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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Jan 25. 2023

언제쯤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태도가 틀렸다는 사수, 정말 모르겠는 나

서른 살이 됐을 때 난 행복했다. 일반적인 취업에는 유용하지 않은 수험생활을 마치고 남은 건 졸업장과 세상의 온갖 잡지식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3년 차에 접어들 때쯤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첫 회사는 인정이 넘치는 곳이었지만, 긴 수험생활을 거쳐 나이만 많이 먹은 신입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시 예산을 써야 하는 곳이었기에 인력은 늘 타이트하게 운영됐다. ‘사회생활’의 기본을 알려줄 사수 같은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자유롭지만 외롭게 사고도 치고 수습도 하며 적당히 3년의 경력을 채웠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는 꽤나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조금 더 규모가 있는 곳으로 이직했을 때, 그때가 바로 서른 살이었다.


그래서 서른 살이 좋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이전 직장에 비해 연봉도 조금 인상됐으며, 보다 회사다운 환경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내게도 일을 배울 수 있는 ‘사수’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물론 난 경력직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고작 3년 차가 일을 해봤자 얼마나 일을 해봤을까. 그래서 이 업계에 잔뼈가 굵은, 시원시원한 추진력을 가진 사수가 배정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내가 운이 좋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는 사수를 배정받았고, 이제 나도 제법 직장인 같은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3개월의 시용기간이 끝나고 정식 발령을 받은 후, 사수는 나를 옥상으로 데려갔다. 이제 막 시용을 마친 내게 사수는 ‘결혼계획’을 물었다. 약 3초 정도의 찰나였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얼굴을 본 지 3개월 남짓인 이 사람에게 결혼계획을 말하는 게 맞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당분간 결혼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웃음을 버무린 대답에 사수는 “여자는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다시 한번 내 의사를 확인했다. 결국 “저 야망가라서 결혼 못해요”라고 그의 입맛에 맞는 대답을 했다.


당분간 결혼계획이 없는, 나는 야망가라는 그 말이 직장생활을 이토록 고달프게 할 줄은 몰랐다. 사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면,  “너는 일에 대한 태도가 틀렸어”라며 기분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내가 했던 말들로 나를 공격해 왔다. 그는 9시 30분 회의 준비를 위해 8시에 출근한 나를 보며, “고작 1시간 빨리 와서 어떻게 회의 준비를 하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일 야근지옥에 빠져있는 나를 보며 “네가 여직원이라서 야근하고 먼 퇴근길을 가는 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포털에 검색해 보고 대처하는 방법을 준비한 것이. 하지만 그의 가스라이팅 앞에서 내 대처는 무용했다.


“일에 대한 태도가 틀렸다”는 사수의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대처는 그저 업무 시간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10시에 회의가 잡히면 7시 반에는 사무실에 도착해 회의자료를 검토했다. 보고서의 양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100장의 보고서를 화장실도 가지 않으며 작성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사수도 만족하겠지 싶었지만, 날을 거듭해도 사수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더 빠른 출근, 더 늦은 퇴근, 더 많은 보고서를 원하는 사수에게 나는 여전히 태도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수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뀌지 않는 내 마음이었다. 사수가 일에 대한 태도를 지적했을 때, 정말 내 태도가 잘못된 줄 알고 일이 좋은 척 에티튜드를 검열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좋아하는 척 해도 정말로 일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일은 언제나 싫은 것이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은, 오늘도 싫지만 내일도 싫은 게 바로 일이었다. 일에 대한 태도는 바꿀 수 없었다.

나와 2년을 보낸 사수는 생각보다 빨리 회사를 떠났다. 조직에서의 존재감이 엄청났기에 그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조직은 원활했다. 사수와 경합을 벌이던 다른 팀장도 동기부여를 얻는 듯 분발했고, 어느덧 5년 차가 된 나도 혼자서 일을 만들고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실수는 줄고 일은 익숙해졌다. 여전히 일이 좋지는 않지만,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어갔다. “너 사수 없이도 혼자 잘한다”는 칭찬을 2년 정도 들으며, 인이 박혀있던 가스라이팅을 지울 수 있었다.


눈물 마를 새 없이 다녔던 두 번째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지 1년이 지났다. 난 다시 직장을 옮겨 세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어쩌면 두 번째 직장에서의 사수 덕분에 이직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종종 이 사수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다시금 돌아봐도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나 분명한 건 난 여전히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사수를 처음 만난 서른엔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마주해서 싫었다면, 서른다섯의 나는 일의 권태로움을 느껴서 싫다. 여전히 일은 그냥 싫다. 다만 이 태도가 사수가 말대로 ‘틀린건’가 싶은 의문은 있다. 이제 업무에 ‘빵꾸’를 내는 사람은 아니니까, 아주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태만한 사람도 아니니까, 그냥 일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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