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숑알숑알 Nov 13. 2024

아침을 기다리는 삶

미지의 하루에 경로를 그리는 시간

근래 들어 아침에 눈 뜬 이후의 루틴이 고정되었다. 물 끓여서 드립백 하나를 뜯고 커피를 내린다. 잠이 덜 깬 코를 컵 위에 가져다 놓고 킁킁대며 하루 최초의 냄새를 맡는다. 전날 미리 꺼내서 해동해 둔 비건 베이글을 가로로 잘라 전자레인지에 50초 돌린다. 코치님 추천으로 알게 된 널담 베이글을 매일 아침마다 먹는데 배부르고 맛있고, 무엇보다 아침 한 끼로 단백질을 20g 이상 채우고 시작한다는 점이 든든하다. 따끈하고 말랑해진 베이글에 크림치즈나 땅콩버터를 슥슥 발라 커피랑 먹는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에 성공한 날이면 책을 읽거나 멍때리고 아닌 날이면 후딱 씻고 재택근무를 시작한다.


조금씩 더 일찍 일어나려는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 정확히는 나를 찾는 온갖 알림과 의무에 신경이 뒤덮이기 전 소중한 진공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늘리고 싶어서다. 잠에서 깬 뒤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의 질을 높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세상의 소식, 남의 생각이 안개처럼 나를 둘러싸느라 내 최초의 의견은 늘 뒷전이 된다고 자주 느낀다. 어떤 날은 내가 고유한 적 없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면 두려워져서 자꾸자꾸 고개를 들고 머릿속을 점검한다. '자세의 중요성' 같은 글을 보고 한참 굽어있던 등허리를 헐레벌떡 펴는 사람처럼.


문득 우리집 싱크대를 보고 요즘의 변화를 체감한 날이 있다. 예전의 나는 밤에 보내는 내 시간에 집착했다. 아무 약속 없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차려놓았을 때 행복했다. 대개 온종일 긴장하고 지내니까 알콜의 힘을 빌려 슬쩍 헐거워지는 순간이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싱크대엔 계절마다 다른 위스키 병이 놓였다. 지금 그 자리는 올리브 오일과 땅콩버터, 말린 비트가 차지하고 있다.


요즘은 똑같은 내 방, 똑같이 혼자 보내는 시간인데도 아침을 좀더 좋아하게 됐다. 알콜 아닌 잠에 취해 비슷하게 혼몽하더라도 더듬더듬 생각의 닻을 내리고,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지의 하루에 경로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밤의 시간은 하루에 걸쳐 이미 꽉 채운 도화지를 반추하게 한다면 아침의 시간은 말간 도화지의 규격 자체를 사방으로 늘려주는 것 같다. 평소보다 이른 알람에 눈 뜨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물론.. 막 미라클모닝 정도의 새벽은 아님) 일찍 일어날수록 그만큼 내 시간이 늘어난다는 정직한 동기부여와 보상 체계마저 좋다. 


아침을 기다리는 삶. 내게 있어 참으로 낯선 변화를 즐겁게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 저녁 무렵 퇴근하고 운동 갈 준비를 하다가도 '얼른 내일 아침이 오면 좋겠다' 떠올리곤 그 생각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하루라도 품을 거라 기대해본 적이 없다. 신기할 만큼 착착 겹친 우연들이 새 마음으로 나를 데려다놓았다. 아침에 채우고 비운 생각들에 대해서 조만간 다시 쓸 수 있길 바라며!


2024. 3.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