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 인종차별적 개소리에 대응했던 제 경험에 이어, 오늘은 2) 개소리의 주체가 아직 인간이 덜 된 경우를 다뤄볼까 합니다. 대응방식은 1)에 대한 것과 동일합니다. 1) 무시 혹은 2) 내가 물 수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주지 시키기 (혹은 물어버리기)입니다.
** 제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이지만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으며 실명을 유추할 수 있는 관련 정보는 가공되었음을 알립니다 ㅎㅎ
첫 번째 에피소드는 교수 B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자는 참으로 루머가 많았는데요. 알고 보니 근거 없는 루머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성토 대회였다는 점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단 그와 같은 국가 출신 학생들을 착취하거나 마구 대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 가려 대하는 인간치고 멀쩡한 놈 없는데, 사실 이때부터 그냥 걸러내 버렸어야 했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교수 B와 엮일 일이 계속 있었지만 저에게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그의 이상한 인간성을 알아차린 순간은 숱하게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의 논문 커미티에 제4의 멤버로 합류했던 그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보통은 3명의 커미티 멤버면 조건을 충족합니다만, 특별히 필요할 경우에는 제4의 멤버를 두기도 합니다). 커미티 멤버가 모두 모인 미팅 자리에서 그 학생에게 대뜸 "이 주제로는 너에게 미래가 없다", "이런 연구로는 top universities에 자리 잡을 수 없다"는 둥, 막말을 하기에 이르렀죠. 언어나 화법의 문제였을까요. 아니오. 그는 세상을 성공과 실패, 능력과 무능력, 될 놈과 안 될 놈, 등 이분법적으로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편협한 시각에 기함한 학생의 지도교수는 마침내 교수 B를 커미티에서 제외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악담을 퍼부은 학생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졸업 잘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그놈의' top 1-2에 드는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미래가 있네요.
그 외에도 공저에 참여시킨 학생이 일한 성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저에서 빼겠다고 협박했다가, 학과 차원으로 문제가 보고 되었던 적도 있고요 (학생의 공저는 유지되었습니다만, 나중에 그 학생은 박사 과정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만둔 이유가 반드시 교수 B는 아닐 겁니다만, 교수 B랑 친하게 지내면서 사적으로 착취당한 경험이 많더군요). 또 다른 학생에게는 추천서를 빌미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한 적도 있습니다. 뭐, "progress"가 잘 안 보여서 좋은 내용의 추천서는 안 나갈 거라나요 (그 학생은 당시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중이었고, 그 학생의 지도교수는 "progress"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기 나름의 '학부 학생을 잘 다루는 법' 이랍시고 알려주는 tip이 가관입니다. 앞에서는 좋은 말로 구워삶고 뒤에서는 "멍청한 애들은 답이 없다"며 무시하면 된답니다.
저는 교수 B의 수업 조교를 몇 번 맡았고, 그는 제 종합시험 paper examiner로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종합시험에 examiner로 참여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논문 커미티 멤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은 절차상 별개의 문제라서요). 나름 저에게 친밀감을 느꼈는지 헛짓거리는 하지 않았지만, 쎄한 기운을 뿜어내는 말은 그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오곤 했죠. 방법론 수업의 커리큘럼에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다고 하자,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내 수업에서 top 1-2 안에 들었던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수업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라고요. 다수의 어려움은 당연하고, 소수의 '능력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그것이 진정한 문제가 되나 봅니다. 뭐, 그 말이 맞는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그건 '수준별 교육'의 문제이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자격 조건' 문제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가르치는 지위에 있는 인간이, 똘똘한 스머프만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이 저에겐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교수 B는 학과 내에서도 supervising을 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본인이 연구하고 논문을 게재하고 책 쓰기에 바쁘다는 이유만으로요. 실제로 학부생 중에서 졸업 논문을 써야 하거나, 석사/박사생들이 논문 지도를 부탁했다가 대차게 거절당한 경우가 허다하게 귀에 들어옵니다. 박사생의 경우에는 커미티 멤버가 여럿 되니, 꼭 그 사람 아니라도 대안을 구할 방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학부생이나 석사생은 supervisor 한 명에게 의존하는 모양새이다 보니, 교수 B가 거절했을 때 곤란해지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주제가 XX이고 교수 B가 XX를 다루기에 그에게 찾아가는 경우이지요. 하지만, '나는 바쁘고 네 논문 봐줄 여력이 없어서 안 되겠다'라고 하면, XX를 하는 다른 교수를 찾아 나서야 할 텐데 우리 과에서는 대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학생은 황당해지는 것과 동시에 '내가 부족해서 이 교수가 나를 거절하나'라는 쓸데없는 자책의식에 사로잡힙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PhD candidate이 되기 위해 proposal defense를 준비하던 시점이었죠. 이 때는 공식적으로 지도교수와 커미티 멤버 모두를 확정 짓는 단계입니다. 저에게는 그나마 뻘 짓 안 하고, 자기가 먼저 제 논문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했으며, 종합시험 paper examiner로도 활동했기에, 저도 그의 더러운 인간성에 잠시 눈을 감았나 봅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바뀌지 않죠. 제 지도교수가 이메일로 "너굴이는 proposal 관련해서 이케저케 하고 있는데, 너 아직 관심 있니?"라고 물었을 때, "응, 나한테 계속 알려줘"라고 대답한 게 불과 proposal defense 한 달 반 전이었습니다. 얼마 뒤, 공식적으로 커미티 멤버를 맡아주십사 이메일을 보냈더니, "나 맡아야 할 학생이 많아서 못 하겠어"라는 것 아니겠어요? 당시 교수 B는 co-supervising 하는 박사생 1명과 커미티 멤버로 참여한 박사생 1명, 그리고 석사생 1명, 이렇게 맡고 있었습니다. 많게는 5-7명의 박사생과 석사생을 지도하는 교수들도 있는 마당에, "너무 많은 학생" 운운하기에는 모냥새 빠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하기 싫다고 할 것이지... 아니면 내 주제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했나...?
하기 싫은 사람 억지로 끌어올 수 있나요. 어차피 인간성이 찝찝했는데, 알아서 잘 걸러지는구나 싶어서 저도 두 번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쉽다, 같이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안녕."이라는 이메일을 보냈죠. 저는 그날 사람 좋은 제 지도교수가 화내는 걸 처음 봤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며, 더 좋은 사람으로 구할 거라고. 그리고 이 사건을 학과 교수회의에 회부하고 학과 Head에게 보고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지도교수가 나서지 않았으면 제가 먼저 보고하려고 했었거든요.
교수회의 미팅 결과와 Head의 반응은 제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도교수가 넌지시 알려주길, 교수 B에게 "경고"가 나갔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학과의 대응방식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깟 '경고'야 말로 그저 말 뿐인 것을.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이랑 바람이 나서 결혼하거나 학생의 아이디어를 착취하는 동료 교수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학생들에게만 성과를 강요하는 그 풍토 - 정말로 온갖 정이 다 떨어졌거든요. 그 이후 정말 뻔뻔하게도 교수 B는 저에게 자기 연구와 관련된 번역을 도와줄 수 있냐는 연락을 취해옵니다. 페이는 나갈 거라며. 대충 훑어보니 정말 간단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해주기는 했습니다. 대신, 다음 학기부터는 내가 바쁠 예정이라 이런 것 못 해준다, 고 말했죠. 참고로 교수 B는 학과 내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도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대단히 유명하여 service를 허다하게 거절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교수가 되면 연구 외에도 학생 지도, 행정 처리 및 각종 잡다한 일을 맡아 해야 하거든요...). 이를 증명하듯, 2달 뒤 저에게 또 연락을 해왔습니다. "너굴, 이거 좀 도와줘. 근데 좀 급해."라고요. 저도 급하게 답을 썼습니다. "나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니? 지금 바빠서 널 계속 도와주기가 어려워."라고요. 그까짓 일,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 도와주는 거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하기가 싫었어요. 자기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직위상 요구되는 책임도 다하지 않겠다면서 자기 바쁜 일은 빨리 처리되어야 하는 그 심보, 이해할 수 없었어요.
걔는 알까요. 자기에 대한 성토 대회가 한국의 어느 플랫폼에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단 사실을. 모르든 알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한글을 읽을 능력도 없는 사람이고요. 저는 오히려 교수 B에게 감사한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본색을 드러내어 알아서 떨어져 나가준 것을 (제가 떼어내야 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겠습니까). 또한 그는 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험하게 굴어도 나는 저렇게 되지 말자고 늘 다짐합니다. 인생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아는데 근시안적 관점으로 성과만 목 놓아 부르며 살다가는 외로운 독거노인 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주었죠. 사람 보는 눈 다 똑같습니다. 언젠가부터 그가 각종 연구 커뮤니티에서 소외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를 따뜻하게 품던 연로한 교수들도 등 돌린다는 소문이 파다하고요. 어차피 제 뇌피셜이니, 교수 B의 생각을 유추해 볼까요. 세상은 넓고 새로운 피는 계속 수혈될 테니 '똘똘이 스머프'만 자기 주변에 남아서 논문만 계속 써낼 수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수많은 정신과 전문의들, 상담가들도 말하잖아요. '촉'을 무시하지 말라고. 쎄한 느낌은 내 인생을 통틀어 나의 오감과 경험이 빚어낸 빅 데이터라고. 교수 B가 커미티에 합류한다 해도 어딘가 모르게 대비책을 준비해야할 것만 같은 저의 '촉'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먼저 본색을 일찍 드러내준 것에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물어버리는' 전략에 더 부합하는데, 여기다 같이 풀자니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두 편으로 나눠서 다음주에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