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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가도 이어지는 우정

part3 : 이사 후, 각자의 적응

by 다우

#1 바다를 가는 길이 더 설렜던 이유


얼마 전 아이가 열로 한참을 앓다가 입원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는 병원보다 ‘바다’에 정말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몸이 나아지자마자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새우깡을 품에 안고 출발한 길. 한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아이는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이사 전,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서 걸려온 영상통화였다.


“나 비둘기한테 주려고 새우깡 샀어.”
“비둘기? 갈매기 아니고?”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더니, 별 내용도 없이 여섯 살 나름의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고성만 오가는 듯해서 엄마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00 이가 연두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언제 한 번 별내로 갈게요. 가서 한 번 봐요.”
“아, 좋죠. 그래도 멀리 이사 간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통화를 마치고 나서 부푼 얼굴로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긴 이동 시간에 살짝 긴장했던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졌다. 지난 어린이날에 만나 함께 파주 책잔치에 갔었는데, 이렇게 잊지 않고 꾸준히 연락을 해주는 덕분에 아이들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는 상대방이 바쁠 것 같아

아니 실은 내 하루하루가 급급하니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주니 고마웠다.


아이도, 마음을 가장 크게 내어줬던 그 친구가 잊지 않고 연락해 줬다는 사실에 감동 듯 했다. 이사한 동네에서 아직은 그 정도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 또 다른 깊은 인연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까지 차올랐다.



#2 다시 찾은 옛 동네


며칠이 지나고, 그날이 왔다.


“이제 세 밤만 자면 00이네 집 간다”

“나 오늘 기분 좋아. 왠지 알아? 00이네 집 가는 날이잖아”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자두에 담긴 설렘


남편은 친구네 집에 가져가라며 하루 전에 쿠키를 사다 놓았고, 친정에서 보내준 시골 자두를 먹던 아이는 “우리 이거 00이네 갈 때도 챙겨갈까?”라며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렇게 두 손 무겁게 예전 동네로 향했다.


동네로 향하는 길.


창밖에 스치는 가로수들을 보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그 풍경에 눈물이 날 뻔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가로수길. 딱히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을 만큼 이곳저곳을 이사 다녔던 내게는, 아이를 낳고 가장 힘겨웠던 시기를 지냈던 곳이었던 만큼 가장 깊이 자리 잡은 동네였다.


길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고 힐링을 하는 느낌이라니.

동네를 다시 찾을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친구네 집에 도착하자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반가워 인사하는 친구였다.


“어디? 어디야? 안 보여?”


신나게 두리번거리다 반가움에 저절로 데시벨이 높아졌다.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듯 서로의 이름을 소리치며 부둥켜안았다. 오랜만의 만남에 어색해하던 둘째 아이만 빼면, 그립지만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란히


절친답게 친구는 만나자마자 사슴벌레를 보여주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도 사슴벌레를 키우고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데, 이 아이들이 왜 그러게 마음을 나누게 되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몸싸움을 하며 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선에서 치고받고 싸우며 즐겁게 놀았다. 엄마로서 잔소리를 곁들여야 했지만, 그마저도 그리웠던 일상이었다.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게 하나밖에 없어.”


둘째는 오빠들 노는 틈에 끼지 못해 서운해했다. 친구 엄마가 인형을 꺼내주자 “나 이것도 좋아해, 이것도 좋아해!” 하며 금세 마음이 풀려 인형을 한 아름 껴안았다. 그런 동생을 귀엽게 바라보다 자연스레 놀아주는 친구의 모습에, 이 풍경을 두고 떠나왔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인생은 영원한 게 없으니, 아쉬워도 이렇게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만 남기기로 했다. 함께 한 저녁은 별다른 음식을 먹지 않아도, 마음까지 배부른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카페거리를 산책했다. 불과 네 달 사이에 사라진 음식점과 카페들이 꽤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동네가 비어 가는 듯해 서글펐다. 하지만 그도 잠시, 밤이 깊은 거리에서 손을 잡아끄는 아이들 덕분에 계속 길을 걸었다. 활발하게 오가며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사랑했던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카페거리 기억나?”

“당연하지. 여기 우리 살았던 데잖아.”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듣한 그 대답에 물은 내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곳에서의 기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 마음속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인사하는 친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난번 바다에 갔을 때 주워온 조개들이 차에 남아 있었다. 분명 다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서 떨어진 조개들을 발견한 아이는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라고 말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뭔가 더 주고 싶어. 00 이가 나를 계속 좋아했으면 좋겠어.”

“연두야, 친구는 네가 뭘 주지 않아도, 널 보고 싶어 하고 이렇게 만나러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 물건을 주지 않아도, 너는 이미 마음을 주고 있는 거야.


그동안 친구가 먼저 연락하고, 장난감을 선물로 받으며 쌓아온 추억들을 떠올리던 아이는 이제 조금씩 ‘받는 마음’에서 ‘주고 싶은 마음’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듯 했다.




#3 이사를 가도 이어지는 마음이 있다면


이사한 후, 한동안은 이 동네가 너무 그리웠다.


아이들과 옛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예전에 다니던 미술학원에 수업을 하러 들르기도 했다. 몇 번을 찾다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려는 인연을 억지로 끊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운 길은 다시 찾으면 되고, 새로운 길은 그것대로 천천히 걸어 나가면 된다.


이사란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이전의 마음을 지우는 일은 아니란 걸 다시금 느낀 하루였다. 바다는 잠시였지만, 이어지는 우정은 깊게 남았다. 아이도 나도, 다시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의 삶은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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