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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Jun 17. 2024

1:1 수영 강습을 받았습니다

강사는 무려 캐나다 국가대표였습죠 

수영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수영 실력은 그저 머글에 불과하여 언젠가 마법사가 되길 꿈꾸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도 30년이 지나면 리모델링 정도는 하던데, 사람의 몸은 그게 왜 안 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30년 이상 쉼 없이 공장 가동을 했더니 내 몸도 리모델링을 요구하는 걸까. 20대에 하던 기억으로 운동을 해대다가 오히려 몸이 상하는 경험이 늘다 보니, 인정하기는 싫지만 노화가 오고 있음을 체감한다. 


고관절 문제로 근 2년 동안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도통 시원한 진단을 못 듣던 가운데, 필라테스 선생님의 추천으로 새로운 피지오 테라피스트를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Rob. 고관절 MRI를 찍기도 전에 문제의 원인이 단순히 근육이 아닌 보다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짚어내던, 실력이 훌륭한 아저씨였다. 나중에 MRI 결과를 보고 알아낸 사실이지만 정말 단순 근육통은 아니었다. 고관절 문제를 잘 진단해 준 Rob에게 무한 신뢰가 생겨서 뻣뻣한 목도 맡기고, 악관절도 맡기고, 이곳저곳 물건 수리하듯 자주 맡기러 다닌다.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며 달리기 하는 도시, 아이를 낳고도 유모차를 끌고 달리기를 하는 도시답게, 여기서 피지오 클리닉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운동은 뭘 하니"라는 질문부터 받을 확률이 높다. 내가 아시아 여성들의 평균 운동량을 상회한다고 조심스럽게 정신승리해 보지만 (객관적 데이터 없음), 지금껏 만난 피지오 테라피스트들은 모두 1/전직 운동선수였거나, 2/운동선수 코칭 스탭이었거나, 3/본인이 운동을 죽을 때까지 할 사람들인 경우였기에, 그들 앞에서 운동으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Rob도 그중에 한 명이었는데,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provincial level (한국으로 치면 '도' 정도는 되겠다) 수영 선수였다. 그가 말하길, 자신은 엘리트 수영선수가 아니라 썩 대단하진 않았지만 훈련할 때에는 하루의 반나절 동안 물에 잠겨 있었다고 했다. 와우. 


취미를 취미로 유지했을 때의 장점은 잘하지 못해도 크게 속상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만약 수영을 업으로 하는 선수였다면, 매일 기록을 측정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몸 상태에 민감해져서 오늘은 몸이 무겁네 가볍네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수영을 취미로만 남겨두었기에, 못하면 못하는 만큼 넘어갈 수 있고 예전보다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동 신경이 탁월하게 발달한 편은 아니라 타고나지도 않은 재능으로 밥벌이를 해 보겠다며 나를 들들 볶지 않아도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 향상에 대한 욕망은 늘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성장은 우상향 직선형이라기보다 우상향 계단형의 그래프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성장이 멈춰버린 것 같은 정체기 혹은 슬럼프를 겪으며 '나는 글렀어'라는 자기혐오에 시달리지만, 사실 한 계단의 평평한 면을 지나야 다음 계단으로 내딛을 수 있지 않나. 이를 위해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철근 같은 의지로 다음 발돋움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먼저 그 계단을 올라보고 각종 삽질은 골라가며 다 해 본 사람에게서 (aka.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도 상당히 좋은 방법이다 (돈이 들어서 그렇지).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조금만 더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작은 욕심과 어설프게 하다가 다치기 싫다는 큰 소망이 합쳐져서 개인 수영 강습을 덜컥 등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개인 강습이 인기가 많은 탓인지 waitlist에 올라 있기를 두어 달. 갑자기 수영장으로부터 환불 안내 이메일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강습이 가능한 코치가 없다는 것. 아니... 여봐여... 그래서 waitlist에 이름을 올려놓았잖아여... 강습 가능한 코치가 생기면 연락 주시라구여... 이게 뭐에여... 설레던 마음 풍선에 바람이 쉬리릭 빠져버렸다. 에라이, 없던 일로 할까 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니 나를 다시 waitlist에 올려달라고 이메일로 '읍소' 했다. 이런 나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코치들의 스케줄을 알아본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게 무려 23년 4월...


수영장은 거의 연중무휴이길래 쉽게 생각했거늘, 코치들은 어디 태평양에라도 있는지 정말 감감무소식이었다. 캐나다에서 들들 볶는다고 일이 해결될 리가 없으니, 이렇게 올여름도 수영강습은 못 받고 넘어가는구나 하던 23년 7월 말 어느 날, 강습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문제는 원래 웹사이트에 적혀있던 강습료보다 2배나 비싼 금액을 불렀다는 것. 여전히 강습을 받을 의사가 있냐고 묻길래, 나도 쿨한 척 물어만 봤다. 왜 비싸졌냐고. 그랬더니 "private lesson"이라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여봐여... 내가 애초에 신청한 것도 1:1 개인 강습이었는데여... 너와 나의 "private"에 대한 정의가 다른걸까여... 하려던 찰나, 그들이 알려준 수영 코치의 이름을 보자마자 딱 두 번 고민하고 Yes를 외쳤다. 왜냐면 배정된 코치가 캐나다 국대였기 때문에!! 우왕, 너굴아. 네가 이때 아니면 언제 국대한테 레슨을 받아보겠냐아. 





도쿄 올림픽 오픈워터 수영 대회에 캐나다 국대로 출전했던 나의 코치님과 첫 강습이 있던 날. 

아침부터 은근히 설렜다. 어떤 걸 배우게 될까. 내 실력은 어느 정도 일까. 수업 시작 15분 전, 수영장 핫텁에서 머리만 내놓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차, 멀리서 걸어오는 걸음걸이와 자세만 봐도 '저 수영선수예요'라고 써붙인 것 같은 누군가가 텁텁 걸어왔다. 수영선수들의 신체적 특징을 들자면, 대체적으로 손발이 크고 넓은 어깨, 승모가 발달하고 어깨가 살짝은 안으로 말린 느낌, 그리고 심하지 않은 안짱다리,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느낌. 눈으로 봤을 때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아주 찰지고 미끈한 물개 같은 느낌이 난다면 십중팔구 수영을 좀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우와아, 저 거대한 물개 선수가 오늘 나의 선생님이로군. 잽싸게 달려가서 나의 존재를 알렸다. 안녕? 나는 수영하는 너굴이라고 해. 


간단한 소개와 서로에 대한 정보 교환을 마친 후, "거두절미하고 한 번 해볼까" 하는 물개님의 말에 바로 물에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킥은 더 잽싸게, 스트로크는 풍차 돌리듯이 더 빨리, 시선처리는 수면과 평행으로, 등등. 물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자니 주어진 6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저 멀리 다른 레인에서 나를 이따금씩 지켜본 짝꿍이 말하길, 애가 평소와 다르게 쉼 없이 물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더란다. 짝꿍 왈, 이상허다... 평소엔 그렇게 꼬박꼬박 쉬더니...  


듣기엔 간단해 보이는 몇 가지 교정이었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스트로크 타이밍만 좀 달리 했는데 속도가 빨라졌고, 발을 좀 더 '도도도' 거리면서 찼을 뿐인데 킥 속도가 빨라졌다. 아, 이래서 다들 무림 고수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는구나. 혼자였다면 절대 몰랐을 일이다. 


뿌듯하게 첫 수업을 마치고 등에서부터 뒷목으로 뻗쳐오는 열을 느끼며 집에서 바로 뻗었다 (왕성해진 식욕은 덤). 다음날 아침까지 드물게 꿀잠을 잤는데, 아침 첫 소변이 시뻘건 색이라 깜짝 놀랐다. 뭐여, 말로만 듣던 횡문근융해증인가, 아니 내가 좀 열심히 했기로서니 설마 그것도 못 견딜 정도란 말인가, 하며 바삐 검색을 했다. 친애하는 네이버 선생께서 특별히 통증이 없으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시길래 대접으로 물을 퍼 먹었더니 소변색은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전날 나름 쉼 없이 움직여서 땀을 많이 흘렸을 텐데, 물 속이라 알 길은 없고 기절해서 자느라 수분 섭취를 제 때 못한 탓이었나 보다. 


짝꿍은 내가 쉴 새 없이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보고 물개 코치가 쉼 없이 "go"를 외치며 나를 굴린 줄 알지만, 사실 물개님의 가르침은 전혀 강압적이지 않았다. 본인도 코칭 경험이 많지 않아 부족할 수 있다며 한사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내가 한 바퀴 다녀오면 할 만 한지 꼭 물어봤으며, 고관절도 좋지 않으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해주었다. 물개님은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내 대답을 듣고서야 "go"를 외칠 뿐이었다. 그저 주어진 60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가야지,라는 내 욕심(?)에 평소와 달리 물에서 계속 떠다녔던 것뿐이었다. 





사람이 물속에 얼굴을 담글 수 있다, 라... 

어릴 적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엄마 따라 대중목욕탕을 갔다가 욕탕에서 물속으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있는 물 없는 물 다 먹어가며 혼자 벽 짚고 겨우 기어 나왔는데, 아직도 물에 빠지면서 '와악, 진짜 큰일 났다'라고 생각하던 내 뇌 속의 사고흐름이 떠오른다. 그 데굴거리는 느낌과 내 얼굴의 모든 구멍이 물로 막히는 느낌도 느리게 마디마디 기억난다. 이렇듯 내게 수영이란 인간의 본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었으니, 그 어려운 걸 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토토로와 꼭 닮은 체형으로 40대에 접어든 아빠는 어느 날 다이어트를 결심하셨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가 몇 달 수영 강습을 받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이 수영을 배우는 쪽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왜...?). 문제는 엄마도 아빠도 미친 X 널 뛰는 것 같은 출/퇴근 시간을 겪어야 했기에, 두 사람이 수영장을 갈 수 있는 시간은 새벽 첫 타임 - 6시 - 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슨, 집에서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을 가기 위해 온 가족이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수영을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4-5학년이었으니, 뭐, 백 번 양보해서 성장기 심신단련을 위해 할 수 있다 쳐도, 당시 6-7살밖에 안 된 동생에게는 인권 침해의 문제로 다가왔을 테다. 


왜 하필 온 가족 수영 프로젝트를, 그것도, 겨울에 시작했을까. 

성인이 되어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내가 아침잠이 많다는 걸. 아니,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성장기 아이들을 해뜨기 전 기상시키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겨울이라 가뜩이나 해도 늦게 뜨는데, 캄캄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얼음장 같은 카시트에 앉는 것은 절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덜덜 떨면서 온몸의 근육을 바짝 동여매는 느낌으로 뒷좌석에 콕 박혀 잠을 청하던 날들이 아직 생생하다. 아무리 히터를 틀어도 밤새 찬바람 맞고 서 있던 차에게 뭘 얼마나 기대할 수 있나. 히터에서 나오는 찬바람만 내내 맞다가 (그게 더 추워ㅠ) 겨우 훈풍이 나올 무렵이면 이미 수영장의 냉랭한 주차장에 도착해서 다시 뼈 시린 바람을 마주해야 했다. 


참새가 운반하는 너굴이. 저 상태로 차에 실려 수영장을 갔다.


우리 가족은 늘 수영장에 1번으로 도착하는 회원들이었다. 수영 강사나 데스크 직원들조차 출근하지 않는 그 시각, 출입문 앞에서 기다리거나 출입문이 열려 있으면 알아서 회원카드를 사물함 열쇠로 바꿔서 탈의실로 입장하는, 아주 성실(...)한 회원 가족이었다. 사람 없이 썰렁하기란 탈의실도 매 한 가지라, 돋아나는 닭살을 뒤로한 채 수영복을 입으며 눈을 뜨고, 샤워기 아래 따뜻한 물을 맞고 있다 보면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머리로는 안다. 단체 체조를 하기 전 5분이라도 일찍 나가서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걸. 그 5분의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뉘앙스로 아빠가 넌지시 던진 말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춥고, 몸은 굳어 있고, 샤워기 물은 너무 따뜻하고, 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졸린 11살짜리에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아름다운 공자님 말씀은 귀에 잘 안 들어온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린 동생의 인권 침해 문제와 엄마의 출근시간 루틴이 너무도 빠듯하다는 이유로, 온 가족 수영하기 프로젝트에 결원이 생겼다. 뭐, 어느 정도 수영 기본기는 배웠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을 수도 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아빠랑 10개월가량 새벽수영 루틴을 이어갔던 것 같다. 사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내 선택으로 아침마다 실려 나가는 너굴이의 삶을 살았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어도 새벽 기상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옆에서 세상 태평하게 자고 있는 동생이 너무나도 부러워 가끔 실수인 척 그 아이의 손을 지그시 밟고 나간 적도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점점 새벽 첫 물에 수영할 때의 청량감의 묘미를 알게 된다거나, 수영 후 몸에 은근히 남아있는 클로린 냄새가 더 좋아진다든지, 등의 긍정적인 기억도 생겼다. 이윽고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새벽루틴에 참여하던 내가 온 가족 수영프로젝트에서 탈퇴하게 되면서 아빠 홀로 외로이 새벽 수영을 이어나갔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수영장을 간다든지 정도의 친목 다지기(?)는 이어졌지만, 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 등교 시간이 빨라지면서 점점 수영을 잊게 되었다. 대학을 간 이후로는 살던 곳 근처에 수영장이 있으면 수영 강습을 찾아 등록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으나 그렇게 열정적으로 수영장을 찾진 않았다. 수영이 은근히 운동 전/후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은 운동이라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때는 운동에 죽기 살기로 목매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체력과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밴쿠버에 온 첫 주, 올림픽 경기장 수준으로 지어진 학교 수영장이 기숙사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수영을 다시 재개할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국제경기 표준으로 지어진 8개의 50m 레인과 다이빙대를 볼 때의 희열이란. 너무 설렌 나머지 수심 체크도 안 하고 수경 없이 뛰어들었다가 2.5m 바닥까지 수직낙하해서 어푸어푸 올라오는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 수영을 할 줄 알아도 물에 빠져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 아이의 세상에 엄청난 변혁이 온 것과 다름없었다. 수영을 시작하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이는 1km를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할 때면 만년 꼴찌였던 아이는, 어느 날 자기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자기가 경로를 이탈한 줄 알고 트랙을 반대로 뛸 뻔했다. 몸에 살이 좀 있어야 키가 큰다는 어른들의 말에 마음 놓고 먹다가 토실토실해진 아이는, 수영을 시작한 그 해 여름 방학에만 8cm가 자라 제 아빠처럼 토토로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뜀박질이 빨라지니 몸을 쓰는 일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아이는 성격에 맞게 좀 더 천방지축이 되었다. 중학교 체육대회에서는 심지어 반 대표 계주 주자를 맡는 일도 생겼다. 칼을 들고 다니면 당시 좋아하던 일본 만화 캐릭터처럼 멋있어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검도를 배우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배움은 쉽지 않다. 특히 잘 못하는 일을 배울 때에는. 

온 가족 수영 프로젝트에서 엄마와 동생이 탈퇴하기 전, 주중에는 3회였는지 5회였는지 꼬박꼬박 수영 강습을 나가고도 주말까지 수영장으로 향하는 루틴이 반복되었다. '연습'을 위해서였다. 주중에 배운 내용을 복습해야 진정 자신의 실력이 된다며, 엄마아빠는(주로 엄마) 우리의 수영 코치를 자처하고 나섰다. 수심이 얕은 레저풀은 이미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다들 고무공이나 튜브를 갖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다. 그 한편 어느 구석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음파음파' 호흡연습을 하고 있는 어린 남매가 있었는데, 그게 우리였다. 목욕탕 세신사 아주머니의 호출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다른 풀에서 연습을 하다가 둘 중 한 마리의 차례가 끝나면 다음 주자가 레저풀로 간다. 코뚜레에 걸려서 질질 끌려가는 심정으로 레저풀에 다다르면, 다른 집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옆에서, 음파음파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강한 교육자/양육자 상이 흘러 넘치던 시대였으니 우리 엄마도 그러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원체 호랑이 선생님 기질이 있어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의 복습 시간은 늘 무겁고 조금은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남매가 한꺼번에 레저풀로 호출당한 적이 있었는데, 둘이 벽을 붙잡고 머리를 수영장 물에 처넣은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음파음파 연습을 같이 하던 날이었다. 물속에 머리를 넣고 고개를 돌리기 직전, 누군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마녀에게 목소리를 판 에리얼이 물속에서 우는 소리가 그러했을까. 물속에서 흘낏 옆을 돌아다보니 주중 새벽기상으로 심신이 고달팠던 내 동생이 입을 으앙 벌리고 펑펑 울고 있었다. '음'을 하며 물속에서 코로 숨을 뿜어내야 하는 시점에 '으앙'하고 울고 있으니 물 밖에서 '파'가 잘 될 턱이 있나. 물 밖에 나온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호흡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되지 않으니 엄마의 닦달이 뒤따라온다. 그 꼴을 보고 웃자니 미안하고, 그날 수영장에 사람도 많고 다들 노는데 우리는 복습이랍시고 이러고 있는 것도 속상하고 해서, 나도 같이 물속에서 '으앙' 울었다. 





운동은 어릴 때 해야 한다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의 진가를 체감한다. 

유소년 수영반 아이들이 물 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볼 때. 짝꿍 따라 골프를 쳐 보겠다고 허리를 비비 꼬아보지만, 유연하고는 거리가 먼 이 몸으로 상체가 잘 꼬아지지 않아서 애꿎은 골프채에 화풀이할 때. 테니스를 배워보겠다고 수업도 다녔지만 어릴 때부터 배트 좀 휘두른 짝꿍이 던진 공을 잘 보지 못해 공에 한 대씩 얻어맞을 때, 등등. 그나마 어딜 가서 수영장이 있으면 마음 편하게 들어갈 수 있고, 최소한 헤엄을 쳐서 뒤로 가진 않을 정도의 인간 존엄을 유지할 순 있으니 이 정도면 수영을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운동으로 꼽아도 괜찮지 싶다.


그렇다면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운동이 수영이 된 데에는 누구의 공이 클까?

언젠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수박을 썰어 먹던 날, 신림동 고시촌에서도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수영을 즐겨하는 아이의 신난 얼굴을 본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렇게 애써서 주말까지 너희들 가르치지 않았으면 수영은 대충 휘적거리다 끝났을 거라고. 살면서 운동 하나 제대로 할 줄 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고. 


맞다. 맞는 말이다. 

그저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나는 아직도 이 딜레마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모든 배움이 꼭 고통스러워야 하나? 물론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아직 성인의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 지도자나 부모가 어느 정도 배움의 길을 이끌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인생 경험을 충분히 한 '어른'들이 볼 때 모든 일에 '때'가 있는 법일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물개 선생과의 짧은 레슨은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11-12살 물속에서 으앙 울던 아이에게 엄마는 "할 만 한지", "괜찮은지" 물어봐 주었던가. 기억의 왜곡은 비일비재하니 100% 확신할 순 없지만 - 그래서 엄마가 이 말을 들으면 서운할 지도 모르겠지만 -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수영장 레저풀에서만큼은 우리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연습해야 하니까 빨리 이 쪽으로 와라" 가 전부였다. 매달 재등록을 할 때 엄마아빠는 늘 물어본다. 다음달도 등록을 하겠냐고. 우리가 혹은 내가 yes를 외쳤기에 다음달도 새벽기상을 하는 그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만, 레저풀에서까지 남들 놀 때 고통스럽게 연습해야할 줄은 몰랐지. 아마 엄마의 교육관은 '모든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로 가장 잘 요약될 듯 하다. 가정법적 상상이지만, 그래서 답도 낼 수 없는 질문이지만, 늘 나에게 묻는다. 그때 엄마가 주말을 쪼개가며 우리의 소중한 '복습'을 하드캐리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여전히 물을 무서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 늦더라도 수영의 진정한 즐거움을 깨달아 스스로 공부하고 선생도 찾아 나서며 몸에 잘 익히고 있을까. 


언젠가 친한 친구와 Asian Tiger Mom에 대해 우스갯소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본인이 부모가 되면 반드시 아시안 타이거맘이 되겠단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의 어머니께서 성장기에 늘 아이가 힘들어하고 지겨워하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해주셨기 때문에, 본인이 지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것. 그게 이유였다. 결은 좀 다르지만, 칭찬을 들은 적이 별로 없고 (부모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겠으나 상당 부분 성과주의를 크게 내포하고 있는 교육관으로 길러진 아시안 호랑이 새끼로써, 아시안 타이거맘이 되고 싶다던 친구의 말에 적잖이 뜨악했다. 아시안 타이거맘의 새끼들은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더니, "어쨌든 너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줄 알잖아"라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아... 그래... 그 보잘 것 없는 '결과'에 집중한다면야...


아직도 명확한 답은 없다. 

있어 보이는(?) 결과를 위해 험난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강제로 견디는 것과, 힘든 과정을 굳이 겪지 않아도 되지만 또 대단한(?) 결과도 없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어느덧 두 남매의 수영 연습을 책임지던 그때의 엄마와 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울지 잘 모르겠다. 아이는 없으니 부모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배움과 성장의 딜레마에 대해 어떤 말도 시원하게 해줄 수 없는 종이인형 '어른'인 것 같아 퍽 조심스럽다. 


PS. 만나서 반가웠어요, 물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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