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드디어 개소리에 대응하는 법 마지막 편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개소리의 주체에 큰 하자가 있었던 경우 중 두 번째 에피소드를 다루겠습니다. 뭐,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은인일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저와 마주친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것이겠죠.
두 번째 에피소드는 교수 D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수업을 들었을 때 크게 이상한 점을 눈치채진 못했는데, 이후 학과에서 여러 경우를 보다 보니 이 교수도 사회성이 약간 (혹은 많이) 결여된 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원래, 어디에서든 윗사람보다는 동료와 아랫사람의 평가가 칼같이 정확한 법이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학생이 '아랫사람'인 격인데, 그런 '아랫사람'들이 교수 D를 하나같이 "awkward" 하다고 평가했지만, 뭐 모든 사람이 싹싹하고 밝을 필요는 없으니 그런가 보다 했죠. 하지만 이 사람의 보직이 바뀌더니 역시 본색을 드러냅니다. 본색이라기보다는,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따라 맡은 바 '책임'을 다 한 것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평소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인간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데이터에 목매다 번아웃이 왔던 봄/여름이었어요. 현명한 상담가가 신속히 개입하여 제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었지만, 학교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아프면 medical leave를 신청하고 아예 학업을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지만, 제 상태는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썩 좋지도 않았다는 점이었죠. 그래도 이곳은 복지 제도가 꽤 괜찮은 캐나다이지요.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Centre A라고 하겠습니다)가 학교 내에 있습니다. 저도 그걸 잘 활용해서, 그 해 여름은 reduced working capacity, 즉, 원래 해야 하는 시간의 절반 혹은 그 이하로 일을 해도 full-time student로 인정받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담당하는 Advisor J와 다른 직원 E가 행정과정을 도맡아 주었습니다 (이 이름을 잘 기억해 주세요 ㅎㅎ).
여름의 낮이 서서히 짧아지려는 무렵부터 저는 훨씬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학업의 불씨를 댕길 수 있었습니다만, 제가 논문 완성을 위해 예상했던 타임라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여름 내 40% 정도 줄어든 학업량을 소화했다면, 그에 준하는 스케줄 재설정이 필요할 테니까요.
아참, 새 학기가 시작되는 academic year부터는 프로그램 연장 신청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특정 연차를 넘으면 대학원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부서에 매년 연장 신청을 해야 하거든요. 이상하게 저희 학과는 이 과정에서 매우 빳빳하고 고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제 선배들이 이 연장신청을 두고 늘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다른 학과에 재학 중인 제 짝꿍이나 제 친구들은 큰 문제없이 연장 승인을 받는 것 아니겠어요? 심한 경우에는 10년 동안 박사과정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연장 승인을 받지 못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학원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사무실에서는 지도교수와 학과의 승인이 있으면 무조건 예스를 외칩니다. 학과 역시 지도교수가 오케이 사인을 날리면 군말 없이 그저 서류를 넘기고요. 그 말인즉슨, 정치학과에서만 유난히 '몇 년 안에 졸업해야 잡 마켓에서 승산이 있니 없니'를 들먹이며 연장신청할 때마다 '일 년 안에 마치라느니', '구체적인 계획서를 적어내라느니', 고깝게 굴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제 지도교수에게 억하 심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교수 D와 그의 전임자가 대학원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보직을 맡았던 지난 7-8년 동안, 제 지도교수의 학생들은 연장신청을 할 때마다 약간의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제 지도교수의 seniority가 더 높은데도 말이죠).
저도 들은 바가 많으니 각오는 했지만, 사실 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첫 연장 신청이었고 (보통은 처음부터 드잡이를 하진 않습니다. 2-3번째 연장신청을 할 때면 학과가 입에 사시미칼을 물고 등장하죠), 여름을 보내고 더 단단해진 저는 제가 정한 기한 내에 졸업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여름 내 줄어든 학업량을 승인받았으니, 첫 연장 신청에 잡음이 생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교수 D가 개소리를 늘어놓기 전까지는요.
참고로 제 지도교수 - 사람 좋은 판다곰 선생 - 는 갈등이 생기는 상황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매우 꺼리는 사람입니다 (본인은 부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년간 그를 관찰하고 그를 잘 다룰(?) 줄 알게 된 사람으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기똥차게 잘 얻어내는 편이지만, 정말로 목소리를 높여서 싸워야 할 때 '세상사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철학이 있는 편이에요. 마치 사람의 좋은 면만 보게끔 태어나면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선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저요?
저도 갈등이나 싸움이 생기는 상황 자체를 싫어합니다. 저 역시 목소리 높아지는 상황이 오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요. 그렇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할 말 똑바로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것을 몇 곱절 더 혐오합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싫지만, 필요할 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꺼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니, 참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그래봤자 살면서 목소리 높인 적 별로 없고, 나이 들면서 쓸데없이 눈에 띄는 일이 딱히 좋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 조용히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저의 마음가짐을 박살 내는 이메일이 하나 있었으니, 때는 어느 여름 일요일 밤.
지도교수 판다곰 선생이 교수 D와 면담을 했다며, 이딴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연장신청과 관련해서 우리가 계획했던 1년 반을 제안했는데, 안 된대. 그냥 1년 연장으로 이번엔 하고, 다음 해에 반년 더 연장하래. 그리고 다음에 연장신청할 때 "좋은 성과"와 "의사 소견서"가 있어야 된대. 이것조차 힘들면, 자퇴(withdrawal)하는 걸 고려해 보래. 어차피 할 거면 늦기 전에 하는 게 나으니까... 실제로 걔가 최근에 8년 차 박사생 하나를 자퇴시키긴 했어... 그래도 너 알지? 내가 너 믿고, 너 지금 잘하고 있고, 어쩌고 [중략]"
그리고 판다곰 선생이 눈치 없이 제게 그대로 포워드해 준 교수 D의 말은 가관이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1/ 일단 1년 연장 신청을 '거짓말(dishonest timeline)'로 하고, 2/ 다음 연장 신청까지 성과내는 걸로 패닉이 오거나 건강 문제가 생긴다면 그 학생이 계속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 크나큰 의구심을 자아낼 것 -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맥락을 보건대 지도교수가 말한 '자퇴'와 두 번째 연장 신청을 위한 '의사소견서'는 아마도 대면 면담에서 나왔을 것이고, 기록이 남는 이메일에서는 그나마 단어를 고른게 저 모양일겁니다.
또 다른 한 주를 잘 준비하기 위해 밥 잘 먹고 쉬고 있던 어느 일요일. 정말 돌멩이로 눈탱이를 맞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대체 8년 차 박사생과 거리가 100km 정도는 멀리 떨어진 저의 첫 연장신청에 '자퇴' 이야기가 왜 나와야 하는지, 우리 과 다른 애들은 힘들긴 해도 여하간 2-3번째 연장신청까지 받아내던데 혹시 나를 3번째 연장신청자로 착각한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또한 본인의 숱한 학생들이 이 연장신청으로 스트레스받는 걸 겪었으면서 그 대화를 굳이 나에게 보여주는 지도교수의 발랄함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름 내 줄어든 학업량을 소화했고, 연장 신청은 매우 합당한 선택인데, 그럼 원래 계획대로 모든 연구를 진행했길 기대하는 것인지. 아님 교수 D가 제 지도교수에게 앙심을 품고 다음 타깃을 나로 잡은 것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더군요. 늘 순하게 웃는 제 짝꿍도 이 이메일을 보고는 입에서 불을 뿜어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에게 답장을 썼죠.
"알겠는데, 나는 교수 D가 이 시점에서 자퇴를 운운하는 게 큰 위협으로 느껴져... [중략] 나, Centre A의 Advisor J랑 이야기 좀 해봐도 될까? 걔들이 여름 학기 동안 줄어든 학업량도 승인해 주고 학과와의 의사소통을 담당했으니, 걔네랑 의논하고 싶어."
마음 같아서는, "지금 나한테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착하고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메일을 보낸거냐!!"라고 불을 토하고 싶지만, 저는 판다곰 선생을 너무 잘 아는걸요. 솔직히 그날,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만, 이렇게 된 마당에 저는 그의 예전 학생들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다 가용해서 내가 합당한 처사를 받는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저는 Centre A의 Advisor J와 저의 reduced working capacity를 처리해 준 직원 E에게 지도교수의 이메일을 포워드 합니다. 그리고 설명했습니다. 1/ 학과에서 대학원 프로그램 관리를 담당하는 교수 D의 '자퇴'를 운운하는 말이 위협으로 들리고, 2/ 왜 내가 거짓말 (dishonest timeline)로 연장 신청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정말 박사 논문을 마치기 위해 1년 반은 필요하다고.
이때만 해도, 저는 직원 E가 Centre A에 소속된 또 다른 어드바이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득달같이 답변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어요.
직원 E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런, 그런 이메일을 받아서 놀랐겠구나. 아무래도 큰 맥락이 빠져있는 것 같은데, 내가 직접 너네 학과랑 이야기해도 될까?
일단 내가 두 가지만 말을 할게. 우리는 (이때 We라고 할 때 알았어야 했습니다) 한 번에 최대 1년만 연장 승인을 해줘. 그래서 이번에는 1년만 하는 게 맞아. 하지만 우리는 절. 대. 학생들이 거짓말로 연장신청 하는 걸 원치 않아. 네가 1년 반이 필요하면 이번에도 그렇게 적고, 다음에 다시 반년 연장 신청할 때도 똑같이 말하면 돼. 이번엔 1년으로 적었다가, 다음 신청 때 또 반년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너의 '성과'에 의구심을 품게 돼.
두 번째로, 다음 연장신청을 할 때 네가 의사 소견서를 낼 필요가 전혀 없어. 우리가 연장승인을 할 때는 지도교수의 판단에 입각해서 할 뿐이고, 의사 소견서나 기타 참작할 요소는 때에 따라 달라.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의사소견서를 학생인 네가 내거나 신경 써야 할 의무가 전혀 없어.
자, 이제 여기서부터 내가 너네 학과 교수 D랑 지도교수랑 이야기할게. "
와우. 직원 E는 신속 정확했고 간결 명료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수 D에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되고, Centre A를 통해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죠. 감탄하면서 직원 E의 이메일을 다시 보고 있는데, 아니... 뭔가가 눈에 걸리네요...? 그의... signature (이메일 하단에 쓰는 성명, 소속을 밝히는 부분)가 좀 이상합니다.
아하하, 와우.
직원 E는 Centre A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교 전체에서 대학원의 모든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법조인이었어요... 대학원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부서 B라고 하겠습니다), 모든 대학원 프로그램의 입학, 학사, 졸업, 연장신청, 등등을 담당하는 상위 기관입니다. 전혀 뜻한 바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는 우리 학과의 교수가 학생에게 거짓말로 연장 신청하라는 '비리'의 현장을 상위기관인 부서 B에게 고발해 버린 셈입니다. 아하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하지만, 교수D가 계속 저따위로 나오면 부서 B든 어디든 알릴 생각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원 E는 어떻게 제 이메일에 있을 수 있었냐.
지난여름 줄어든 학업량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1/ 의사소견서가 필요했으니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Centre A와 Advisor J가 개입했고요, 2/ 줄어든 학업량은 대학원 학사와 관련된 부분이니 상위기관인 부서 B와 직원 E가 개입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단순하게 직원 E를 Centre A 사람으로 오해하고 전체 이메일을 보낸 것이지만, 사실상 부서 B에 투서를 한 셈이 되었네요.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왜 '우리'라고 계속 말했는지. 저도 의아했거든요. Centre A는 대학원 학사에 일절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의 규칙에 대해 말할 계제가 아니거든요. 직원 E 입장에서는 '우리'가 맞습니다. 부서 B의 규칙이자 모든 대학원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규정에 관한 설명이니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맞지요. 하하.
직원 E는 매우 신속한 업데이트를 해주었습니다.
"느네과 교수 D에게 우리의 방침을 잘 전달했어. 거짓 연장 신청은 안 해도 돼. 잘 해결되길 바라지만, 혹시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연락해."
지도교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는 이미 직원 E의 이메일을 받았을 겁니다).
처음 교수 D가 말도 안 되는 '자퇴' 운운했을 때는 한 발짝 빠져있는 모양새를 취하더니, 제가 더 큰 지원군(?)을 얻어오니까 각종 찬사가 날아듭니다 (그는 미사여구와 감탄사를 매우 많이 사용합니다). 자기는 언제나 나를 지지할 거고, 부서 B의 지지를 얻어서 다행이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봤자, 약간은 비겁한 모양새를 잠깐이나마 보인 것에 대해 제 꽁한 마음이 아직 안 풀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3-4번 정도 이 사건에 대해 더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게 됩니다. 그 중 한국의 석사 지도교수님과 판다곰 지도교수와 저, 이렇게 셋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우리 학과의 불합리에 대해 성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석사 지도교수님과 판다곰은 박사 동문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약간은 어벌쩡한 표정을 짓던 판다곰은 (그 나름의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오는 표정입니다), 그날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걱정 마. 내가 만약 진짜 화가 났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아이구, 그러셨세여, 라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저 웃어 보였습니다. 이전에도 저를 보며 쌓아온 데이터가 있겠지만, 교수 D를 처리(?)한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제가 개소리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차린 모양새였습니다. 심지어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졌던 그의 지도학생 졸업 축하자리에서 저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묻습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가득 담으면서요.
"교수 D랑 대결에서 너한테 몇 점 줄 거야?? 으흐흐"
".... 120.. 점..?"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렇게 많은데, 뜬금없이 저에게 몇 점 줄 거냐고 묻는 그의 해맑음을 보면서 그가 좋아할 만한 답을 해줬습니다. 식당은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떠나갈 뻔했고요.
저의 느낌적 느낌입니다만 그 사건 이후, 그의 부인도 (저는 판다곰 교수의 집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고 캐나다, 일본, 대만에서 그의 부인과 종종 만났습니다. 우리는 꽤 친합니다.) 언젠가 저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강하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아무래도 교수 D 사건이 이 부부가 저를 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저는 부서 B가 조언해 준 대로 1년 연장신청을 했고요, 하면서 1년 반이 필요하다고 명시했습니다. 잘 처리된 줄 알았는데, 학과에서는 교수 D의 사인만 받으면 되는 그 간단한 것을 누락시켜서, 학기 시작 전 문제가 꼬일 뻔했지만 제가 또 학과 드잡이를 해서 바로 잡았습니다 (학교 내 기숙사에서 살고 있기에, 연장 신청이 잘 되어야 다음 학기 학생 신분이 유지되고 기숙사 거주 자격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이 바보들이 제가 여름에 줄어든 학업량 신청한 서류를 그때서야 언급하더라고요. 교수 D가 서명했다는 서류는 이상한 서류에 사인이 되어있었고 심지어 서명 날짜도 틀렸습니다. 그가 저에게 앙심을 품고 일을 거지같이 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습니다만, 짝꿍은 자꾸 이럽니다.
"걔, 네 이름이라면 치를 떠는 거 아냐? 난 걔가 부서 B에 불려 가서 드잡이 당한거라면 좋겠어, 흐흐".
저는 그 다음 해에도 아무 문제 없이 연장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학과 내에서 대학원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교수가 바뀌었고요, 그는 매우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라 걱정을 1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연장신청할 때 적어 냈던 타임라인 그대로 + 마지막 박사논문 디펜스를 위한 행정절차에 소요되는 시기(통상적으로 4-5개월 걸립니다)만 더해서 신청했습니다. 저는 제가 한 약속을 지켰고, 심지어 부서 B에서 연장 승인해 준 기간보다 5개월 더 빨리 디펜스를 마쳤습니다.
학과에서 발생하는 개소리에 대응하면서 저도 모르게 학과와 학자를 향한 적대적인 시각이 생겼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내 미래의 동료가 된다니, 온갖 정이 다 떨어졌어요. 그게 어쩌면 학계에 남고 싶지 않다는 제 선호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일지도 몰라요.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부정적인 눈초리로 학계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방대한 우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 긴 세월 동안 훌륭한 사람도 많이 만났고, 제 지도교수인 판다곰 선생처럼 오늘의 제가 존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아끼지 않고 도와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은 그 사람이 겪는 경험의 영향을 받지요. "세상은 또라이로 가득찼고, 학계는 고성능 또라이의 집합소"라고 말하시던 나의 선생님. 그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고, 저 또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교수 D나 교수 B, 교수 P와 같은 고성능 또라이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의 무지 혹은 이기적인 태도로 타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타인에게 친절하고 싶다는 마음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부당한 일에 입을 닫아야 할 정도로 착해빠진 호구도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놈의 잡마켓이 힘들고 어쩌고 publication이 어쩌고 저쩌고, 우리 모두 이 거대한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해 떠드는 "배운 자"들의 눈과 입이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박사과정이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판다곰 선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박사과정 첫 해 첫 학기에 그가 웃으며 건넸던 말이었어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에서야 겨우 인지했습니다. 박사과정도 인생의 한 부분이니 응당 불확실성으로 가득합니다. 잘난 박사모 쓴다고 해서 다음 직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아 학계에 남는다고 해도 끝없는 자기 증명의 길을 걸어야 하지요. 그때는 더 잔혹한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학생일 때는 아직 배우는 단계라 어느 정도 미숙함이 용인되지만, '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면 더 이상 미숙함을 귀엽게 봐주지 않거든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찌감치 직장을 갖고 돈을 벌고 가정을 일구는 타임라인보다 한참 뒤처진 상태에서 겨우 첫 '직장'을 갖게 될 거고요. 경제적 보상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긴 세월 동안 무수히 마주해야 하는 자기 불신과 자기 검열의 시간은 사람의 마조히스트적 성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듭니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수익률이 낮은 투자상품을 덥석 문다는 것은 현저히 비상식적이지 않나요. 박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변태적 기질이 충만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내가 그 변태적 기질이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본인이 원해서 변태가 되겠다는데, 자발적으로 고통을 감수해서 뭔가를 해 보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힘듦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요.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학계라는 피라미드에서 하층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불신과 자기검열로 마음이 고달픈 그들이, 사람으로 인해 쓰지 않아도 될 시간과 에너지를 추가로 쓰며 고통받는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