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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는 생체리듬에 따라 사는 삶이다

내 안의 자연법칙인 본성에 따라 사는 삶 

슬로 라이프(slow life)라는 용어를 창안해낸 이는 일본의 경제학자인 쓰지 신이치입니다. 한국계 일본인인 그는 서울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슬로 라이프> 이전에 내놓은 <슬로 이즈 뷰티풀>에서 이미 이 용어가 오용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속아서는 안 된다. 매스컴이나 대기업이 말하는 '슬로 라이프'를 떠받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패스트 이코노미 Fast Economy'다. 그리고 미국형 '여유로운 전원생활과 주말의 아웃도어 라이프'를 지탱해가는 것은 최근 떠들썩한 부시 주니어의 "향후 20년간 쉬지 않고 발전소를 짓겠다"라는 계획이다. 


그렇습니다. '슬로 라이프'는 이미 비싼 유기농 식품이나 요가 DVD를 파는데 유용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놀랍게도 매스미디어가 홍보하는 슬로 라이프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하며, 그 돈을 벌려면 더욱 내 삶을 가속화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패션잡지에 나오는 슬로 라이프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겠더라고요. 

"You have to be faster to lead a slow life!"


그런데 이 슬로 라이프(slow life)가 오용되고 남용된 데에는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definition) 부족이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쓰지 신이치는 자신의 대표작인 <슬로 라이프> 서문에서 슬로(slow)란 '친환경, ' '지속 가능한, ' '글로벌에 맞서는 로컬'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저 세 단어가 공통적으로 풍기는 내음을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내 개인의 삶 속에서 당장 저 세 가지 키워드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원칙을 세우고자 할 때, 우리는 저와 같은 희미한 개념 설명에 부족함을 느낍니다. 게다가 저같이 수입이 넉넉지 않은 프리랜서 시간강사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친환경''로컬'을 '지속 가능하게' 실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가 '글로벌과 대비되는 로컬'을 따르지 않는다면, 저는 슬로 라이프를 살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제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반쯤 어정쩡하게 슬로 라이프를 살게 되는 것일까요? 


슬로(slow)는 흔히 '느림'이라고 번역되고, 쓰지 신이치 또한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도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느림과 빠름은 '양'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가 느린 것이고, 어느 정도가 빠른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내 삶에 적용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이 때문에 슬로(slow)에 대한 엄밀한 개념 정의, 그것도 슬로 라이프에 나오는 모든 이슈들의 근간이 되는 원칙을 도출해내는 작업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우선 slow와 fast라는 개념을 정의해보겠습니다. 본디 slow는 fast에 대항해서 내세운 개념입니다. 따라서 fast의 개념이 제대로 서면, slow의 개념 또한 바로 섭니다. 저는 fast가 단순히 '빠른'이 아닌 '과(過)한' '지나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fast는 과속(過速), 과식(過食), 과로(過勞) 등의 지나침(過)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fast는 지나치게 빠르고, 지나치게 먹고, 지나치게 일하는 모든 '지나침'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하고 나서도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지나침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무엇'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뭔가 기준이 먼저 서야만, 그 기준에 비해서 지나치다는 말이 성립이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므로, 우리는 slow를 단순히 '느린'이라고 보기보다는, 지나침과 지나치지 않음을 판별할 기준으로 보는 편이 옳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저는 그 기준을 '내 안의 자연법칙 natural law'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물이며, 그 자연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자연법칙에 따른 신체리듬을 '생체리듬'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의 몸속에는 공통의 자연법칙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서로 다른 몸뚱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공통의 자연법칙에 따라 음식을 섭취해야 할 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낍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배고플 때가 다르지요.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의 생체 리듬은 크게 어긋나지 않는 공통의 주기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침형 인간' '올빼미형 인간' 등으로 나뉩니다. 

쓰지 신이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슬로 라이프>의 <분발하지 않기-장애인> 편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분발하지 않기'란 각자의 개성과 특성, 페이스에 맞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쓰인 '페이스'가 곧 '생체리듬'에 해당하겠습니다. 사실 '페이스'란 용어는 사뭇 불투명하고 다의적이지만, 개인의 생체리듬은 매우 분명한 개념입니다.  


이제 slow life는 "나만의 신체리듬을 따르는 삶"으로, 그리고 fast life는 "나만의 신체리듬을 어기고 사는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개념 정의는 지나침(過)과 모자람(不及)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습니다. 수면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7~8시간의 밤잠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6시간 미만으로 자는 것도 좋지 않지만, 10시간 이상으로 자는 것 또한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항상 마음이 조급해서 잠을 줄여서 자는 것은 나쁘지요. 하지만 나 자신의 생체리듬을 어기고 마냥 늘어져 있는 것 또한 또한 내 본성에 어긋난 삶입니다. slow life는 결코 무책임한 게으름이 아니니까요. 지나치게 침대에 오래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픕니다. 내 안의 자연법칙에 어긋나니,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네 삶이 모든 영역에서 과속(過速)화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slow라는 용어를 쓴 것입니다. slow life의 정확한 의미는 내 본성에 따라 사는 삶, 나만의 생체리듬에 따라 사는 삶, 보다 간단히 '나답게 사는 삶'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쓰지 신이치는 '슬로 라이프'는 브로큰 잉글리쉬이며, 서양에서는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라 불린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우리의 개념정의로 풀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심플'과 '미니멀'의 반대말은 과소비(過消費)입니다. slow와 simple, minimal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simple과 minimal 은 모두 (過)함을 덜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데 필요한 것 이상의 과한 것들을 덜어낸다는 뜻이지요. 결국 외부사물은 제 자신이 아니며 제 자신을 규정할 수도 없으니까요. 내 옷은 내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슬로 라이프와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가 모두 과도함에 맞서는 나다운 삶을 지칭하며, 내 생체리듬에 따라 사는 삶을 통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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