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 이사 갈까?

우리 빌라에는 웃음이 삽니다

by 후니언니

<바람 잘날 없는 빌라 생활>


골목 코너에 자리한 6층짜리 신축 빌라는, 지은 지 8년쯤 되자 슬슬 골골대기 시작했다. 첫 신호는 엘리베이터였다.


1~2층이면 운동 삼아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5층에 사는 우리 네 식구에게 <수리 중>이라는 푯말은 가슴이 철렁, 다리가 후들거리게 만드는 공지였다.


총수를 표시하는 화면에 ‘점검 중’이라는 빨간 글씨가 떴다.
엘리베이터는 완전히 멈췄고, 빌라 단톡방은 곧바로 들끓기 시작했다.


[엘베 갑자기 멈췄어요]

[오전까진 멀쩡했는데요?]

[그럼 언제까지 타면 안 되는 건가요?]


질문 폭탄의 중심에는 301호, 주민대표 아줌마가 있었다. 월 4만 원 관리비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대표를 그녀는, 빌라에 무슨 일만 생기면 자동 호출되는 ‘비상벨’ 같은 존재다.


지은 지 얼마 안 됐을 땐 꿀보직이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주변 소음, 쓰레기 분쟁, 그리고 엘베 고장까지. 이곳에선 ‘소소한 대형사건’이 끝도 없이 터진다.


[기사님 불러야 할 것 같아요. 불편하시겠지만 당분간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해 주세요.]

대표 아줌마의 한마디에 단톡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며칠간 허벅지가 불타오르는 듯한 생활 끝에, 엘리베이터는 결국 고쳐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수리비를 세대당 45만 원씩 각출해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401호.


401호 우편함에는 수도 끊긴다, 전기 끊긴다는 고지서가 잔뜩 쌓여 있었고, 몇 장은 바닥에 떨어져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대표 아줌마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금 교도소에 계세요.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요.”


결국… 401호 몫 45만 원은 나머지 세대가 나눠서 부담하게 됐다.



그렇게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이번엔 주차 문제였다. 13 가구에 주차 가능 차량은 12대.


차가 없는 집이 하나 있어 그나마 조용했는데, 그 집이 지인에게 자리를 내줬다는 소문에 단톡방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 자리를 내가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과
‘입주민이 우선이다’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집 아들이 단톡방에 등판했다.


[저희 자리는 저희가 알아서 쓸게요. 관리비 안 깎아줘도 되고요.]

그리고는 퇴장 엔딩.


결국 반상회가 열렸다. 우리 집에서는 아빠가 대표로 참석했다. 한 시간쯤 후 돌아온 아빠는 말했다.

“장애인 주차 위치를 옮기고, 화단 반을 없애서 두 자리 더 만들기로 했어.”

“일이 너무 커지는데?”

“그리고 외부 차량 못 들어오게 차량 스티커 붙인대.”


장애인 주차공간을 조정으로 한 자리, 화단 철거로 한 자리. 차량에는 식별 스티커를 붙이고, 외부 차량 금지 조항을 계약서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대표 아줌마는 다시 분주해졌다. 구청에 전화해 장애인 주차장 위치 조정 문의, 화단 철거 견적 요청, 차량 스티커 발주까지. 이 자리를 빌려 월 4만 원에 봉사 중인 아줌마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람 냄새나는 단톡방>


엘베나 주차 문제 외에도, 우리 빌라엔 소소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 계단에 빨간 국물을 흘렸다 싶으면 단톡방은 CSI처럼 움직인다. 누구라고 말은 못 하지만, [요즘 김장하셨나 봐요~]라는 뼈 있는 이모티콘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택배도 예외 없다. 집 앞에 택배가 오래 쌓여 있으면 '어디 여행 가셨나?', '무슨 일 있으신가?' 단톡방엔 걱정이 맴돈다.


밤이면 누군가는 이별을 말하고, 누군가는 사랑 고백한다. 얇디얇은 벽 너머로 수많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주말이면 어딘가에서 맛있는 냄새가 퍼지고, 창문 틈 사이로 하루의 온기가 흐른다. 아파트에선 느끼기 어려운 정 많고 소란한, 하지만 따뜻한 삶이 이곳에 있다.

@ 새똥 출처 찾기 @


@ 반상회 미참석에서 시작된 출산 축하 @


@ 탐정 놀이 시작 @


@ 은근 여행 자랑하기 @


@ 친절한 주부 맥가이버 @



<누가 뭐래도 우리는 빌라!>


이 작은 빌라엔 참 일도 많다.

시끄러운 단톡과 사소한 오해가 가득하지만... 그만큼 사람 사는 냄새도 진하다. 우리는 서로의 고지서까지 챙겨가며(!) 진짜 이웃이 되어간다.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갈까?”

“싫어~ 엘베 오래 기다려야 하고, 사람도 많고, 높아서 무섭잖아.”

그래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지 않아?”

“안 살아봐서 모르지만, 난 빌라가 좋아.”

사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 편리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른다. 요즘 아파트는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 부를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도 자동 처리된다지…
듣기만 해도 먼 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괜찮다. 우린 이렇게 서로 웃고, 때론 다투고, 또 마음을 부비며 조금 불편해도 같이 살아가는 빌라가 좋다.


아파트 로망? 글쎄.

우리는 아직, 빌라의 낭만을 더 사랑한다.





참, 주차 자리를 만들기 위한 화단 철거 비용이요?
네, 또 세대당 45만 원이래요…
이젠 ‘45’라는 숫자만 봐도 가슴이 철렁합니다.
하지만 그것까지도 우린, 우리 빌라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엔 더 소란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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