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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Jun 07. 2020

회사를 떠나는 동료에게

넌 내게 긴장감을 줬어

회사 사람과 주말을 보내도 아쉽지 않던, 너의 퇴사 기념 Night Out


너를 통해 내 본모습을 봤다. 내 에티튜드가 얼마나 후진 사람인지 알게 됐다. 입사 초기, 내 손의 상처는 마를 날이 없었다. 누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손톱 옆 굳은살들을 쥐어뜯으며 긴장했다. 회사에 적응해 상처가 아물어갈 때쯤, 긴장감을 주는 네가 등장했다. 자기소개를 하는 너는 거침이 없었다. 등산을 좋아해 네팔로 트래킹을 다녀왔다는 너를 보며 괜히 위축됐다. 그래서 저열하게도 너의 실수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너의 실수는 나만큼 잦지 않았다. 그래도 이 회사에 먼저 들어온 내가 조금이라도 능숙해 보이기를 원했는데, 애석하게도 네 앞에서 주름잡을 순간은 쉽게 오지 않았다.


네가 등장할 때쯤 나는 유난히도 일에 쫓기고 있었다. 하루하루 업무 보고를 원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팀장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네 앞에서는 잘하고 싶었는데, 지독하게도 꼼꼼했던 팀장 덕분에 눈물을 달고 살았다. 여느 때와 같이 팀장한테 깨진 그날, 처음으로 너와 단 둘이 점심을 먹었다. 말없이 밥을 먹던 내게 네가 물꼬를 텄다. “팀장님을 많이 겪지는 않았지만, 가끔 보면 팀원들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는 너의 말에, 난 천년의 인연을 만난 것만 같았다. “그 더러운 성격을 너도 아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의 벽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날 프랑스포차에서 미트볼파스타를 먹으며 나는 네게 한없이 의지했다.


그렇게 1년간 손발을 맞췄다. 콘텐츠에 강점이 있는 네 덕분에 내 사업의 홍보는 풍부해졌다. 그리고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난 팀장이 원하는 구성의 문서를 만들어 너를 도왔다. 전화 업무 시,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창피해 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통화하던 나는 목소리가 컸던 네 덕분에 전화 업무에 자신감을 붙였다. 긴장하지 않아 회사가 힘들지 않았다. 이런 팀이라면 야근도 하고 힘에 부쳐도 업무를 쳐낼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쯤, 너는 조심스레 퇴사를 이야기했다. 괜히 장난스레 너의 진지한 고민을 외면했다. 나도 퇴사를 경험했기에 입 밖으로 꺼내는 퇴사는 어느 정도 결심한 뒤의 결과라는 것을 잘 안다. 이제 네게는 퇴사의 여부가 아니라 시기의 고민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늘 미션을 가지고 있던 너는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일에 대한 자기중심마저 잃을 수 있겠다고 퇴사의 변을 밝혔다. 만족하는 순간 퇴보한다던 자기 계발서 속 명언을 실행에 옮기듯 너는 퇴사 이후의 계획을 펼쳐 놓았다. 창업지원팀이던 우리는 늘 “창업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놀랍게도 넌 창업을 선택했다. 현장감 있게 일하고 싶다던 너답게 고향으로 돌아가 농촌의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 계획을 들은 후 더 이상 퇴사를 농담으로 소비할 수 없었다. 꽤나 안정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던 내게 너는 끝까지 긴장감을 줬다.


창업이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네가 잘 알 것이다. 일주일 사이에도 몇 개의 창업팀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폐업신고를 한다. 운이 좋아 성장기를 잘 견디더라도 창업의 지옥인 데스밸리에 빠져 한 순간 고꾸라질 수도 있다. 무모하게 도전하는 창업팀을 그렇게도 많이 겪었으니, 그 누구보다 초조한 사람은 바로 너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려움을 모두 안고 시작하는 네게 요행과 같은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미션을 잃지 않고 당당했던 네가 고민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를 응원한다.


은선, 서로 바빠 자연스레 요원해져도 네가 줬던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게. 몇 년 뒤 그럴싸한 청년 벤처 창업가로 자리 잡아 내가 관리하는 창업지원사업은 거들떠도 보지 않을 그 긴장감을 기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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