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수영장으로 직행하는 이유
간혹 지하철에서 긴 가방을 든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혼자 내적 친분을 쌓는 순간이다. 나일론 소재의 검정색, 가로 형태로 길쭉한 가방이라면 십중팔구 그 안엔 오리발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수영인’ 일 것이다.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회사와 일상 사이에 수영을 채워 넣은 사람을 마주칠 때, 혼자 뿌듯해하고 혼자 반가워한다. 그들도 회사에서 보낸 버거운 일상을 물길 속에 씻어내려 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일 테니.
수영장까지 가는 길은 정말 쉽지 않다. 운동 전/후로 샤워가 수반되기 때문에 짐이 많다.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속옷, 또 핀데이(오리발 착용)에는 오리발도 챙겨야 한다. 이 많은 짐을 들고 다니려면 대중교통 이용은 정말 어렵다. 지하철에서 수영가방을 든 사람을 발견하면 더욱더 반가운 이유다. 대중교통에 저 번거로운 짐을 들고도 수영을 잃지 못하는 ‘참 수영인’이기 때문이다. 짐과 더불어 날씨도 수영을 어렵게 하는 존재다. 특히 요즘처럼 바람이 매서워질 때면, 정말 수영장까지 들어가는 길이 쉽지 않다. 체조를 하고 물에 빠지는 그 순간까지가 정말 괴롭다.
그럼에도 수영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물속에서 나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일이 정말 고될 때, 하루를 정말 밀도 있게 보냈을 때,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가급적 수영장으로 직행한다. 물론 직장동료와 맥주 한 잔을 통해서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과 단절된 채로 물소리만 들으며 내 움직임에 집중하여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있다. 처음으로 물을 먹지 않고 자유형 팔 돌리기에 성공했을 때의 그 기쁨을 잊을 수 없다. 내가 회사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도 수영을 하며 얻는 성취를 통해 그 열패감을 상쇄시키곤 했다. 수영장에서 얻는 작은 성공으로 상처가 되던 일을 ‘별거 아닌 것’으로 만드는 효과가 상당했다.
물론 수영도 쉽지는 않다. 간신히 물을 먹지 않고 자유형을 했을 때, 팔을 꺾어야 하는 새로운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겨우 몸을 뒤집어 배영을 시작하며 코로 락스 물을 듬뿍 마셨다. 한동안은 평영이 힘들어 ‘수태기’가 오기도 했다. 왜 난 박치인지 평영의 그 엇박자를 도무지 맞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상대성이론에 의거해 회사 일보다 나은 수영에 집중했다. 수태기 극복을 위한 수영복과 수영장비를 구입해가면서.
지금은 어떤 단계냐 묻는다면, 이제 ‘접배평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아직 접영은 완성형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하지만 여전히 수영장에 열심히 드나들고 있다. 잊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접영 웨이브를 타며 박자에 집중해본다. 입수 킥과 출수 킥이 정확하게 맞으면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게 수영장 물속에서 헤매며 스트레스를 물길에 씻어 보낸다. 수영이 끝날 때쯤, 버거웠던 일상은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