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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영 Oct 19. 2017

내면의 끝

피터 스완슨_죽여 마땅한 사람들

"사람들은 생명이 존엄하다고 호들갑 떨지만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아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한참을 책에 빠져 책장을 넘기는 그 밑바닥에는 공감이 주는 엄청난 몰입감이 있다.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만 같은 세상, 나와 닮은 인물, 그러나 현실의 나라면 결코 택하지 않을 선택을 이어가는 반전 속에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마음 한편에 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때를 완전히 잊는 것. 딱히 책의 한 귀퉁이를 접을 만큼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없더라도, 스토리의 힘 만으로 충분히 그런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 쓰인 글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런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질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특정 어휘에 예상치 못한 감정이 휘몰아치기도 하고, 스토리를 따라가다 너무 감동적인 나머지 눈물이며 콧물이며 할 것 없이 한바탕 쏟아 내기도 한다.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구절에 밑줄을 벅벅 그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낡은 노트를 열어 똑같이 따라 적으며 나를 돌아보고, 책 속 이야기와는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내 일상에 더없이 완벽한 위로를 얻는다. 결국 책은 '나의 존재 증명'을 위해, 그리고 나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이어가기에 이상적인 수단인 셈이다. 


책을 읽다 정체성의 문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어찌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물음들이 어느 순간 아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주인공 릴리의 성숙하지 않은 몸을 찬찬히 훑는 쳇의 시선이 소름 끼치게 싫을 때, 주말마다 시간을 함께 보내던 남자 친구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알게 되었을 때, 나 역시 마음으로 릴리의 복수를 힘껏 응원했더랬다. 


릴리는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처럼 추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대의 여성 사이코패스다. 그럼에도 우리가 릴리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살인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고, 우리 마음속에도 죽여 마땅한 사람이 하나쯤 있기 때문이다. 릴리는 우리의 그런 내밀하고 어두운 욕망을 대신 실행하는 인물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발췌


그러나 마음으로 품은 것만으로도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십상인 끔찍한 상상들이 릴리의 손으로 소설 속 현실이 되었을 때, 그 놀라움은 나 자신을 향한다. 내가 응원한 것이 결국 살인이었을까? 한 번도 다다르지 못한 스스로의 내면이 더욱 심연으로 빠져들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아주 낯선 느낌에 사로잡힌다. 내 안에도 이토록 내밀하고 어두운 욕망이 있었던가? 


만약 일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테드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됐을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는 틀림없이 사귀었을 테지만 그 관계가 얼마나 오래갔을까? 난 그에게 모든 것을 말했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그와 공유했을까? 서로를 잘 안다는 것이 관계를 더 돈독히 했을까? 아니면 결국 그 때문에 헤어졌을까? 아마도 헤어졌을 것이다. 한동안은 내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을 테지만.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의도적으로 비밀에 부치기도 하고, 불쑥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순간을 애써 참아가며 타인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것이 무조건 하나 이상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의식조차 하지 못하면서, 나도 모르게 알려지는 것을 거부하게 되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한다. 아마도 나의 결핍과 만나는 그 경계 어딘가에 있는 것들일 것이다. 


문득 그 심연, 내면의 끝에 닿고 싶어 졌다. 물론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기필코 그것을 끄집어 내야만 삶이 정리될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불필요한 완벽주의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팔자 좋은 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목적한 바가 저마다 다르며, 무엇을 하든 내가 지켜내야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므로, 그러므로 언젠가는 그 내면의 끝을 닿기를, 그리고 담담히 받아들일 마음의 깊이와 넓이가 생기기를 소망한다. 


2017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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