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중년 남성이 지하철역 구석에서 반복적으로 무언가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면 핸드폰을 들고 상대와 통화가 매끄럽지 않아 계속 반복해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중년 남성은 핸드폰에 있는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지하철역은 열차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한 분위기이기에 나는 자연스레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는데 서울말과 약간의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정감 가는 말투였다.
중년 남성은 인공지능 기능을 이용해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내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중년 남성이 구수한 말투로 쏟아내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계속해서 “다시 말씀해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럴수록 그의 말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핸드폰에서는 계속 인공지능의 딱딱한 안내음만 흘러나왔다. 결국, 남성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안부 문자 대신 안부 전화를 택했다. 다정한 말투로 어머니와 통화하는 모습을 보며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사람이 살면서 느끼고 표현하는 수많은 감정만큼은 절대 사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인공지능의 활용범위는 굉장히 넓다. 이젠 인공지능 없이는 살짝 불편함을 느낄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인공지능 기능을 애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딜 가나 사람보다는 기계와의 대화가 많아진 요즘은 특히나 사회가 많이 차갑다 생각이 든다.
아마 지하철 역의 중년 남성이 핸드폰에 있는 인공지능 친구를 향해
‘어머니. 잘 지내세요? 저는 잘 지냅니다. 밥 잘 챙겨 드세요. 곧 찾아갈게요.’
하며 딱딱한 말투로 일정한 속도에 맞춰 말을 했다면 인공지능은 아무런 온기가 없는 문자를 그의 어머니께 전송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히도 사람의 온기를 표현하기에 인공지능은 아직 많이 부족했고, 덕분에 중년 남성도 어머니와 더 따듯하게 대화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람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감정마저 인공지능이 쫓아오기 전에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더 많은 마음과 정을 나누며 계속해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미를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다.
사람 사이의 감정과 온기를 잊고, 잃어버리는 순간 사람도 AI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릴 테니까
대화만큼은 사람이랑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