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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Sep 16. 2023

여름이었다

일상을 밀고 나가는 힘은 설렘으로부터

듀얼모니터 한편에 띄워둔 카톡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메시지는 아니었다. 도서관 대출 반납 리마인드, 좋아하는 브랜드의 가을옷 출시 안내 메시지만 줄을 이었다. 기다리고 있는 카톡 창은 단 하나였는데, 어느새 카톡 채팅 리스트의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할 정도로 저 아래에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카톡창에는 끝끝내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의 난 촘촘한 일상을 보낸다. 매일 아침 5시 35분이면 눈을 뜨고 수영장으로 향한다. 6시부터 1시간 동안 정신없이 물에서 헤매고 나면 어젯밤의 붓기가 조금은 사라진다. 그리고 출근을 해서 대충 시간을 보내고, 가끔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이 찾아온다. 주 2회는 굽은 어깨와 허리를 펴기 위해 필라테스를 하고, 간헐적으로 취미활동을 위해 학원에 다닐 때면 수업이 추가되기도 한다. 저녁 운동이나 수업이 없는 평범한 날은 집에 가만히 누워 야구 경기를 본다. 야구 중계가 끝나면 벌서 9시가 훌쩍 넘어있다. 다음날 입을 수영복을 챙기고 야구를 보며 한참 욕을 한 모습을 스스로 반성하며 억지로라도 교양을 쌓는다. 재미없는 책을 읽고 10시가 되면 가차 없이 불을 끈다. 내일 아침도 수영을 위해 5시 35분에 눈을 떠야 하니, 조금 할머니 같더라도 일찍 잠을 청한다. 누군가는 이런 일상을 보고 ‘갓생’이라고 극찬한다. 칭찬은 좋지만 이건 그냥 일상일 뿐이다. 회사와 집 사이에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끼워 넣는 것들.


저녁 약속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애초에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선호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친한 회사 동료,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 한 달에 한두 번인 이벤트인 셈이다. 예전 직장 상사는 “너 그러면 결혼 못 한다. 운동하는 데서라도 만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때 당시 나는 “저 여성전용헬스장 다니는데요”라고 상사의 입을 틀어막곤 했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은 것 중 하나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며 느끼는 설렘은 정말 좋다. 하지만 촘촘하게 설계된 내 일상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건 없다. 타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감정도 소중하지만, 일상을 밀고 나가는 안정적인 감정이 더 중요하다.


그날은 한 달에 한두 번 있던 이벤트의 날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감정은 늘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중요한 행사를 마친 회사 동료와 가볍게 맥주를 마시던 자리에서, 회사 동료의 친한 지인과 조인했다. 그는 훤칠했고, 수려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30대의 연애 시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조건도 아주 준수했다. 몇 번의 농담을 주고받으며 적어도 그가 ‘강약약강’의 성향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다. 구구절절 그의 장점을 되짚어보는 게 웃길 정도로 그는 그냥 ‘괜찮은 사람’이었다. 첫 번째 이벤트를 마무리하고, 몇 번의 자리를 더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가 좋은 취향과 착한 말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일상이 요동쳤다. 저녁에 발생하는 이벤트의 영향으로 새벽 수영은 꿈도 꾸지 못했고, 주말은 그저 기절해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반납해야만 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난 그에게 마지막 수를 던지고 무참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분노했다가 다음엔 다시 멍하니 카카오톡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창피함이었다. 한동안은 샤워를 하다가도 과거의 나를 지우고 싶어 발을 구르고 몸서리를 쳤다. 수영을 하면서도 물속에서 욕을 했다. “지가 뭔데”라고 생각하다가 “XX”이라 욕을 뱉으며 물을 먹고 켁켁거려야 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다는 애플워치의 알람이 과연 수영 때문인지, 분노한 감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나가는 여름과 함께 설렜던 감정도 이제야 지나가고 있다. 이제야 카톡의 빨간불을 허겁지겁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내 행동을 부정하는 창피함까지 기억에서 흐려지며 드디어 일상을 되찾고 있다. “그 자식 후회할걸”이라는 정신승리로 다시 갓생을 사는 동력을 얻었다.


간혹 찾아오는 설렘이 끝날 때마다 늘 무뎌지겠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은 것이고 또 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그냥 흘러가도록 두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플러리에는 늘 지고 만다. 늘 휘말리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안정적인 일상을 내어준다. 지금 나는 겨우 일상의 안정감을 되찾았지만, 다음의 설렘에 일상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낯선 감정으로부터 얻는 동력으로 평범한 날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 올해는 여름의 설렘을 잘 모아서 가을과 겨울을 살아갈 거다. ‘여름이었다’는 말을 붙이면 아무 말도 아니지만 그럴싸해진다는 밈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지만 2023년의 여름만큼은 이 표현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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