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 , 아이 3대가 함께하는 호캉스, 아니 호강스
코로나 2 년차, 직장생활 1년 8개월차, 육아 4년차.. 삶의 전환기를 지나왔지만 어느새 쳇바퀴를 도는 듯한 기분이었다. 집과 직장의 무한 반복.. 뭔가 전환이 필요했다. 시작은 쉬는 날 친구를 만나서 받은 리조트 바우처였다. 예약을 확인해보니 바우처가 아닌 할인권이었고, 딱히 겨울 레저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매력도가 떨어졌다.
소박하지만 멀지 않고, 검소하지만 약간의 화려함이 가미된, 짧고 굵은 휴가가 필요했다.
전에 보아 두었던 카카오톡 쇼핑하기에서 여행사 호텔 상품에 눈독을 들였다. 서치를 해서 도심 호텔의 저렴한 평일 숙박을 찾았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여야 했고, 산책할 공원이 가깝고, 식당과 카페가 인근에 있는 곳이어야 했다. 무엇보다 육아에 지친 엄마를 위한 마사지샵도 가까워야 했다.
최적의 장소는 공덕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힐링 장소는 아니다. 회사들이 몰려 있어서 여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평일에 쉬는 직장 특성 상 남들 일할 때 쉬는 시간의 장점을 활용한 것이다. 공덕 글래드 호텔에 예약을 하고, 주변 타이 마사지샵에 1시간 코스를 엄마를 위한 시간으로 예약했다. 욕조 있는 룸은 예약이 다 차버려서 아쉬웠지만, 아이는 해바라기 샤워기에도 물 맞는 걸 생각보다 즐거워했다. 엄마가 마사지받는 동안, 카페에서 아이를 위한 딸기주스와 디저트를 먹고, 나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나름의 여유를 만끽했다. 가까운 경의선 산책로에서 아이와 산책하는 강아지와 엄청나게 빠른 길고양이와, 다양한 모습의 카페와, 알록달록 옷 입은 나무들을 구경했다.
일부러 사람이 적은 이른 시간에 근처 초밥집에서 특선 초밥과, 아이를 위한 초밥 세트를 먹으며 여유로운 저녁을 먹었다. 생각보다 배가 많이 불러서 저녁에 와인을 마시기로 한 계획은 포기했지만, 목욕 후에 객실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은 힐링시간이 되었다. 술 없이도, 음악과 분위기만으로도 행복한 저녁이었다. 아이를 재우려고 가져온 동화책도 살뜰히 몇 번 을 읽어주고, 낯선 환경을 조금 힘들어 하긴 했지만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또 잠이 들었다.
신혼여행도 신혼부부들이 단체로 가는 여행을 했던 엄마는,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며 즐거워하시며, 호캉스가 아니라 호강스였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더니 "엄마, 시간이 로켓처럼 흘러가. 창밖 나무들이 인사하네. "라는 시적인 말을 했다. 일상적이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따뜻해지는 짧은 휴가였다. 가끔은 이런 것도 참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