 생산성이 증가하겠지요. 내가 내 생체리듬과 어긋나게 행동하고 생체리듬과 어긋나게 업무를 배치할 때, 나는 짜증을 느끼게 됩니다. 짜증은 곧바로 피로로 연결되지요. 게다가 생체리듬과 어긋나게 일을 해서 생산성이 저하되면, 자기 비하가 이어집니다. 자기 비하 또한 심신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짜증을 한 번 내보십시오. 피곤하죠? 참으로 피곤한 인생입니다. 이 때문에 나의 하루 기분 패턴에 맞춰 업무를 배치하는 것은 만성피로를 가시게 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만인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하루의 기분 패턴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다니엘 핑크는 여러 가지 과학적 연구결과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2개만 간략하게 다루어보겠습니다. 첫째, 코넬대학교의 사회학자 마이클 메이시와 그의 동료 학자는 2년 동안 84개국에서 240만 명의 유저들이 올린 5억 개가 넘는 트윗을 분석했습니다. 그들은 LIWC라는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트윗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분석했습니다. 특히 깨어 있는 시간 동안의 기분 변화를 추적했지요.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기분이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두드러지게 일관된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긍정적 기분은 오전에 올라갔다가 오후에 떨어지고 저녁에 다시 올라간다(↗↘↗)."
다니엘 핑크가 말한 것과 같이, "어느 대륙이든 어느 표준시간대이든 하루의 진폭, 즉 최고점-최저점-반등의 주기는 늘 같아서, 바다의 조수처럼 예측이 가능했습니다."(24쪽) 문화나 지리적 다양성과 관계없이, 이 보편적인 생체시계는 만인 속에서 일관되게 작동했지요.
둘째, 최근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등이 시간 경과에 따라 기분의 변화를 그린 도표를 발표했습니다. '하루의 재구성법(DRM)'이라고 불리는 이 연구의 결과는 앞선 마이클 메이시의 연구와 놀랍게도 흡사합니다. 사람의 기분은 기상 후에 상승하다가 정오인 12시에 제일 높고 오후 5시경에 제일 낮다가 그 이후 반등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패턴은 우리의 직장생활 패턴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전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기분은 상승합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기분이 점점 다운되고 식곤증이 밀려옵니다. 오후 5시쯤 되면 이제 퇴근까지 1시간 남았다는 생각에 점점 기분이 상승하겠지요. 하지만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는 직장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 연구결과는 인간의 하루 생체리듬이 사소한 차이는 있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이와 같은 연구결과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중요 회의는 오후보다는 오전에 하는 편이 좋습니다. 듀크메디컬센터는 그들이 행한 9만 여 건의 수술을 분석하여, 유해 사례가 오후 3시와 4시 사이에 훨씬 자주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2011년 이스라엘의 법사위원회의 판결 결과를 분석한 결과, 판사들은 대체로 오후보다 오전에 죄수에게 유리한 판결을 많이 내렸습니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오후가 되어 졸리고 짜증이 나면 판결에 한층 엄격해지겠지요. 오전보다는 오후에 졸음운전의 확률이 높다는 것 또한 상식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우리가 병원과 법원에 갈 일이 있을 때, 어느 시간대에 방문하는 편이 좋은지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다니엘 핑크의 통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부터가 더 흥미롭고 유용한 파트입니다. 결론만 미리 이야기하자면, 다니엘 핑크는 단순히 오전에는 기분이 상승하고 오후에는 기분이 하강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업무의 성격상, 오전에 적합한 업무와 오후에 적합한 업무가 나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기분과 성취도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기분은 최고점-최저점-반등이라는 공통된 패턴을 따른다. 그리고 이것은 이원적 실적 패턴을 형성한다. 상승 구간인 오전에 사람들은 분석적 작업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반등 구간인 저녁 시간에는 억제력과 분석력이 별로 필요 없는 통찰력 문제를 잘 푼다."(42쪽)
흥미롭게도, 인간의 날카로운 분석력이 점점 힘을 잃어갈수록 예기치 못하게 혁신과 창의력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를 영감의 역설(inspiration paradox)라고 부릅니다. 이 때문에, 다니엘 핑크는 오전에는 주로 분석적인 일을, 오후와 저녁에는 주로 창의적인 일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지점에서 다니엘 핑크와 약간 견해를 달리합니다. 왜냐하면 분석적 일과 창의적 일이 생각만큼 분명히 나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뛰어난 작가들은 새벽에 일어나 오전에만 글을 씁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창의적 일이 아니란 말입니까? 저 또한 저분들만은 못하지만, 주로 오전에 글이 가장 잘 써집니다. 반면에 오후가 되면 오전만큼 힘을 발휘하여 글을 쓰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다니엘 핑크와는 다른 분류를 여기에서 제시하겠습니다.
오전은 생각을 쏟아내는 시간(idea-out time)
오후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시간(idea-in time)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오후와 저녁에 받아들인 생각들이 밤새 저의 뇌 속에서 정리되어 이제 쏟아져 나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것을 종이 위에 토해내는데 힘씁니다. 물론 토해내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솟아올라 글에 달라붙습니다. 오전에는 자아(self)의 목소리가 매우 강합니다. 그 목소리가 곧 내 개성이니, 그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쏟아내면 되겠지요.
그러나 오후부터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제 생체리듬상 힘이 떨어지고 자아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이제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입니다. 다시 말해 독서를 하고 티타임을 갖고 회의를 할 때이지요.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재무회의는 오전에 하는 편이 좋지만, 뭔가 열린 사고의 태도가 필요한 인문학적 회의는 오후에 하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 회의라기보다는 철학적 티타임이 옳겠지요. 오후에는 제 생각을 주장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수용적인 태도로 지식을 습득하는 편이 유용합니다.
그러면 저녁에는 어떻게 될까요? 저녁은 반등의 시간입니다. 가벼운 운동, 예컨대 슬로우 조깅(slow jogging)을 하고 나면, 베타 엔도르핀이 생성되고 뇌가 알파 파(alpha wave) 상태에 들어가는 등 명상에 가까운 모드가 됩니다. 이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내가 습득했던 지식들이 정리됨과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상태를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 반등 상태란 것이 매우 묘해서, 피곤하지만 않다면 idea-out과 idea-in이 동시에 잘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식들이 "생체 리듬을 따라 사는 슬로 라이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제가 만약 제 생체리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 오전에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오후에 주체적으로 글쓰기를 하게 된다면? 저는 자아가 강한 오전에는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단순히 제가 오만해서가 아니라), 오후에는 나만의 글쓰기를 실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온종일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겹치고, 결과적으로 피로가 쌓일 것입니다. 자신의 기분 패턴에 따라 적절하게 과업을 배치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만성피로밖에 없습니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패턴이 저와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업무를 실행하고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핵심은 자기만의 하루 생체리듬을 파악해서 그에 따라 자신의 업무를 성격에 맞게 배치하는 작업이 만성피로와 결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에 대해 간단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