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글에서 슬로 라이프란 "나만의 생체 리듬에 따라 사는 삶"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반대로 패스트 라이프는 "나만의 생체 리듬을 어기면서 사는 삶"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현대 사회가 과속, 과로, 과식, 과음 등 주로 지나침에 치중되어 있기에, 우리는 fast에 대비되는 slow란 용어를 썼습니다. 하지만 slow는 단순히 느림이 아니라, "내게 맞는 삶의 속도"입니다. 즉 단순히 느림(slow)이 아니라, 적절한(proper), 좋은(good, 선한)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하지만 새로운 용어를 자꾸만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기존의 용어를 올바로 사용하는 편이 낫겠지요. 우리는 실질적으로 슬로 라이프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으니까요.
미니멀 라이프나 심플 라이프 또한 무조건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맞게 줄여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덧셈의 경제가 아닌 뺄셈의 경제이지요.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 몸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지방은 몸에 좋지 않다며, 지방을 빼는 것이 곧 다이어트라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20세기 내내 지방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요. 지방(fat)과 살찐(fat)는 동의어였습니다. 하지만 2020년 현재 가장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무엇입니까?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가 아닙니까? 지방을 죄악시했던 수많은 영양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식품영양학과 기타 과학을 등한시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누가 봐도 21세기 들어 영양학과 뇌과학 등의 성과는 눈부십니다. 우리는 자연법칙에 따라 운용되는 자연물이며, 자연법칙을 어기고서 살 수 없습니다. 청산가리를 먹으면 자연법칙에 따라 사망하게 되지요. 잠을 적게 자면 자연법칙에 따라 기억력이 감소하고 신진대사가 활기를 잃게 되지요. 내 안의 자연법칙을 따라 사는 삶이 슬로 라이프인 만큼,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의학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쌓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이제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그런데 내가 도대체 왜 슬로 라이프를 살아야 하는 건데? 슬로 라이프가 내게 무슨 이익이 되는데?"
제게도 이 질문만큼 소중한 것은 달리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친환경적이니 뭐니 하는 데에는 달리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환경파괴 주의자는 아닙니다만, 평소 제 관심사는 친환경이나 로컬 등이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삶 또한 제게는 추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건강을 싫어할 이는 없겠지요. 하지만 건강한 삶 자체는 제게 뭔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피로' 또는 '만성피로'만큼은 정말로 지긋지긋하게 싫었습니다. 친환경적이지 않아도 좋으니, 로컬적이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이 넘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피로만큼은 떼어내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마 현대인들 대부분이 그러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만성피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슬로 라이프와 관련된 제 유일한 관심사는 만성피로를 떼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패스트 라이프가 만성피로를 처리해줄 수 있다면, 그런 삶의 방식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운동-휴식-영양의 3대 요소를 기초로 한 올바른 삶의 방식을 숨 쉬듯 살아낼 수 있을 때에만 만성적인 피로로부터 멀어질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올바른 수면 습관, 올바른 식습관, 올바른 운동 습관 가운데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자리잡지 않으면 결국 피로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한창 만성피로로부터 멀어지는 단계입니다. 그놈이 아직도 저를 완전히 놓아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배우고 실천해나가면 언젠가 예전처럼 온종일 펄떡이는 심장과 쾌활함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제가 지닌 지식이 색다를 리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유용한 지식들을 한데 모아, 좀 더 나은 매뉴얼을 제공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