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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 홍보책자(?) 발간에 즈음하여

40대 아재 바위게가 득 될 건 없고 오해만 많을 출간을 결심한 이유

2024년 8월 19일, 고온다습한 태풍인 "종다리"의 영향으로 폭염이 지속되던 한여름 낮이었습니다. 츠쿠바 대학에서 포스트닥터(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배와 점심을 함께 한 뒤 오후 업무를 보던 중, 갑자기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가 연재하는 <온 세상이 QWER이다> 매거진 출간 제의서였습니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은 아니었지만, 저는 출간하면 매우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인 8월 23일 금요일 오후 2시, 노원역 <시드누아> 카페 2층에서 출판사 대표님과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대표님을 보낸 뒤 폭염이 쏟아지는 거리를 걸어가는데, 노원역 2번 출구 근처 즉석사진관에서 QWER의 히트곡인 <고민중독>이 터져 나왔습니다. 4월 1일에 발매된 곡이지만, 대학로나 건대 입구, 노원역 등 번화가에서는 요즘 더욱 자주 들리는 듯했습니다. 이 시각, QWER은 인천에서 <발로란트 챔피언스 서울 팬 페스트> 공연 중이겠지요.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과천 서울랜드에서 <카스쿨 페스티벌 2024>에 참가해, 물에 흠뻑 젖은 팬들과 함께 신명 나게 놀 테고요. 일요일에도 기타리스트 히나는 자신이 디자인한 티셔츠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를 방문하기 위해 판교 현대백화점을 찾을 예정인데….

그 와중에 다음 달인 9월 중 QWER이 “컴백 예정”이라는 <스타뉴스> 단독 기사가 떴습니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니, 활동을 쉰 적이 없는데 컴백한다고? 지난 몇 달 동안 QWER 동향을 소개하고 제 생각을 덧붙이며 사관(史官)을 자처 중인 저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까짓 거, 평소 하던 대로 한 번 써보지, 뭐!”


이 책은 2023년 가을에 데뷔해서 2024년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한 낭만 걸밴드에 대한 40대 아재의 덕질 기록입니다. 2024년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여태까지 덕질 활동을 돌이켜보았다는 점에서 회고록 성격을 띠고 있지만, 너무 거창하니 그냥 ‘덕질 일기’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 책의 히로인인 QWER은 2023년 10월 18일 데뷔 이후 숱한 (부당한) 논란 속에 활동 중이며, 여러 팬덤과 커뮤니티에 속한 학생들로 가득한 대학에 몸 담은 제가 이 책으로 얻을 이득은 사실상 없습니다. 출판사 대표님조차도 첫 만남에서, 글 쓰는 용기가 대단하시다고 제게 말씀하셨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의 출간을 결심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제가 QWER로 인해 얻은 기쁨과 위안에 대해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QWER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겠지요. 2023년 10월 18일에 데뷔한 4인조 밴드로서, 300만 운동 유튜버인 김계란이 기획했습니다. 트위치에서 활동 중인 마젠타와 쵸단, 400만 틱톡커인 히나(냥뇽녕냥), 끝으로 일본 걸그룹 NMB48 출신인 "경력직 신입" 이시연(시요밍) 등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Q인 쵸단(리더)은 드럼, W인 마젠타는 베이스, E인 히나는 기타와 건반, 그리고 R인 시요밍은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2023년 가을에 <디스코드>를 발표하여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몰이에 들어갔고, 후속곡인 <고민중독>은 메가히트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10월 중순에는 <내 이름 맑음>을 필두로 음악방송 3관왕 등 입이 딱 벌어지는 놀라운 대중성을 보여주며, "대형 기획사 소속 완성형 아이돌이 하는 댄스 음악"이 압도적 주류인 K-POP에서 "초소형 기획사 소속 성장형 아이돌이 하는 밴드 음악"의 반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WER의 공식 데뷔일이 10월 18일이지만, 저는 그녀들을 데뷔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QWER 소속사의 유튜브 채널은 멤버 모집을 포함한 밴드 결성 과정을 낱낱이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했거든요. 그리고 2023년 하반기부터 얕게나마 시작된 저의 QWER 덕질은 항상 제가 들인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모두가 젊게 살며 어리게 보이고자 애쓰는 시대, ‘중년의 위기’라는 표현은 이제 들어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40·50대는 엄연히 중장년이며,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이 위기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사는 거지?” “내 삶의 의미는 뭐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정말 가치 있는 존재인가?” “평소 예능 보면서 낄낄거리기는 하는데,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벅차오름, 정말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그런 깊은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최근에 있었나?” 이런 존재론적 고민은 배부른 사치가 아니며, OECD 자살률 1위 국가에 살면서 생의 의미를 상실한 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 중인 많은 한국인에게 절실한 질문입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이 계속될 때, ‘타인과의 비교 대신 자기답기 위한 노력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 또 그런 무한한 긍정의 행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벅찬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는 뮤지션’의 기운을 나눠 갖는 덕질은 중년의 위기에 대한 훌륭한 처방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덕질로 은혜 입은 중년 아재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 때문에 그녀들에게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팬 사인회에 참석한다거나 생일 카페를 연다는 등 통상적인 팬 활동은 40대 부끄럼쟁이 아재인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QWER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마침 저의 ‘묻지 마’ QWER 덕질 일기 출간 요청이 들어왔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가수를 향한 팬의 트리뷰트(tribute)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둘째, 중장년 "남성"들에게 아이돌 덕질이라는 취미활동을 홍보할 찬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덕질 경험으로 볼 때, 여성들은 (남친이나 남편의 경우를 제외한) 남성들의 아이돌 덕질에 많이 관대해진 편입니다. 왜냐하면 20대에서 80대까지, BTS에서 임영웅까지, 이제 대한민국 여성은 노소를 불문하고 "덕밍아웃(아이돌 덕질을 공개적으로 밝힘)"에 거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한민국의 반을 차지하는 남성, 그 가운데 인구수가 압도적인 중장년 남성들은 "아이돌 덕질"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이 먹고 그게 무슨…다 큰 어른의 취미는 골프지"라고 속삭이는 ‘자율적으로 입법한 자경단’이 내 진정한 취향을 가로막고 있지요. 심지어 불순하게 쳐다보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경우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돌에 관심이 차고 넘치는데도 심리적 장벽으로 인해 취미를 즐기지 못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에 저는 아이돌 덕질을 함께 할 중년 남성 동지들의 용기를 북돋우고자 이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QWER 사랑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 뒤, 제 주변에도 아이돌 덕질 취미를 고백하는 늙수그레한 남성 동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QWER이 아닌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요아정 팬이든 양념통닭 팬이든, 함께 즐거이 살찌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원유, 이소담, 윤혜은 등 아이돌 덕질 경험을 책으로 내는 30·40대 여성 작가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반면에 남성 작가가 쓴 덕질 고백 에세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40대 아재인 제가 민망함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알고 보면 수줍은 남성들의 아이돌 덕밍아웃을 부추겨보려 합니다. 해학과 풍자가 가득했던 90년대 딴지일보의 병맛 감성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여성의 섬세한 덕질과는 또 다른 감성의 구수한 아재 덕질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셋째, 제게 무한한 소스와 에너지를 제공해 준 QWER 팬덤 바위게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40대 동양철학자이며, "시요밍, 엉뚱해서 너무 사랑스러워요!" "쵸단, 드럼 치면서 입술 깨무는거 귀여워요!" 등의 이유로 그녀들을 응원하지는 않습니다(물론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말이죠). 왜냐하면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는 이유만으로는 다른 아이돌이 아닌 QWER의 팬이 되어야 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0대 아재가 QWER을 좋아하는 까닭을 글로 남기면, 바위게 분들이 "아, 우리 QWER을 남녀노소가 다 사랑하는 데에는 정말로 다양한 이유가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QWER이 좋아서 정보를 찾으러 온라인을 떠돌다 보면, 정말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QWER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호기심 하나는 남들 못지않은 저이기에, "서로 다르게 즐기는 방식"을 접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기쁨을 느껴 행복합니다. 그래서 같은 맥락으로, 대학에서 철학과 행복을 강의하는 사람이 QWER을 애정하는 이유와 방식을 바위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남녀노소나 직업이라는 차이는 "QWER 팬"이라는 공통의 취미 앞에서 무의미하니까요. 취미 생활이야말로 ‘뇌를 떼어놓고’ 함께 즐기는 것이지요! 물론 제대로 덕질하려면 생각보다 뇌가 많이 필요하지만 말이죠.  


넷째,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와 힙합 걸그룹 영파씨, 성장형 걸밴드 QWER 등이 데뷔한 2023년은 훗날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로 꼽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형 기획사 댄스 아이돌 위주로 딱딱하게 굳어진 케이팝 시장에 미세하게나마 금이 가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런 흐름에 동참하여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은 제게 보람이 있고 의미도 있는 작업입니다.

게다가 케이팝이나 QWER의 인기 원인에 대한 기존의 분석 기사들은 아쉬운 점들이 많았습니다.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가 내린 여러 결론은 피와 살로 만들어진 내부자들의 살아 있는 감정과 경험이 빠져 있어,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내부자의 입장에서 바위게들이 QWER에게 푹 빠진 이유를 적어서 남기려고 합니다. 바위게 또한 QWER 역사의 일부니까요. 훗날 누군가가 QWER이나 2020년대 케이팝에 대한 책을 쓰고자 할 때,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각주를 달면서 QWER의 행적을 처음부터 자세히 써 내려가는 제 덕질 회고록은 이 때문에 여타 덕질 에세이와 구분되기도 합니다.


순수하게 QWER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결국 이렇게 책 내려고 그렇게 글을 많이 썼냐?'는 오해를 받기 싫어 도중에 출간을 망설였을 정도로, 쑥스러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을 핑계로, 이미 나온 책을 홍보하지 않는 것 또한 도리가 아니더군요. 아무쪼록 학교나 공공 도서관, 직장 라이브러리 등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장소에 이 책이 놓일 수만 있다면, 이 책의 본래 목적인 "QWER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데뷔 2년 차에 헌정 도서가 나온 아이돌이 있다고?"라는 입소문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책임은 제게 있으며 QWER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을 끝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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