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 이사 전_마음이 먼저 움직인 시간
시간 선택제로 일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주 5일 40시간이 아닌, 주 20시간만 일하는 근무 형태로 바꾸면서,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내가 무얼 하며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러닝크루 번개 모임 날. 함께 달리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던 한 분이 말을 건넸다. 본인도 시간 선택제를 쓰고 싶어 회사에 요청했고, 심지어 함께 쓸 짝꿍까지 만들어 갔지만 일할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려당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은 아직 써보지 못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내게,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쉬는 날엔 뭐 해요?”
그 질문에 나는 조금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요?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요. 짐 정리하고, 집 청소하면서 보내요.”
내 대답이 끝나자, 마치 모두가 품고 있던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듯한 공기가 흘렀다. 기대에 찼던 질문했던 분 뿐만 아니라, 자기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 애쓰는 다른 멤버들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아… 그렇구나…”라는 말과 함께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도 내심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 지금, 나는 내 시간을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다른 이들이 아쉬워할 만큼 귀한 시간인데, 나는 그 시간을 짐 정리로만 채우며 보내도 되는 걸까? 혹시, 정리를 핑계 삼아 나 자신을 위한 도전은 미뤄두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1일 1 정리를 해왔다. 어느 날, 운 좋게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본격적인 정리가 시작됐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엔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낡은 기름보일러며, 80년대식 여행 가방, 엄마의 처녀 시절 옷, 동생과 나의 어린 시절 일기장을 비롯한 어릴적부터 함께한 물건들, 20년 묵은 소금통, 나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커다란 솥, 김장을 열 번쯤 할 수 있을 크기의 소쿠리, 아빠의 직장 생활을 따라다녔던 명함과 서류뭉치, 출처를 알 수 없는 무전기, 고장난 비디오 플레이어와 비디오테이프, 한때 즐겨듣던 테이프와 CD, 작동이 되었다 안되었다 하는 라디오, 예전 집에서 떼어온 오래된 미술 작품들까지. 물건은 추억을 품고 있었고, 그만큼 처분은 어려웠다.
동생의 짐을 한 데 모으기 위해 붙박이장 하나를 온전히 배워내고 이 안에 집 안 뿔뿔이 흩어져 있던 동생의 짐을 한데 모았다. “너 짐 언제 가지러 올 거야?”라며 몇 개월을 묻고 또 물었다. 동생은 ‘언젠가’라고만 했고, 결국 출산을 앞두고서야 집으로 와서, 내가 몇 달을 망설였던 물건들을 순식간에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허무했다.
그다음은 부모님 차례였다. 역시나 물건을 모으는 데 몇 달, 부모님을 설득해 집으로 오게 하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결국 이사 한 달을 남겨두고서야 부모님도 정리를 시작했다.
물건을 들이는 건 쉬워도, 내보내는 건 참 어렵다. 부모님 짐, 동생 짐, 그리고 내 짐, 아이들 짐까지. 어쩌면 나는 시간 선택제로 얻은 귀한 시간을, 바로 이 작업을 위해 써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그날 크루의 질문으로 돌아간다면, 내 대답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정리만 한 건 아니에요. 제 삶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며,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음까지 정리 했어요. 살면서 꼭 필요한 그런 시간이었어요.”
시간 선택제는 단지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짐을 조용히 정리하며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내가 보낸 시간들이 늘 효율적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헛된 것도 아니었다.
정리를 핑계로 나를 미뤘던 게 아니라, 정리를 통해서 나를 더 알아갔던 시간. 누군가는 정리할 게 그렇게 많냐고, 대충 하라고 할지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 그 시간을 지나 왔기에 지금의 한결 맑게 개인 마음과 정돈된 집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게 의미가 없다고 적어도 나 스스로부터 말하지는 말아야지. 그 시간을 살아낸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